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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호 종교와 삶] 마지막을 의식하며 사는 삶

기사입력 2019. 04. 09   16:08 최종수정 2019. 04. 09   16:12

이 동 호 
육군22사단 군종참모·소령·목사

스물아홉 살 생일에 퀴퀴한 원룸에 틀어박힌 채 자신의 삶을 비관했던 여성이 있었습니다. 절망에 빠져 스스로 삶을 끝내기로 했던 그녀는 TV를 통해 본 라스베이거스의 화려한 모습에 마음을 바꿉니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서른이 되기 직전, 스물아홉의 마지막 날,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생각되는 그 멋진 순간을 맛본 뒤에 죽는 거야!” 시한부 인생이라고 자처한 그녀는 돈을 모으기 위해 1년 동안 정말 치열하게 살아갑니다. 그렇게 자신이 꿈꾸던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맛본 그날, 마음을 돌려 죽지 않고 힘차게 살아가기로 합니다.

2010년 일본 닛폰방송과 출판사 린다 퍼블리셔스가 주최한 ‘제1회 일본감동대상’ 수상작인 하야마 아마리(葉山アマリ)의 자전적 수기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의 대략적인 줄거리입니다. 스스로 시한부 인생을 살았던 1년 동안 너무도 많은 것을 이뤄낸 작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인생에서의 마법은 ‘끝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나는 몸으로 깨달았다.”

군종장교로서 해마다 부대 전 장병을 대상으로 교육해야 하는 사생관 교육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죽음에 대한 성찰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새긴다’, ‘전투에 임하는 군인으로서 필사즉생의 신념을 확립한다’. 둘째 목표는 말할 것도 없이 전투를 준비하는 ‘군인’으로서 마땅히 갖춰야 할 자세겠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군인이기 이전에 유한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언제, 어떻게 닥쳐올지 모르는 죽음을 늘 준비하며 살아야 하며, 그렇게 우리의 인생에 끝이 있음을 의식하고 살아갈 때 비로소 지금 이 순간의 삶을 더 소중하고 의미 있게 살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종교가 인간에게 주는 (눈에 보이는) 가장 큰 유익 중 하나가 바로 죽음을 의식하며 사는 삶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마지막을 의식하며 산다는 것이 꼭 죽음만을 뜻하는 건 아닙니다. 누구에게나 인생에는 중요한 마디들이 있게 마련입니다. 입학·졸업·취업·결혼·출산·퇴직 등등. 특히 군복을 입고 있는 우리에게는 넓게는 군 복무 기간, 좁게는 현 보직 기간이 한 마디의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올해로 군 복무 15년 차입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이겠지만, 임관 이후의 제 삶은 그 이전에 비해 뭔가 달라지긴 확실히 달라진 게 사실입니다. 또한, 1개 부대에서 1개 보직, 길어야 2년 근무하고 전출되는 군종장교의 특성상 그 1개 보직 기간인 1~2년마다 또 다른 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러기에 어떤 부대에서든 떠날 때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만감이 교차하곤 합니다. 그래서 한 부대, 한 부대에서의 보직 기간을 그나마 밀도 있게,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게 아닌가 합니다.

어쩌면 이 글을 읽는 분 중에 용사들은 제 말에 별로 공감하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에게는 군 복무 기간 전체가 인생의 한 마디임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먼 훗날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나는 군 생활을 이렇게 의미 있게 했다” “나는 군대에서 이러이러한 것을 배웠다”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는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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