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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를 움직이면 '영웅'이 된다?

입력 2019. 01. 29   17:28
업데이트 2019. 01. 29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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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영화로 푸는 테크 수다


‘앤트맨’과 양자역학
몸을 구성하는 원자 사이 거리 조정해
개미처럼 작아졌다 커졌다 가능한 ‘앤트맨’
실제로는 원자 속 공간 한계가 있어 불가능
0과 1 변형 ‘큐비트’ 사용하는 양자 컴퓨터  
슈퍼컴으로 수백 년 걸리는 일, 몇분 만에 가능


‘앤트맨과 와스프’의 한 장면.
‘앤트맨과 와스프’의 한 장면.


“수소 원자핵이 농구공만 하다면 전자는 대략 10㎞ 밖에서 움직이고 있다고 보면 된다. 전자는 크기가 거의 없을 만큼 작아서, 서울시만 한 공간 안에 농구공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 있다는 말이다. 우리의 몸도 원자로 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몸은 사실상 텅 비어 있다.”(『김상욱의 양자공부』)  

말이 필요 없는 인류 최고 물리학자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타고난 두뇌? 수학 능력? 이론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는 저서 『보이는 세상은 실재가 아니다』에서 이들의 공통점에 대해 이렇게 단언한다. 바로 ‘무한한 상상력’이라고….

국내에서 지난 10년간 총 누적 관객 수 1억 명을 돌파한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시리즈는 영화적 상상력을 십분 발휘하며 세계관을 확장하고 있다. 그런 마블 작품 중에서도 상상력 끝판왕은 앤트맨 시리즈다.





전편에 이어 뜨거운 화제를 모은 ‘앤트맨과 와스프’는 가볍고 유쾌하고 날렵하다. 설정상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2016)와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2018) 사이의 시간대에서 앤트맨이 활약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캡틴 아메리카의 요청으로 아이언맨 일행과 한판 붙는 바람에 가택연금 중인 앤트맨(폴 러드)은 양자영역으로 빨려 들어간 행크 핌 박사(마이클 더글라스)의 아내이자 1대 와스프(미셸 파이퍼)와 교감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핌 박사와 그의 딸 와스프(이밴절린 릴리)는 양자 터널과 탐색기를 이용해 구출작전을 펼치려 하지만, 정체 모를 존재 고스트(해나 존 케이먼)가 나타나 앞길을 막아선다.

앤트맨 시리즈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지만 이론적으로 난해한 과학적 주제를 다룬다. 바로 ‘양자역학’이다. 전편에 이어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를 가져와 상상의 세계로 관객을 이끈다. 앤트맨은 개미처럼 작아졌다 커졌다 변신하는 것이 자유자재다. 영화 속에서 행크 핌 박사는 원자 사이의 거리를 자유롭게 조정하는 기술을 개발해 슈트를 만든다. 이때 원자 간 거리를 좁혔다 늘렸다 하는 물질을 자신의 이름을 따 ‘핌’ 입자라고 부른다. ‘핌’ 입자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상상의 산물이다.

세상 만물은 원자로 이뤄져 있다. 원자는 원자핵(+전하)과 그 주변을 도는 전자(-전하)로 구성된다. 달이 지구를,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과 같다. 그 사이는 우주 공간처럼 비어 있다. 앤트맨이 자유자재로 크기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은 몸을 구성하는 원자 사이의 거리를 조정해 신체 크기를 바꾸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원자 속 빈 공간이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중 입자가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은 매우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 영역에 들어 있는 입자를 양자라 부르고 양자가 존재할 수 없는 빈 공간을 ‘양자 동공(quantum void)’이라고 말한다.

앤트맨 기술은 질량보존의 법칙에도 어긋난다. 크기가 작아졌다고 해서 물체가 원래 갖고 있는 질량까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전환 전후의 에너지 총량은 동일하다는 에너지보존의 법칙에도 위배된다.


앤트맨의 매력은 신체 사이즈를 작고 크게 변형한다는 것이다. 영자역학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앤트맨과 와스프’.
앤트맨의 매력은 신체 사이즈를 작고 크게 변형한다는 것이다. 영자역학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앤트맨과 와스프’.


영화에 등장하는 빌런 ‘고스트’는 주먹으로 쳐도 허공처럼 소용이 없다. 어릴 적 물리학자 아버지의 실험 도중 사고로 신체에 원자의 불안정화가 일어났다는 설정이다. 이렇게 되면 형체를 유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하지만, 전자의 파동과 전자기력의 작용에 대한 기발한 상상력이 발휘됐다.

영화에는 ‘양자 얽힘’ 개념도 나온다. 전편에서 원자보다 더 작아져 이 세상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행크 핌 박사의 부인이 주인공에게 신호를 보낸다. 앤트맨은 그녀에게 빙의된 것처럼 행동한다. 양자들의 관계에 얽힘이 일어나면 먼 거리에서도 정보를 즉각 전달할 수 있다는 원리에서 착안한 것이다.

앤트맨 시리즈는 마블의 새로운 10주년을 무한 확장시킬 작품이다. 앤트맨이 진입한 양자영역은 ‘닥터 스트레인지’(2016)에서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진입한 시공간과도 연결된다. 마블이 멀티버스(다중우주)로 전개 배경을 넓히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다.



‘꿈의 컴퓨터’ 양자컴퓨터 시대가 온다

이런 양자영역의 세계는 얼마나 현실화될 수 있을까? 양자역학은 눈에 보이지 않는 원자들의 세계, 즉 아주 작은 세계의 운동법칙에 대한 이론이다. 지금까지는 일상 세계와 동떨어진 학문이었지만 현재는 비약적으로 발전해 양자컴퓨터(Quantum Computer)가 개발되기에 이르렀다.

기존 컴퓨터는 0 또는 1로 정보를 표현하는 ‘비트(bit)’를 사용한다. 반면 양자컴퓨터의 원리는 다르다. 양자컴퓨터는 ‘중첩’과 ‘얽힘’이라는 양자의 특성을 활용한다. 양자컴퓨터에서 데이터는 0이면서 동시에 1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기존 컴퓨터보다 훨씬 빠르고 복잡한 연산이 가능하다.

양자컴퓨터의 정보 단위는 ‘큐비트(qubit)’다. 큐비트 1개는 2개의 상태(1, 0)를 표현하고, 큐비트 2개는 동시에 4개의 상태(00, 01, 10, 11)를 표현한다. 1600대의 슈퍼컴퓨터로 8개월이 걸리는 계산도 양자컴퓨터는 몇 시간 만에 답을 낼 수 있다. IBM이 개발한 50큐비트급 양자컴퓨터는 한 번에 2의 50제곱(약 1125조) 비트의 정보를 연산할 수 있다. 그래서 양자컴퓨터를 활용할 수 있는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현재 가장 주목받는 것은 보안 분야다. 슈퍼컴퓨터로는 푸는 데 수백 년이 걸리는 암호 체계도 양자컴퓨터는 수분 만에 풀어낸다.

컴퓨터 속에 들어간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트랜센던스(2014)’에는 사람의 뇌를 그대로 옮길 수 있을 만한 양자컴퓨터가 나온다. 영화 속에서 컴퓨터에 들어간 주인공은 연인을 돕고자 하룻밤에 수백억 원을 벌어들이고, 전국의 모든 시스템을 해킹하여 테러범을 추적한다.

양자는 우리 생활에도 이미 가까이 와 있다. 양자역학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양자점(Quantum dot)은 초미세 반도체나 질병진단 시약, 디스플레이 등에 적용된다. 이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디스플레이가 양자점발광다이오드(QLED)다. SK텔레콤과 KT 등 통신사들이 개발에 참여하고 있는 양자암호통신은 뛰어난 보안성 때문에 행정·국방·의료 등 통신 보안이 필요한 시장에 다방면으로 활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양자역학은 앞으로 화학과 생물학 같은 과학 분야를 넘어 철학과 인문학, 그리고 시간여행에도 활용될 날이 올 것으로 기대한다. 스티븐 호킹의 주장처럼 시간여행이 가능할 날이 언제일까? 김인기 IT칼럼니스트/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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