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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줄에서 배우는 한 수

입력 2019. 01. 17   16:15
업데이트 2019. 01. 25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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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영 록  대위 해군 이천함
조 영 록 대위 해군 이천함

중국의 제갈량은 사마의가 이끄는 대군의 공격을 받는 위기 상황을 맞았다. 이때 제갈량은 모든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성문마다 20명의 병사에게 민간인 복장을 하고 길을 쓸도록 한 뒤 자신은 성 위 높은 곳에 앉아 향을 피운 채 거문고를 뜯었다. 성 앞에서 사마의는 이런 광경을 보고 제갈량이 분명 군사들을 매복시켰을 것으로 추측하고 군사들을 퇴각시켰다.

위 이야기를 통해 ‘전술적 수읽기’의 중요성을 느낄 수 있다. 제갈량이 보여준 수읽기는 우리에게 익숙한 두뇌 스포츠인 바둑과 같은 게임을 통해 향상할 수 있다.

바둑은 두뇌 싸움을 통해 상대방의 수를 읽고 다음 수를 생각하면서 부분에 치우치지 않고 전체도 봐야 하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하지만 치열한 두뇌 스포츠이기 때문에 지능발달은 물론 집중력까지 발달시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나는 여덟 살 때 할아버지를 따라간 동네 기원에서 어깨너머로 바둑을 접했다. 바둑돌을 장난감처럼 갖고 노는 내 모습을 본 할아버지는 바둑을 가르쳐 주셨고, 나는 바둑을 배우면서 생각하는 힘과 한 수 앞을 내다보는 기술을 시나브로 향상했다. 바둑을 통해 배양된 수읽기 능력은 이후 해군 작전계획의 한 부분을 담당하게 됐을 때 완성도 높은 작전계획을 수립할 수 있는 큰 기폭제가 됐다.

바둑을 군(軍) 전투의 기본인 전술과 비교해 본다면 유사한 점이 많다.

먼저, 바둑의 경기자인 대국자는 해군 함정의 작전관과 비슷하다. 대국자가 대국에서 부하나 병사에 해당하는 바둑돌을 적재적소에 투입해 운용능력을 발휘하는 것처럼 작전관은 전투에서 전장 상황을 분석하고 각종 정보사항을 종합해 세부 작전계획을 수립한다.

또 병력을 투입해 전술을 집행하는 점에서 바둑과 유사하다. 또한, 대국자가 바둑판 위에서 일어나는 바둑돌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효율을 극대화해 대국의 전세를 유리하게 유지하듯이, 작전관도 전술토의와 팀워크 훈련이라는 상호작용을 주관해 부대 전투력을 향상해 전투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한다.

나는 지금 잠수함에서 작전을 담당하고 교육훈련을 주관하는 작전관이다. 한 수 한 수의 바둑돌이 바둑판에서 전투를 치르면서 생사를 가르듯이 나 또한 조국의 바다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주어진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앞으로 해군 장교로서 군사지식을 계속 축적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는 바둑을 통해 배양한 수읽기를 사용한다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해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약 500년 전 이탈리아 피렌체 헌정개혁 연설문을 통해 마키아벨리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최고의 명예는 조국이 부여한 명예이며, 최고의 선(善)은 바로 조국을 위해 행하는 선”이라고 말했다.

군인인 나는 이 말을 가슴속 깊이 새기고 오늘도 19×19줄의 바둑판보다 훨씬 넓은 차가운 바닷속에서 조국의 명예와 선을 위한 최고의 한 수를 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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