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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함정 자부심으로…최고의 전투 프로로 우뚝”

윤병노 기사입력 2019. 02. 08   17:42 최종수정 2019. 02. 28   10:41

<35> 충무급 구축함(下)-한국해양소년단연맹 최영섭 고문 인터뷰

해사 3기 출신 충무함 2대 함장 지내
기관·함포 등 기존 함정과 체계 달라
여러 전투상황 맞춰 교육 훈련 반복
동·서·남 지키는 막중한 임무 수행

충무함에 견학 온 배우 황정순과 최지희 .

충무함 함장 시절 전출식(1965.6.15)

“기나긴 항해(航海) 끝에 종착항구(終着港口) 가까이 왔습니다. 닻 내리고, 돛 감을 때가 다가옵니다. 황파노도(荒波怒濤) 달려온 긴 세월, 존상께서 베풀어 주신 은덕(恩德)으로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평생 난망(難忘) 빚진 인생입니다. 여생(餘生) 감사드리며 메워 가겠습니다.”

91세의 노병(老兵)이 유언처럼 가슴속 깊이 새겨넣은 글에는 해군에 대한, 국가에 대한 사랑이 넘친다.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최영섭(1968년 대령 예편) 고문. 그는 천생 군인이다. 해군사관학교 3기로 임관한 그는 우리 해군의 첫 번째 전투함 ‘백두산함(PC-701)’ 갑판사관으로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대한해협 해전을 승리로 종결짓는 데 이바지했다. 특히 우리 해군 최초의 구축함 ‘충무함(DD-911)’의 2대 함장을 지낸 것을 평생 자랑으로 여겼다. 


 
대한민국 해군의 오랜 염원…구축함 획득

“충무급 구축함은 대한민국 해군 현대화의 상징이다. 또 속력 20노트(시속 37㎞) 해군이 38노트(시속 70.4㎞) 해군으로 비약한 변곡점이다.”

최 고문은 충무함의 작전배치 초기 교육훈련과 운용체계를 실질적으로 정립한 인물이다. 그는 “구축함이 도입됐을 때 ‘참모총장보다 구축함 함장이 좋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구축함의 위상이 대단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구축함의 위상을 단적으로 설명해주는 표현이다.

“그 시절 구축함은 ‘해군의 꽃’으로 불릴 정도로 상징적인 존재였다. 함장은 굉장히 영광스럽고 중요한 보직이었다. 많은 분이 높은 관심과 애정으로 구축함을 아꼈으며, 모든 장병이 선망하는 대상이었다.”

구축함 획득은 우리 해군의 오랜 염원이었다. 6·25전쟁 중 창파(滄波)를 누비며 달리는 미 해군 구축함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최 고문 역시 미 해군 파견장교로 근무하면서 구축함의 활약을 직접 보고, 느끼며 언젠가는 우리 해군도 (구축함을) 운용하는 날이 올 것으로 굳게 믿었다.

“우리 해군은 작전수행 능력을 현저하게 높여줄 수 있는 구축함을 간절히 원했다. 이를 위해 자체 계획을 세워 미국을 지속적으로 설득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꿈의 군함’으로만 여기던 구축함을 도입하는 결실을 봤다. 구축함은 속력 20노트였던 해군이 38노트 해군으로 발전하는 변곡점이었다. 증대된 기동력과 작전지속 능력, 강력한 화력은 우리 해군에 큰 자신감을 불러일으켰다. 이렇듯 구축함은 우리 해군 현대화의 상징이었다.”


강력한 무장으로 간첩선 나포 및 간첩 생포


최 고문은 1964년 4월부터 1965년 6월까지 충무함을 지휘했다. 그는 간첩선을 나포하고, 간첩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린 것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꼽았다.

최 고문은 1965년 3월 4일 충무함장으로서 마지막 출동 임무 수행을 위해 동해 북방한계선(NLL) 근해를 경비 중이었다. 전투정보실 당직사관이 거진 동쪽 해상에서 약 20노트로 고속 남하하는 의아선박을 레이더로 포착했다. 최 고문은 즉시 전투배치를 발령한 뒤 의아선박을 전속으로 추격했다.

의아선박도 충무함을 인지했는지 갑자기 외해 쪽으로 침로를 틀어 도주했다. 충무함은 거리가 좁혀진 의아선박을 향해 정선(停船)을 의미하는 발광신호를 보냈지만, 의아선박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충무함은 5인치 함포로 경고 사격을 했다.

“구축함의 화력과 기동력에 의아선박이 도주를 포기했고, 우리는 항복을 권유했다. 이후 오랜 설득 끝에 간첩 8명을 생포한 뒤 함상에서 이뤄진 심문을 통해 강원지역에 은신 중인 육지 간첩까지 추가 식별하는 성과를 거뒀다.”

당시 간첩선은 최대 25노트(시속 46.3㎞)까지 속력을 낼 수 있는 고속기관을 장착한 신형 함정이었다. 남파 직전 한국 해군에는 간첩선을 따라잡을 빠른 함정이 없다는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구축함의 능력을 과소평가한 것은 패착이었다.

“우리는 간첩선의 예상을 깨고 단숨에 접근했다. 강한 화염을 뿜어대는 5인치 함포는 간첩의 전의를 상실하게 했다. 분단 이후 우리 해군은 수차례 대간첩 작전을 수행했지만 충무함처럼 간첩선과 간첩을 고스란히 잡은 적은 없었다. 구축함이 해군의 작전수행 능력을 대폭 끌어올렸음을 증명하는 단적인 사례다.”

“경제 생명선 바다 수호 위해 최선 다하길”

대한민국에 단 한 척밖에 없던 충무함의 책무는 막중했다. 동·서·남해를 지키는 최전선의 성채이자 창끝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구축함은 기존 함정과 많은 점이 달랐다. 새로운 체계를 운용하면서 애로사항도 적지 않았다. 최 고문과 승조원들은 단내 나는 교육훈련과 구축함에 근무한다는 자부심으로 장애물을 하나하나 뛰어넘었다.

“기관·함포를 비롯한 체계와 장비가 기존에 운용하던 함정과 너무 달랐다. 작전수행 개념도 마찬가지다. 당장 임무수행이 시급했기에 우리는 시간 날 때마다 함정 운용술을 익히고, 전술과 사격술을 연마했다. 미 해군으로부터 교육요원을 지원받아 함정 운용법을 배우기도 했다. 숨 가쁘게 돌아가는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승조원들은 꿈의 함정에서 근무한다는 자부심을 바탕으로 교육훈련에 임했다. 다양한 전투 상황에 맞춰 자동화 기계처럼 대응하도록 교육훈련을 반복한 결과 우리 승조원들은 최고의 전투 프로가 됐다.”

우리 해군은 창설 이후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해 최첨단 이지스 구축함(DDG)을 운용하는 해군이 됐다. 최 고문은 대한민국의 경제 생명선인 바다를 수호하는 데 온 힘을 다해 달라는 당부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대한민국의 살길은 바다다. 수출입 물동량의 절대다수가 바다를 통해 오간다. 해군은 이렇게 중요한 바다를 수호해야 한다. 변변한 전투함 한 척 없던 대한민국 해군이 이지스 구축함을 운용하는 해군으로 성장했다. 바다에도 새로운 위협이 등장했다. 그러나 해군이 바다를 지켜내야 한다는 사실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후배 장병들이 막중한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우리 바다를 물샐틈없이 지켜주기를 바란다.”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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