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국방 > 육군

‘전사의 독’ 품고…수호천사들 낯설지만 ‘날’선 사격

맹수열 기사입력 2019. 02. 13   17:43 최종수정 2019. 02. 13   17:49

국군간호사관학교 예비생도 가입교 군사훈련 르포

고등학교 졸업식도 안 한 예비생도들
꿈도 꾸지 않았던 사격에도 흔들림 ‘0’
무려 89%가 합격… 특급 이상도 15명


지난 11일 육군32사단 사격훈련장에서 국군간호사관학교 예비생도들이 실사격 훈련을 하고 있다. 한재호 기자
지난 11일 육군32사단 사격훈련장에서 국간사 예비생도들이 사격을 하고 있다. 한재호 기자
12일 국간사 예비생도들이 교내 소연병장에서 총기 제식훈련을 하고 있다. 한재호 기자
입학을 앞두고 기초군사훈련을 받는 국간사 예비생도들이 군가를 부르며 이동하고 있다. 한재호 기자

떠나는 겨울이 아쉬운 듯 칼날 같은 바람이 뺨을 스쳤다. 나지막한 구릉 밑 사격훈련장은 팽팽한 긴장감 탓인지 더욱 싸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훈련장에 들어서자 익숙한 소총의 격발음이 기자를 맞았다. 총소리가 잦아들자 그제야 그동안과는 다른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일격필살! 백발백중! 일격필살! 백발백중!”

어디서나 들을 수 있는 구호지만 소리의 톤은 전혀 달랐다. 얼핏 들으면 소년병이 아닐까 싶은 미성(美聲). 구호의 주인공은 국군간호사관학교(국간사) 입학을 앞둔 예비생도들이었다.

의문이 생길 수 있다. 간호장교들도 과연 총을 쏠까? 대답은 ‘당연하다’였다.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전장에서 자신과 전우를 지키고 적을 제압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구하는 간호장교도 사격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날 예비생도들의 사격훈련을 지휘한 김은정(대위) 훈육장교는 “사격은 군인의 기본”이라고 잘라 말하며 “직접 사격술을 연마하는 것 외에도 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총상 등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제로 총을 쏴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훈련은 사격술예비훈련(PRI)과 실사격 훈련으로 나누어 진행됐다. 사격을 앞둔 예비생도들은 조를 이뤄 조준·격발 등 사격술 예비훈련에 여념이 없었다.

PRI는 ‘피(P)가 나고 알(R)이 배고 이(I)가 갈린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힘든 훈련이다. 미래의 장교지만 아직은 고등학교 졸업식도 마치지 않은 예비생도들에겐 가혹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2시간여 동안 훈련을 지켜본 결과 기우였다는 결론을 내렸다. 과거와 달리 PRI는 명중을 위해 꼭 필요한 요소들을 엄정한 군기 속에 익히는 방향으로 바뀌었다. ‘봉사하는 삶’을 실천하기 위해 국간사의 문을 두드렸다는 백소영 예비생도는 “내가 총을 잡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며 “처음에는 힘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은 나를 지키는 수단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훈련에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둑알을 올려놓고 흔들림을 잡는 격발 훈련은 여전했다. 훈련에 임하는 생도들의 표정도 15년 전 기자의 군생활 당시와 다를 바 없었다. 이제 막 소녀티를 벗은 예비생도들은 아직은 어색하지만 진지한 모습으로 훈련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때 한쪽에서 큰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그렇게 나약하게 훈련을 합니까!”, “지금부터 잘하겠습니다!”

사격장에서는 언제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알 수 없다. 따라서 사격훈련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안전이고 이 안전을 담보하는 것이 바로 군기다. 사격장 내 군기가 엄정한 이유다. 평소 친언니처럼 살가운 훈육생도라도 사격장 안에서만큼은 날카롭게 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약간의 빈틈만 보여도 정신을 다잡아주기 위해 불호령이 떨어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3학년 훈육생도의 지적을 받은 예비생도는 이내 자세를 고쳐잡고 총구를 겨눴다.

예비생도들에게는 호랑이처럼 무서운 기초군사훈련 지도생도들이지만 마음 한편에는 후배들을 바라보는 애틋함도 담겨 있었다. 그만큼 후배를 사랑으로 챙겨준다는 뜻이리라. 사실 이들은 꿀 같은 겨울방학도 스스로 반납하고 후배들을 위해 학교에 남은 생도들이다. 예비생도들이 보지 않는 사이 기자와 이야기를 나눈 김서랑 생도는 “처음 훈련받을 때가 생각난다”며 후배들을 따뜻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김 생도는 “힘든 시간이겠지만 군인으로 거듭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 기초군사훈련”이라며 “하루하루 달라지는 예비생도들의 모습을 보면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운 날씨를 이겨내고 한 명의 환자도 없이 건강하게 훈련을 받아 당당한 63기 생도로 거듭나기를 응원한다”고 덧붙였다.

아래서 PRI가 한창인 동안에도 실사격 훈련은 계속됐다. 긴장된 표정의 예비생도들은 탄창을 받아 들고 생애 첫 사격을 위해 사격장으로 올라갔다. 각자 20발의 사격을 마친 뒤 내려오면 곧바로 성적 발표가 이어졌다. 국간사는 12발 명중을 기준으로 합격과 불합격을 나눴다. 합격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잠깐의 휴식을 즐길 수 있었지만 불합격한 예비생도는 다시 PRI 훈련장으로 향해야 했다.

“게임에서나 해본 사격을 실제로 해보니 신기했습니다. 걱정도 많았지만, 생각보다 성적이 좋아서 다행입니다.” 9명의 남자 예비생도 중 한 명인 최민형 예비생도는 상기된 표정을 감추며 이렇게 말했다. 총 18발을 맞혀 특급성적을 거둔 최 예비생도는 “63기 생도들은 모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며 “남은 동기들도 모두 좋은 성적을 거뒀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예비생도들의 성적은 예상보다 훨씬 훌륭했다. 이날 90명 예비생도 전원이 사격한 결과 합격률은 89%에 달했고 특급 이상의 성적을 거둔 이도 15명이나 됐다. 그저 어리게만 느껴졌던 예비생도들의 자질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결과였다.

이날 훈련을 마침으로써 이제 예비생도 앞에는 ‘행군’이라는 거대한 관문만이 남게 됐다. 최정예 간호장교라는 큰 꿈을 품고 학교를 찾은 예비생도들은 남은 훈련에 더욱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튿날 국간사 소연병장에서 제식 평가를 받은 노수민 생도는 “남은 행군 훈련까지 무사히 마쳐 멋진 간호사관 생도가 되고 싶다”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하고 싶은 일을 이뤄내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며 웃어 보였다. 매서운 칼바람을 밀어내고 다가올 봄바람처럼 상큼한 미소를 보자 그제야 젊음의 싱그러움과 패기를 느낄 수 있었다. 

맹수열 기자 < guns13@dema.mil.kr >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에 대한 의견 개 있습니다. 로그인 후에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