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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견제 포석… 자칫 군비 억제 고삐 풀릴 수도

기사입력 2019. 02. 12   17:38 최종수정 2019. 02. 12   17:40

[특별기고] 미국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 선언: 배경, 전망 및 시사점

 
1987년 미국·러시아 INF 체결… 관계 악화로 파기 위기
러시아 위반 주장해온 美, 탈냉전기 다극체제로의 전환 경계
유럽 중심 조약… 재래식 전력 주력해 온 中 억제하기엔 한계
대중 강경 정책 펼치는 美 행정부, 전략경쟁 본격 착수 의미

러시아의 대규모 군사훈련 ‘자파드 2017’에서 러시아 군이 전략 미사일 이스칸더M을 발사하는 모습. 미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러시아의 INF 위반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20일, 중간선거를 2주 앞둔 시점에 미국의 중거리핵전력조약(INF) 탈퇴를 전격적으로 선언했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12월 4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외교장관회의에서 러시아가 2019년 2월 2일까지 INF에 복귀하지 않으면 조약을 파기하겠다고 통보했다. 미·러 양국 대표는 지난달 15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INF 위반 사항을 논의했으나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INF는 오는 8월, 폼페이오 장관이 탈퇴를 선언한 시점부터 6개월 후에 파기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권 초부터 푸틴 대통령과의 정상외교에 공을 들였지만 2016년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을 조사하는 뮬러 특검이 추진되고, 의회 압력으로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해 대러 제재를 추가하면서 미·러 관계는 극도로 악화된 상태다.



미국의 INF 탈퇴 선언 배경

INF는 1987년 레이건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사거리 500~5500㎞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중·단거리 지상발사형 탄도·순항미사일의 생산과 실험, 배치를 전면 금지하고 모두 폐기한다는 내용으로 맺은 조약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부터 ‘미국에 불리한’ INF 탈퇴 의사를 밝힌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이 러시아의 INF 위반을 주장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중반부터다. 미 국무부가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오바마 행정부 때였다.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조약에서 규정한 사거리 범주를 벗어나는 러시아 미사일 9M729의 기술적 위반 사항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탈냉전기 다극체제로의 전환을 경계하는 정치적 고려가 있다. 그동안 규제 대상이 아니었던 중국이 DF-21 등 중거리 지상발사미사일 개발에 주력해 서태평양 지역의 자유로운 항해를 저해하고 역내 미군기지와 동맹국을 위협하게 된 데 비해, 미국은 여전히 항공모함과 전투기 등에 의존해 전투력이 떨어진다는 우려가 핵심이다. 지난해 3월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당시 태평양사령관이었던 해리 해리스 제독은 INF 때문에 미국은 중국을 억제할 지상발사 능력이 없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미국은 다전장영역전투(multi-domain battle)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도 적극적인 재래식 무기 개발이 필요하다.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은 1987년 레이건(오른쪽) 미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맺은 조약이다. 사진은 조약에 서명하는 모습.  
 연합뉴스

전망

첫 번째 시나리오는 큰 이변 없이 8월에 INF가 종료되는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일본이나 괌 등 인도태평양 지역에 배치할 수 있는 중거리 미사일 개발·생산에 착수할 것이다. 러시아도 좀 더 자유롭게 중거리 미사일을 개발할 것이며 유럽뿐 아니라 극동지역에 미사일을 배치, 중국과 함께 미국에 대응하는 공동전선을 형성할 가능성이 크다. INF 파기가 현실화되면 2021년 2월 만료되는 미·러 간 신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 연장이 불투명해져 군비통제의 빗장이 풀리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두 번째 시나리오는 기한 만료 전 미·러가 재협상에 돌입해 최소한 기술적 차원에서의 조약 준수를 합의하는 것이다. 이 경우 INF의 수명은 당분간 연장될 수 있으나 표면화된 미·러 간 긴장관계는 지속될 것이다. 또한 중국뿐 아니라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란·북한 등 여타 미사일 생산국까지 포함하자는 논의가 확산되면서 다자간 정치적 타협을 이루는 데까지 진통을 겪을 것이다. 현재로서는 러시아가 미국의 요구조건을 수용하면서 INF 재협상에 임할 가능성도 작지만, 중국이 순순히 새로운 조약에 가입할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 보인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INF 탈퇴를 선언했을 뿐 아니라 지난 1월 러시아가 문제가 된 미사일을 공개한 자리에 미측 대표가 참석을 거부함으로써 ‘미국에 의한 조약 파기’라는 정치적 부담을 안게 됐다. 이점에서는 향후 미·러 간 INF 재협상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다른 이슈와 어떻게 연계되는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시사점

첫째, 미국의 INF 탈퇴 선언은 국가안보전략서(NSS 2017)와 국방전략서(NDS 2018)에서 강조한 강대국 간 경쟁으로의 회귀, 특히 미·중 전략경쟁이 본격적으로 이행되는 증거다. 오바마 행정부 때 중국과 협력과 경쟁을 병행하는 유화적 자세였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을 전방위적으로 압박하는 기조다. 오바마 행정부 때 동아태 차관보를 역임하며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기획·주도했던 커트 캠벨이 지난해 ‘포린 어페어스(foreign affairs)’ 기고문에서 “중국이 미국의 기대를 저버렸다”고 일침을 놓았듯, 미국의 현 지도부는 대중국 강경 정책을 초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미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이 공유하는 기본 가치와 목표를 위협하는 중국의 행태가 위협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중국의 추격을 저지해 과학적·기술적 우위를 지키려는 의도가 분명히 존재한다. 올 1월,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전문가들은 미국을 교란시키려 한다는 의도 측면에서 단기적으로는 러시아가 더 큰 위협이지만, 실제 교란시킬 수 있는 역량 차원에서 장기적으로는 중국이 훨씬 더 위협적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에서 미국의 대아시아 이익을 재확인하고 관여 의지를 시연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 체결 당시 지극히 유럽 중심적이었던 INF는 재래식 전력 개발에 집중 투자해온 중국을 억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아시아 지역 패권을 두고 중국과의 본격적인 경쟁에 착수하는 미국의 대응전략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일대일로 전략에 대응하고자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지만, 안보보다는 경제에 집중적으로 자산을 투자해 역내 동맹국과 우방국들에 미국의 관여 의지에 대한 확신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INF 탈퇴 선언을 계기로 서태평양 지역에 미국의 재래식 미사일 전력 배치 구상을 논의하기 시작한다면, 인도태평양 전략의 가시화를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중국의 반발·보복 등에 대비해 미국과 역내 동맹국뿐 아니라 일본·대만·필리핀·호주·베트남 등 동맹국 간 전략적 대화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증대된다.

셋째, 동맹국과 충분히 상의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발표한 미국의 INF 탈퇴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주의적 정책결정 방식의 문제점을 재차 노출시켰다. 앞으로 유사한 상황이 재현되지 않는다고 보장할 수 없지만, 민주당이 올 1월 개원한 제116대 의회의 하원을 장악한 이상 외교·군사·정보위원회 등에서 행정부에 대한 검토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일방적인 정책결정을 최대한 저지할 것으로 기대한다.

넷째, 트럼프 행정부에서 INF 탈퇴를 결정한 배경에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등 네오콘 성향의 강경파 세력의 조언이 있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북한 비핵화 문제에는 한 발 물러서 있지만, 향후 협상 이행과 결과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권보람 한국국방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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