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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사 3월5일] 처칠 '철의장막'과 냉전의 시작

입력 2019. 03. 03   13:31
업데이트 2021. 03. 04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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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발트해의 스테틴부터 아드리아해의 트리에스테에 이르기까지 ‘철의 장막’이 유럽 대륙을 가로지르며 드리워지고 있습니다. (From Stettin in the Baltic to Trieste in the Adriatic, an iron curtain has descended across the Continent.)"


처칠은 웨스트민스터 대학교에서 명예박사를 받는 자리에서 '평화의 원동력'이라는 연설을 통해 '철의 장막'에 대해 언급했다. 위키피디아
처칠은 웨스트민스터 대학교에서 명예박사를 받는 자리에서 '평화의 원동력'이라는 연설을 통해 '철의 장막'에 대해 언급했다. 위키피디아


1946년 3월 5일 처칠, ‘철의 장막’ 연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영국 총선에서 의외의 패배로 총리 직을 내놓은 윈스턴 처칠(Winston Leonard Spencer Churchill 사진)은 1946년 3월 5일, 미국 미주리 주 풀턴의 웨스트민스터 대학교에서 명예 법학박사 학위를 수여 받는다.


처칠은 이날 학위수여식에서 ‘평화의 원동력(Sinews of Peace)’이라는 연설을 통해 냉랭해진 서방과 소련과의 국제관계를 말하며 ‘철의장막’(鐵의帳幕)을 언급했다.


철의 장막이란 처칠이 처음으로 한 말은 아니다. 1914년 벨기에에서 벨기에와 독일의 정치적 관계를 ‘철의 장막’이라고 표현했고,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이던 요제프 괴벨스도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중에 이 말을 쓰기도 했다. 거슬러 올라가면, 바빌로니아 탈무드에 ‘철의 장벽 (iron barrier)’이라는 표현이 나와 있다.


야인이 된 처칠은 "이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조언을 던지는 일개 시민의 의견이라고 했지만 당시 떠오르던 독재와 전쟁이라는 또 다른 위협에 대해 통찰력 있는 주장을 제시했다.


소련을 중심으로 동유럽에서는 공산당의 전체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공산주의가 영향력을 높여가고 있었던 상황. 영국과 미국의 단합, 유엔헌장 수호, '위대한 평화의 회복'을 처칠의 ‘철의 장막’ 연설은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


역사학자들은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세계와 소련이 지배한 공산주의 독재 세계의 대립을 배경으로 하는 냉전시대는 이 연설을 계기로 공식적으로 시작했다고 보고 있다.


1947년 3월 12일, 트루먼 독트린 발표


처칠의 이같은 견해에 대해 이날 자리를 함께한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 대통령은 전적으로 동의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1947년 3월 12일 트루먼 대통령은 미국 상하 양원 합동특별회의에서 ‘그리스·터키 원조 법안’ 승인을 위해 이른바 ‘트루먼 독트린’을 발표했다.


트루먼은 "무장한 소수 또는 외부로부터의 압력에 저항하고 있는 자유국가 국민을 지원하는 것이 미국의 정책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특히 강조했는데, 제2차 세계대전 중 협력했던 미국과 소련의 우호관계를 파기하고 반소·반공 입장의 정책을 보다 확고히 한 것이었다.


냉전이 본격화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냉전(cold war)이란 말은 1947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경제 및 외교정책 고문을 맡았던 버나드 바루크(Bernard Mannes Baruch 1870~1965)가 1947년 4월 "결코 자기기만에 빠져선 안된다. 오늘날 우리는 냉전의 한복판에(in the midst of a cold war) 있다"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


철의 장막, 트루먼 독트린, 그리고 냉전 등 이 시대가 낳은 용어들은 6.25전쟁, 쿠바사태 등을 겪으며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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