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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관희 종교와 삶] 생각의 구슬을 돌리며

입력 2019. 03. 12   14:52
업데이트 2019. 03. 12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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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관 희
해군본부 군종실장·중령·법사
한 관 희 해군본부 군종실장·중령·법사

불교의 대표적인 종교적 상징을 떠올릴 때 많은 사람이 부처님과 염주(念珠)를 떠올립니다. 이 가운데 염주는 10여 개 혹은 108개의 구슬을 꿰어서 만듭니다. 불자들은 이 염주를 돌려가며 기도합니다.

염주는 말 그대로 ‘생각의 구슬’이라고 합니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도 같은 의미를 지닌 ‘친타마니’(친타: 생각, 마니:구슬)로 불립니다. 즉 지난날의 시간을 염주와 함께 돌리고, 후회스러움도 염주와 함께 돌리고, 기뻐하는 생각, 슬퍼하는 생각들을 염주와 함께 돌리며 평안함을 찾습니다.

중국의 고서 『장자』 천지 편에 ‘탐주정랑(探珠靜浪)’이라는 고사가 있습니다. 황제가 곤륜산에서 여러 신하와 함께 성취의 여의주를 가지고 놀다가 적수라는 큰 호수에 구슬을 빠트리게 되었습니다. 가장 똑똑한 신하가 물속에 빠진 구슬을 찾으러 물에 들어갔지만 찾지 못해 눈이 밝은 신하가 다시 찾으러 가고, 다음은 말을 잘하는 신하가 찾으러 갔지만 모두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눈도 잘 보이지 않고 나이도 많은 늙은 신하가 물속의 구슬을 찾아왔습니다.

황제는 구슬을 찾아온 늙은 신하에게 그 방법을 물으니 신하는 “우선 물결이 고요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맑아진 물결을 보고 구슬을 찾아왔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 일화로 탐주정랑이라는 고사가 생겨났지요.

똑똑하다고, 눈이 잘 보인다고, 말을 잘한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여의주가 아닐진대, 사람들은 이 여의주를 가진 사람은 마법의 지팡이처럼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한다고 오해해 너도나도 여의주를 찾고자 했습니다. 여의주를 가질 수 있다면 권력도 영원한 삶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도된 몽상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사찰 입구의 사천왕상 손에도 여의주를 들고 있는 광목천왕, 대웅전 부처님 탱화에도 여의주를 손에 들고 있는 보살상, 손에 여의주를 들고 있는 지장보살의 부처상, 대웅전 지붕 용마루 가운데에도 피뢰침 같은 모양으로 큰 여의주와 관련된 장식의 보륜, 대웅전 중앙 마당에 있는 석탑 상륜부에도 마지막엔 큰 여의주의 보륜 등이 있습니다. 이렇듯 모두가 가지고 싶어 하는 성취의 구슬, 여의주를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여의보주(如意寶珠)가 부처와 사천왕의 손에, 지붕 꼭대기에, 탑의 꼭대기에 왜 있는지 곰곰 생각한다면 나의 손에, 나의 마음에, 그리고 절정의 생각 끝자락에는 중요한 보물인 여의보주가 나와 함께 있음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부처도 나도 이미 가지고 있다는 걸 말입니다.

하룻밤, 하룻낮에도 이 생각 저 생각이 일어나고 없어지고, 마치 물거품처럼 뭉게뭉게 생멸(生滅)하는 것이 매일의 일상입니다. 물결은 번뇌이고 구슬은 삶의 지혜로서, 무엇을 얻고자 한다면 우선 자기 자신을 고요히 해야 합니다.

성취(成就)의 구슬, 생각의 구슬은 어디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구족(具足)하고 있습니다. 하루 중에 단 10분이라도 자기 생각을 염주알처럼 굴려 한 박자만, 한 생각만 쉬고 갈 수 있다면 혼탁한 물 같은 어두운 앞날의 모습도 고요해지면서 맑게 보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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