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완결 병영칼럼

[황인 병영칼럼] 삼선교에서, 연극인들과

입력 2019. 01. 29   14:51
업데이트 2019. 01. 2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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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인 미술평론가
황 인 미술평론가



대학로란 이름은 1980년대 초반에 붙여졌다. 정부에서 젊은이들의 거리로 적당한 곳을 한 군데 선정하기 위해 여론을 모았는데, 후보지 중 하나였던 홍대앞을 누르고 현재의 대학로가 선택됐다. 과거에는 이곳이 전형적인 학생가였다. 성균관대는 예전 그대로이고 서울대학교는 문리대·법대·미대·의대·치대 중 의대와 치대만 남았다.

서울대 의대 정문 왼쪽의 성베다교회 등지에서 방을 빌려 서클활동을 하는 대학생들이 이 거리의 주역이었다. 그들은 청계천 일대의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을 대학로에서 했다. 학생가의 흔적은 클래식 음악다방인 학림다방에 여전히 강하게 남아있다.

대학로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자 이 길은 예술인들로 넘쳐났다. 미술 전시장이 생겨나고 수많은 연극 공연장이 들어섰다. 미술가·무용가는 물론 특히 수많은 연극 종사자들이 이 길을 메웠다. 어느새 상업지역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연극인들이 배겨낼 재간이 없게 되었다.

그들이 새로 개척한 터전이 삼선교다. 소금창고·필통 등 몇 개의 극단과 봄 등 공연장이 삼선교에 터를 잡았다. 최근에는 삼선초등학교 근처에 10여 가구가 입주할 수 있는 연극인들의 공동체 주택도 들어섰다. 배우들이 시세보다 20% 낮은 가격으로 공동체 주택을 임대할 수 있게 되었다.

대학로와 삼선교는 이어져 있다. 도보로 10분이 채 안 걸린다. 대학로의 동쪽 끝은 고갯길이다. 고갯마루는 서울성곽의 혜화문이 있던 자리다. 혜화문의 왼쪽 서울시장 관사 자리로 올랐다가 아기자기한 바와 커피숍이 몰려 있는 골목길을 따라 내려오면 삼선교가 나온다.

삼선교를 경계로 하여 성북천은 상류와 하류로 나뉜다. 상류는 시인·묵객들이 많이 살던 곳이다. 하류는 일찍 복개되었다가 최근 다시 복원되었는데 삼선교시장 등 상업시설이 많다.

성북천 상류에는 외국 대사관과 고급주택이 많다. 간송미술관과 길상사로 오르는 길은 인적이 드물어 호젓하기까지 하다. 화가 김환기 부부가 살았던 노시산방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길 건너에는 만해 한용운이 살던 심우장이 있고, 물길을 따라 내려오면 미술사학자인 최순우의 옛집이 있다.

이 길의 역사를 새로 쓰는 주역은 아무래도 대학로에서 옮겨온 젊은 연극인들이다. 일찍 자리를 잡은 구포국수를 비롯해 성북천을 따라 최근 음식점이 많이 생겨났는데 주 고객이 연극인들이다. 생활에 뛰어든 연극인들이 직접 경영하는 가게들도 있다.

TV로 진출해 생활이 나아진 일부 연극인들이 동료인 전업 연극인들의 물주를 자처해 함께 마시는 아름다운 광경이 자주 눈에 띈다. 연극인답게 발성과 몸짓에 힘이 실려 있다.

예전에 삼선교의 랜드마크는 티라미수로 유명한 나폴레옹제과였다. 복개천이 복원되면서 그 자리는 공원이 되었다. 봄이 오고 벚꽃이 피면 성북천의 저녁은 흥분한다. 새롭게 랜드마크가 된 삼통치킨집 2층에서 맥주를 마시노라면 연극의 새 막이 열리듯 해 질 녘 성곽에서 트럼펫 소리가 밀려온다. 연극적인 분위기를 진짜 연극인들과 함께 맞이하는 기분이 이채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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