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병영의창

[병영의 창] 군생활의 버팀목 자긍심과 전우애

입력 2019. 02. 22   15:41
업데이트 2019. 02. 24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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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병 이상헌 <육군28사단 흑룡대대>


하루에 단 몇 시간조차 고통스러워 억지로 청한 잠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기도했던 적이 있었다. 모든 일은 지난해 4월, 내가 국군양주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으면서 시작됐다.

기억을 돌이켜보면, 처음 며칠 동안 몸이 무겁고 붉은 반점이 다리에서부터 팔까지 나타나기 시작했다. 나 자신도 문제가 생겼음을 자각한 뒤로 모든 일은 신속하게 진행됐다. 저녁점호가 끝난 뒤, 대대 의무실에서 백혈병이 의심된다는 소견을 듣고, 급히 양주병원으로 후송됐다.


다음 날 아침 백혈병 확진을 받았지만, 부모님께 차마 말씀드리지 못해 안부 인사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후 서울 소재 종합병원으로 이송됐고, 구급차에서 내릴 때 부모님의 표정을 본 나는 담담한 척 응급실로 이동했지만 그제야 나의 병이 실감 났다.

주치의 선생님을 만나 뵙고 더는 군 복무가 힘들 것이라는 말을 뒤로한 채 약 5개월이 넘는 집중치료 동안 정말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척추뼈 내부의 피를 채혈하기 위해 드릴로 살과 뼈를 뚫고 피를 뽑는 골수검사, 항암제의 지속적인 투약을 위해 목 쪽의 정맥으로 관을 꽂는 히크만 카테터 시술을 거쳐 주기적으로 항암제를 투약하는 기간에는 고통스러운 기억밖에 없다. 일주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 며칠 동안 링거로 투여되는 영양제와 포도당에 의존하기도 했고, 머리카락을 비롯한 몸의 털과 함께 손톱과 발톱이 괴사해 빠지는 경험은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육체적인 고통 이면에 내가 부모님 마음에 짐을 지웠다는 것과 군인으로서 나의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다는 점이 항상 마음 한편에 남아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주변에서는 나에게 조기 전역을 권했다. 하지만 나는 끈질기게 병을 극복하고 다시 건강하게 28사단 흑룡대대의 일원으로 복귀했다(최종 완치 판정은 5년 뒤 받을 수 있다).

사실, 처음부터 군 복무에 자긍심을 가지고 모범적인 군인이 되리란 생각을 했던 것은 아니다. 훈련병 시절에는 편한 보직으로 무사히 전역하기만을 바라 왔는데, 휴가를 많이 받을 수 있다는 점에 혹해 지원한 최전방 수호병, GOP 대대에서의 근무가 나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돌이켜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군 생활의 많은 요인이 나에게 자긍심과 영감을 주었던 것 같다. 뼈아픈 역사와 분단의 상징인 철책과 DMZ 그리고 그곳을 수호하는 GOP에서의 군 복무는 나에게 자부심을 품게 해주었다.


적지 않은 나이로 처음 전입해 왔던 이등병 시절부터 입원하기 전까지 약 9개월 동안, 수많은 훈련과 근무를 함께해온 전우들과의 전우애는 입대 전에 가졌던 군 복무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잊어버리게 했다. 치료 기간 많은 부대원이 문병을 왔고, 대대에서 모은 헌혈증을 전달받았을 때 다시 복귀할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게 됐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듯, 나의 힘들었던 시간도 이제 끝이 났다. 이 글을 보고 읽을 전우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건강히 부모님 곁으로 돌아가는 군 생활의 봄을 맞이할 수 있으면 좋겠다.

상병 이상헌
<육군28사단 흑룡대대>
상병 이상헌 <육군28사단 흑룡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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