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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미경 문화산책]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

입력 2019. 01. 17   15:38
업데이트 2019. 01. 1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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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미 경 세계여행전문가·작가
노 미 경 세계여행전문가·작가


첫 키스, 첫사랑처럼 처음으로 멀리 혼자서 떠난 여행지, 프랑스 수도인 파리는 내게 언제나 각별한 곳으로 느껴진다. 그동안 세계 곳곳을 여행해 봤지만,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곳 중 하나는 프랑스, 그리고 그중에서도 파리였다.

대학교 때 배낭 하나 메고 첫 유럽여행으로 프랑스 파리에 갔다. 해외여행이 지금처럼 많지 않았을 때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벅찬 감동과 설렘을 안고서.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센강으로 달려갔다.

센강은 영화나 시에 나오는 낭만과 사랑이 넘치는, 우연히 아주 멋진 운명의 연인을 만날 것 같은 기대가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한강보다 턱없이 좁은 센강을 보는 나의 첫 느낌은, 초라해진 옛날 애인을 만난 것 같은 실망 그 자체였다. 그런 실망감을 안고 한숨을 쉬면서 지친 몸도 마음도 달랠 겸 센강 유람선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유람선을 타고 센강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순간, 나는 새로운 감동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강변을 따라 아름답고 다양한 모습을 간직한 고풍스러운 건축물에 반했고, 또 다리를 지날 때마다 매력적인 풍경이 내 눈앞에 펼쳐졌다. 나뿐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왜 프랑스 파리에 대해 로망을 가지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이런 파리에서는 누구라도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고 노래를 부르고, 어느 장르라도 충분히 예술가가 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런 낭만적인 파리가 예술의 중심지가 된 것은 루이 14세 덕분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수많은 시민의 희생이 있었다는 사실도 잊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짐은 곧 국가다”라는 말에서 보듯 왕권신수설로 강력한 중앙집권제를 이룬 루이 14세로 인해 유럽의 모든 문화 예술의 중심이 프랑스로 옮겨왔고, 화려한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이탈리아는 오히려 근세의 기틀을 잡지 못한 채 프랑스에 주도권을 넘겨주었다. 사치와 향락의 베르사유는 100년 후 프랑스 혁명을 부른 원인이 되기도 했지만, 이 시기가 프랑스의 요리·패션·예술 등 프랑스적인 것이 제대로 자리 잡은 시기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내가 프랑스를 여행하면서 제일 부러웠고 감동적으로 느낀 것은 선진국다운 시민의식이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과 더불어 최소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는 마음은 기본이다. 거기다 노약자나 장애인 어린이에 대한 배려는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게 그들의 문화다.

여행은 시간도 있고 돈도 있고 건강이 있어야 떠날 수 있지만, 무엇보다도 여행을 떠나고자 하는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실의 바쁜 삶에서 벗어나 잠시 나만의 일탈을 꿈꾼다면 여행을 떠나서 새로운 나를 발견해 보자. 그중에서도 파리는 시간을 거슬러 모든 것이 중세에 머문 듯한 착각과 함께 진정으로 자유로운 여행자의 기쁨을 비로소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정말 멋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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