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결 한주를열며

[김영식 한주를열며] 봄을 기다림

입력 2019. 02. 08   16:07
업데이트 2019. 02. 08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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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식 합동대 명예교수·(예)육군대장
김영식 합동대 명예교수·(예)육군대장


지난 4일이 입춘(立春)이었다. 조상들이 사용하시던 달력에 따르면 새해가 시작되는 절기가 바로 입춘이다. 24절기는 중국을 기준으로 만들어져서 우리 기후에 꼭 들어맞지 않거니와 지구 온난화에 따른 심각한 기후변화를 고려하면 중국에서 관측한 황도(黃道·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생각으로 그린 궤도)를 활용한 절기에 따라 살다가는 낭패 당하기 십상이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우리는 묘하게도 생활 속에서 24절기를 머릿속에 그리며 산다. 특히 입춘이 주는 메타포(metaphor)는 매우 강렬하다.

유구한 역사를 지내오며 우리네 삶에서 봄에 들어선다는 게 어떤 의미를 가졌을까 생각해 보자. 단열이 전혀 되지 않았던 가옥 구조 속에서 혹독하게 추웠던 기간을 참고 견뎌야 했던 평범한 민초들이 겨우내 아껴 먹었던 먹거리마저 바닥난 겨울의 끝자락이 빨리 지나기를 바라는 것은 생존본능이었다.

봄은 생명이다. 봄이 되면 만물이 소생해 자연이 주는 먹거리가 산과 들에 그득해진다. 주린 배를 어렵사리 채우며 삶을 지속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조들은 엄혹한 겨울과 싸우면서 봄을 애타게 기다렸다. 아직도 오지 않은 봄을 책력에서나마 미리 맞이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어떤 절기보다도 절박한 심정으로 입춘을 기다렸으리라!

봄은 끝과 시작을 이어준다. 24절기의 마지막 대한(大寒)이 지나면서 한 해가 끝나고 입춘에 들면서 비로소 한 해가 시작되는 것은 불연속이 아니라 연속된 흐름이다. 봄의 초입에 다니던 학교를 졸업하고 상급학교로 진학하거나 사회로 진출하는 게 연속성을 보여주는 자연스러운 모양새다. 졸업(commencement)은 그것을 통해 이룰 자기의 꿈을 그리는 또 다른 기다림의 시작이다.

계절의 봄은 그렇게 오는데 마음속 봄은 어떻게 올까 고민하니 그것도 참고 기다리면 온다는 결론에 닿는다. 언뜻 『어린 왕자』에 나오는 구절이 머리를 스친다.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나는 세 시부터 행복해질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난 점점 행복해지겠지. 네 시가 되면, 나는 안달이 나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 알게 되겠지.”

우리는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하다. 지나친 생존경쟁 속에서 잠시 늦는 것을 평생의 낙오로 생각하며 온 힘을 다해 열심히 달려나가는 것만을 최선으로 알며 살았다. 더 오래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기다림의 시간을 더 길게 만들면 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애써 외면하며 지냈다. 천천히 여유롭게 주변을 살피면서 쓸데없는 경쟁과 걱정 속으로 자기를 억지로 몰아넣지 말고 기다림의 미학을 음미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여러분 모두가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에서 나딘 스테어가 “그리고 좀 더 우둔해지리라. 가급적 모든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보다 많은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고 노래한 것을 행동으로 실천함으로써 여유롭게 삶을 음미하는 봄을 보냈으면 좋겠다. 새 생명을 한 아름 안고 봄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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