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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헤스 대령과 공군 창군 70주년

입력 2019. 03. 15   16:50
업데이트 2019. 03. 15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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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영 창 공군본부·주임원사
라 영 창 공군본부·주임원사

  
며칠 전 한 병사가 나를 찾아와 딘 헤스 대령에 관해 물었다. 순간 공군 장병이면 당연히 알고 있을 것으로 여겨 당황하면서도 6·25전쟁 중 대한민국 공군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분임을 제대로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 병사와 함께 공군본부 본청에 전시된 딘 헤스 대령의 역사화 앞으로 갔다. 그리고 그분께서 공군에 남긴 수많은 업적 중 아래의 세 가지를 알려주었다.

첫째는 6·25전쟁 초기 L-4/5/T-6 등 20여 대의 경비행기만 보유했던 한국 공군은 미군에 전투기 원조를 요청했다. 미 공군은 미 극동 공군사령부에 배치된 항공전력을 한국 공군에 이양했고, 한국 공군에 체계적 항공작전 전수를 위해 미 공군은 제6146 군사고문단을 창설했다. 또, 이 부대를 ‘바우트원(Bout-one)’이라 이름 짓고 딘 헤스 대령을 부대장으로 임명했다. 항공작전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 공군에 전투임무 수행과 조종사 교육훈련 등 공군 전력화에 비약적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다. 그 역사의 중심점에 딘 헤스 대령이 있었다. 그는 F-51 무스탕 전투기를 몰고 250여 회의 전투에 참가한 6·25전쟁사의 위대한 참전영웅이기도 하다.

둘째는 중공군의 개입으로 급속도로 악화된 전황에 서울이 재함락당할 위기의 순간, 미 군종목사인 러셀 블레이즈델 대령과 함께 미 공군 C-54 수송기 15대와 한국 공군의 C-47 수송기 1대를 이용해 1000여 명의 전쟁고아를 제주도로 피란시켰다. 그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제주도를 찾아 전쟁고아들을 돌보아 ‘전쟁고아의 아버지’라 불렸다.

셋째는 어느 날 그의 애기(愛機)인 F-51 무스탕 전투기 정비기장 최원문 예비역 대령에게 “I fly by faith”라 적힌 쪽지를 건네주며 한국말로 번역해 본인의 애기에 써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에 ‘나는 믿음으로 날아간다’ ‘나는 신념으로 난다’ 등 여러 문구를 논의했지만, 최종적으로 그의 전투기 측면에 ‘信念의 鳥人(신념의 조인)’이라고 써주었다고 한다. 이는 대한민국 공군 조종사를 상징하는 말이 됐다.


공군본부 본청에 전시된 딘 헤스 대령의 역사화.
공군본부 본청에 전시된 딘 헤스 대령의 역사화.


나는 위 세 가지를 그 병사에게 전해주며, 딘 헤스 대령께서 2015년 3월 3일 향년 97세의 나이로 타계하셨고, 한국 공군에서는 그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7년 제주도 항공우주박물관에 딘 헤스 대령 공적비를 건립해 매년 3월 그분을 기리는 행사를 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올해는 대한민국 공군 창군 70주년으로 공군 역사에 큰 의미가 있는 해다. 1949년 10월 1일, 항공불모지나 다름없는 대한민국에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내신 공군 창군 7인(최용덕·김정렬·장덕창·이영무·박범집·김영환·이근석)의 주역과 딘 헤스 대령과 같이 공군 발전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모습을 좀 더 많이 알릴 수 있도록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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