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군의 두드림<37> 국방부 근무지원단 헌병대대 근무대 이승혁 병장
청소년 시절 끝없는 방황 학교 자퇴 어머니께 큰 상처
25세 돼서야 반성… 새벽까지 공부해 수의대에 입학
30세 늦깎이 입대 어머니 생각하며 군생활 최선 다짐
실수도 있었지만 포기 없는 노력으로 ‘장관 초병’ 임명
|
|
여타 평범한 장병들과는 달랐다. 분명한 목적의식을 갖고 군에 입대했다. 물론 목표 달성까지의 과정은 마음만큼 쉽지 않았다. 특히 나이가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서른 살 늦깎이 이등병은 포기보다는 도전을 선택했다.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았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통해 주변과 어머니께 인정받고, 국방부의 수문장으로 거듭난 국방부 근무지원단 헌병대대 근무대 이승혁 병장을 만났다.
오랜 방황 끝에 깨달은 ‘어머니의 사랑’
모델을 해도 부족함 없을 것 같은 훤칠한 키와 영화배우 뺨치게 잘생긴 얼굴, 구김 없는 환한 미소의 소유자인 이 병장에게는 남모를 사연이 있었다.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 시절 끝없는 방황으로 17살의 나이에 학교를 자퇴하고, 어머니의 마음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 시간이 지나 방황을 마치고 철이 든 이 병장은 속죄하는 심정으로 어머니에게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자 고군분투했다.
“자퇴하면 친구들과 실컷 놀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처음 몇 달은 그렇게 지내기도 했고요. 그렇게 25살이 됐고, 그제야 ‘내가 실수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지난 시간을 주워 담을 순 없지만 변하기로 결심했죠. 밤잠을 줄여가며 공부했습니다. 해가 뜨면 공부를 시작해 새벽별을 보고 잠자리에 들었죠. 믿지 못하시겠지만, 1년여의 공부 끝에 수의대에 입학하게 됐습니다. 당시 어머니의 말씀이 아직도 생생해요. ‘나는 너를 믿고 있었다’란 말씀이셨죠. 못난 아들이지만 어머니는 저를 믿고 묵묵히 뒤에서 응원하고 계셨던 겁니다. 그때 결심했죠. ‘어머니께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자’, ‘앞으로는 절대 실망시켜 드리지 말자’라고요.”
경례 훈련병서 국방부 장관실의 수문장까지
이 병장의 굳은 의지는 입대 후에도 유지됐다. 잘못 간 길을 되돌아가느라 남들보다 늦은 서른 살에 입대했지만, 딱 하나 ‘어머니’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해 군 생활에 임하기로 결심했다. 첫 시작은 군 생활의 첫발을 내딛는 ‘훈련소’였다.
“‘소대장 훈련병’을 뽑는다는데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큰 키와 나이가 도움이 됐는지 큰 어려움 없이 임명됐습니다. 꽤 보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수료식 날 600여 명의 훈련병을 지휘하는 ‘연대장 훈련병’에도 지원했습니다. 합격하기 위해 매일 경례와 제식 연습을 하다 보니 동기들이 저를 ‘경례 훈련병’이라고 부르더라고요. 노력과 열정이 통했을까요? 2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연대장 훈련병에 뽑히게 됐습니다. 마침내 수료식 날, 제 맞은편에 어머니께서 앉으셔서 제가 지휘하는 모습을 보게 되셨죠. 정말 뿌듯했습니다.”
순탄할 것만 같았던 이 병장의 군 생활에 먹구름이 다가왔다. 문제는 역시 ‘나이’였다. 중대장보다도 많은 나이가 걸림돌이 됐다. 선임들은 이 병장을 껄끄러워했고, 데면데면하게 대했다. 대화가 없다 보니 모르는 부분을 묻지도 못해 실수투성이 문제병사로 낙인찍히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폭탄’ 한 방이 터졌다. 대학 동기를 부대 회계장교로 만난 것. 한없이 뒤처져 있는 것 같아 자신이 초라해진 이 병장은 화장실에 몰래 숨어 울기까지 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연대장 훈련병으로 당당한 모습을 보였는데, 너무 한심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를 생각하며 포기하지 않기로 마음먹었어요. 일단 ‘일 못하는 병사 이미지를 벗어버리자’는 목표를 정했죠. ‘실수 노트’라는 걸 만들어 제가 하는 모든 실수를 적고,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늘 되뇌었습니다. 부족한 군 생활 경험 대신 넘치는 사회 경험을 살려 선임들에게 먼저 다가가기도 했죠. 나중에 선임들이 ‘제 눈빛에서 열심히 하려는 의지와 열정이 보여 모른 척 할 수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포기하지 않는 노력으로 군 생활 목표 달성
어둠이 사라지자 밝은 빛으로 가득해졌다. 이 병장의 군 생활은 변하기 시작했다. 선임들과 가까워지면서 헬스를 같이하게 됐고, ‘알통 공장’이라는 헬스 동아리를 만들었다. 장시간 서 있어야 하는 임무 특성상 이를 뒷받침하는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덕분에 본지가 주최한 ‘캡틴 안의 드림머슬’에서 2등을 해 부상으로 50만 원 상당의 여행상품권을 받기도 했다. 또한 그의 실수노트는 부대 내에서 새로운 근무지침서가 돼 부대원 모두의 매뉴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사연이 알려지면서 이 병장은 국방부와 국방TV가 지난해 주최한 ‘제7회 장병강연대회-도전! 나도 명강사’에 참여하는 기회를 얻게 됐다. 대회 결과 최우수상의 영광을 안으며 국방부 장관 트로피와 함께 소정의 상금, 기념품, 포상휴가까지 받았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60만 국군의 심장인 국방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경호하는 장관 초병으로 임명되는 쾌거를 거뒀다. 경례와 제식은 기본. 소대 내 상호평가, 분대장 의견, 지휘관 면접 등 복잡한 단계를 거쳐 임명되는 ‘장관 초병’에 당당히 뽑힌 것이다.
“누구보다 어머니께서 가장 좋아하셨어요. 장관님 옆에 제가 같이 나온 사진을 한 달이 넘게 SNS 프로필 사진으로 해놓기도 하셨죠. 저는 ‘장관 초병’이 군 생활에서 제가 달성할 수 있는 가장 큰 목표라고 생각했어요. 결국은 해내게 됐죠.” ‘군대를 왜 늦게 왔느냐’고 묻던 사람들이 이제는 ‘무슨 배경이 있어 장관실에서 근무하게 됐느냐’고 묻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훈련소에서 받은 의류대 하나에 ‘포기하지 않는 노력’을 담아 지금의 결과를 얻었다고 말이죠.” 임채무 기자
[‘강군의 Do Dream’ 주인공을 찾습니다]
육군과 국방일보는 군 복무 중 인생의 비전을 설계하고 실천한 모범 장병을 찾아 매주 수요일 자에 실리는 기획연재 ‘강군의 Do Dream’을 통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2019년에도 군 생활 중 자기계발로 꿈에 한 걸음 다가선 장병들의 많은 응모 바랍니다.
응모 기간: 매월 20일
응모 방법: 육군본부 인사참모부 홈페이지(http://psd.arny.mil)->장병 인성바로세우기->장병 비전설계 실천 우수사례 공모
포상: 육군참모총장 상장, 4박5일 포상휴가, 국방일보 보도, 바이네르(주) 구두 2켤레 증정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
이 기사를 스크랩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