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병 진
KBS 2FM 부장·프로듀서
4월의 첫날이다. T S 엘리엇은 ‘황무지’에서 “잔인한 달”이라고 했지만, 우리에게 4월은 의미 있는 날이 많다. 식목일(5일), 임시정부 수립일(11일), 장애인의 날(20일) 등이 그것이다. 그중에 나는 ‘장애인의 날’에 주목한다. 그 이유는 15년 전 장애인들과 함께 히말라야를 오르면서 느꼈던 감동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04년, 당시 장애인 전문채널인 KBS 3라디오에서 프로그램을 연출하던 필자는 선배와 함께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히말라야에 함께 오르는 특집프로그램을 기획했다. 프로그램 제목은 ‘희망원정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산행’이었다.
오랜 준비 끝에 마침내 등정 길에 올랐다. 그러나 히말라야는 쉽게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한 여성대원이 산의 초입에서부터 구토 등 신체적 이상 현상을 보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대원들 대부분에게 소화불량 등 고소증세가 나타난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안전사고와 대원들의 건강악화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자 뜻밖의 일이 발생했다. 험난한 코스에 이르자 장애인 대원들의 의지가 점차 더 강해진 것이다. 그 여성대원은 곧 건강을 회복했고, 소아마비 장애인 2명은 휠체어에서 내려 두 손으로 땅을 짚는 이른바 ‘핸드워킹’으로 깎아지른 계단을 오르겠다고 나섰다. 또 멘토와 셰르파의 부축을 받던 시각장애인 대원은 자주 발을 헛디뎌 공포감이 가득했지만, 도전 의지는 더 세졌다.
한편 목적지 안나푸르나 푼힐전망대(해발 3210m)에 오르는 도중 그들은 장애인으로서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회의 편견과 차별에 대해 토로했다. 그들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는 절규에 가까웠다. 그들에게 장애 그 자체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고정관념과 냉대였다. 시각장애인으로 히말라야를 오르고 세계 4대 극한 마라톤을 완주한 송경태 씨가 “장애인에게는 하루하루의 일상이 에베레스트 등반 못지않은 편견과 싸워야 하는 사투”라고 한 말은 당시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준 것이리라.
4박5일의 여정 중 마지막 날 이른 새벽, 젖 먹던 힘까지 다 쏟는 투혼 끝에 원정대는 마침내 한 사람도 낙오하지 않고 목표지점에 올랐다. 사방이 8000m급 만년설 봉우리로 둘러싸인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 감격에 겨워 서로를 얼싸안고 펑펑 울었다. 세상을 살아오면서 그보다 더 감동적인 순간도 없었던 것 같다.
그날 장애인들이 흘린 눈물에는 힘겹게 살아온 삶에 대한 회한과 세상에 대한 분노감 등이 복잡하게 섞여 있었다. 그 후 필자는 비슷한 콘셉트로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와 히말라야의 다른 봉우리를 더 올랐고, 감동은 계속됐다.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장애인들의 의지가 깊은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국방의 의무를 지고 있는 우리 병사들은 어쩌면 히말라야보다 더 높고 힘든 안보의 고지를 오르고 있는지 모른다. 그것은 분명 장애인들의 도전처럼 의미 있고 숭고한 시간이다. 또한, 장애인들에게 멘토가 있었듯이 병사들에게는 함께할 전우가 있기에 어깨동무를 하고 고지를 향해 어렵지 않게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장애 없는 건강한 신체를 갖고 있지 않은가. 병사들 모두 국가안보의 정상에 애국의 깃발을 꽂고 안전하게 하산하길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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