HOME > 오피니언 > 기고

[장훈 기고] 아름다운 나라 꿈꾸던 위대한 민족 사상가

기사입력 2019. 05. 20   15:31 최종수정 2019. 05. 20   15:34

- 『백범일지』를 읽고

장훈 육군3기갑여단·중령

2004년, 이라크 미군기지에 하루 1달러의 돈을 벌기 위해 일하러 오는 이라크인들의 눈빛이 인상 깊었다. 분노와 고통, 절망, 무기력함, 혹은 희망이었을까? 전쟁을 겪으며 국토는 폐허가 됐고, 고된 노동의 대가로 겨우 1달러를 받는 그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 눈빛을 아직도 기억한다.

얼마 전, 『백범일지』를 읽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토록 치열하고 힘든 삶을 살았으며, 애국심의 원동력은 무엇이었는가?

김구 선생은 대대로 가난했다. 입에 풀칠하는 것조차 어려웠으며 어린 시절에는 구국의 위인이 되고자 하는 위대한 꿈을 가졌던 것도 아니다. 그가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었던 것은 아마도 어린 시절이 그만큼 고달팠기 때문이 아닐까? 김구 선생은 힘없고 나라 잃은 국민이 겪는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끼면서 젊은 시절을 보냈고, 그 울분과 서러움은 조국독립을 위한 열정이 되어 다시 피어났다.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나의 소원에서 그는 자신의 비전과 희망, 생각하는 모든 것을 이야기한다.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의 완전한 자주독립이라는 말에서 그가 얼마나 절박하게 대한의 자주독립을 꿈꾸었는지가 마음에 무겁게 와닿는다.

옥고(獄苦)를 치르며 두고두고 고민했던 것이 개명하는 일이었다. 이름을 거북 구(龜)에서 아홉 구(九)로 바꾸고 호는 백범으로 정했다. 미천한 백성을 상징하는 백정의 백(白)과 보통사람이라는 범부의 범(凡) 자를 따서 지었다. 이전에는 백범의 의미를 미처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가 호를 백범이라고 지은 까닭을 알고 나니 백범이 더욱 새롭다.

그는 감옥에서 지낼 때조차 죄수들에게 글을 가르쳤고 기회가 되는 대로 학교를 세우고 광복군을 길러냈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시작된 교육에 대한 열망과 김구 선생의 실천은 대한민국이 오늘의 국격을 갖추게 된 원동력이자 추진력이 됐을 것이다. 가난할지라도 배움을 소중히 여기고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김구 선생의 인자한 말이 귓가에 맴도는 듯하다.

자연과학의 발전이나 다른 그 무엇보다도 문화적 번영을 바랐던 그의 이상과 용기 있는 실천이 없었으면, 피 흘리고 살점이 떼이고 목숨을 잃으면서까지 저항했던 독립운동가들이 없었다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번영은 지금과 달랐을 것이다. 김구 선생의 사상은 혼자서 꿈꾸는 그런 사상이 아니라 조국의 자주독립을 애타게 바라던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불처럼 번져 뜨겁게 타올랐다.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기보다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했던 김구 선생은 조국을 빼앗긴 나라의 사무치는 서러움을 알기에 내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김구 선생이 꿈꾸었던 자유주의 민주국가는 아직도 진행형이며,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대한민국도 결코 공짜로 얻어지지 않았다. 전쟁에서 패하고 수도를 빼앗긴 이라크인들의 눈빛이 새삼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에 대한 의견 개 있습니다. 로그인 후에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