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용어로 다시 읽는 미술사

오직 죽은 자를 위한 예술 영생을 위한 절규를 담다

입력 2019. 01. 16   16:15
업데이트 2019. 01. 16   16:19
0 댓글

3 ‘영생불사’의 ‘정면성의 법칙’이 만든 이집트 미술


영원불멸 내세관 수천 년 이어져
인간 몸의 형태 영원 보존 위해
흐트러진 모습 용납하지 않아 

 
옆모습인데 시선·몸통 정면 향해
시선 흩어지면 몸도 흩어진다 생각 

 

고대 이집트의 벽화. 지체 높은 사람은 크고 화려하게, 시종이나 아랫사람은 작게 그리는 존대비소의 원칙을 적용했음을 알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의 벽화. 지체 높은 사람은 크고 화려하게, 시종이나 아랫사람은 작게 그리는 존대비소의 원칙을 적용했음을 알 수 있다.
신왕조 시대의 이집트 벽화. 인물들의 얼굴은 옆을 향하고 있지만 시선과 몸통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반면 오리의 경우 자연스러운 옆모습을 담고 있다.
신왕조 시대의 이집트 벽화. 인물들의 얼굴은 옆을 향하고 있지만 시선과 몸통은 정면을 향하고 있다. 반면 오리의 경우 자연스러운 옆모습을 담고 있다.
기원전 2490∼2472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멘카우레와 그의 여왕’.   필자 제공
기원전 2490∼2472년경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멘카우레와 그의 여왕’. 필자 제공

우리에게 아마도 가장 익숙한 고대문명이 이집트 문명일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현실적이며 현재적이었다면 이집트 문명은 내세적으로 영원한 삶, 죽음을 넘어선 삶을 원했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시작된 이집트 문명은 ‘나일강을 차지하는 자가 이집트를 차지한다’는 말처럼 나일강 유역의 비옥한 토지 즉 나일 밸리(Nile Valley)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이집트 문명을 분명하게 드러내는 용어 중 하나는 ‘정면성의 법칙(Gesetz der Frontalitat, Law of Frontality)’이며 그 법칙의 중심에는 ‘영생불사’의 정신이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예술은 죽음과 사후세계에 초점을 두어 영생을 위한 절규에 가까웠다. 그들의 예술은 지금의 삶보다 죽은 후의 삶에 더 집착했다. 따라서 죽은 사람들이 새로운 삶을 즐길 수 있도록 돕기 위해 미술품을 포함한 일상적이고 사치스러운 물건들로 그들의 무덤을 채웠다.


죽은 사람들의 사후 새 삶 돕기 위해 무덤 채워

또 영원한 삶을 위해서는 영혼을 담을 그릇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그릇은 생전의 모습을 가장 분명하고 명확하게 만들어야 죽음 다음의 삶이 계속될 수 있고 영혼이 들어가 영원히 죽지 않고 살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집트인들의 예술은 인간과 자연에 대해 매우 원칙적이며 규칙적이고 상세한 묘사가 특징이다. 물론 당시의 기법이나 기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에 지금 보면 좀 조악하고 부족해 보이지만 당시로서는 최선·최상의 기술을 동원한 것이었다. 따라서 예술가들은 현재의 모든 것을 가능한 한 정확하고 영구적으로 보존하려고 노력했다. 아름답기보다는 완전성에 더 중점을 두었다. 그리고 이런 필요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등장한 것이 ‘정면성의 법칙’이다. 이집트 사람들은 인간의 몸의 형태를 영원히 보존하기 위해서 형태나 동작이 흐트러진 모습은 용납할 수 없었다.

따라서 모든 조각이나 회화작품에서 인물들의 시선은 정면을 분명하게 응시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바라보는 사람이나 바라보아야 하는 사람 모두의 시선이 흩어짐 없이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시선이 흩어진다면 몸도 아울러 흩어진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이 법칙은 아주 철저하게 불문율처럼 지켜졌는데 사람의 옆 모습을 그리거나 만들어도 몸통과 눈은 정면을 보고 있도록 했다. 물론 이 법칙 때문에 매우 부자연스럽기도 하지만, 이런 형식의 원칙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삶이 아니라 생전의 삶의 순간을 정지시키는 동시에 그 순간을 생생하게 표현한다는 점에서 매우 적절하고 의미 있는 방법이었다.

따라서 이들은 변하지 않는 돌이나 나무를 주재료로 사용했다. 또 영원불멸의 내세관을 반영한 정면성의 법칙은 2차원의 미술 형식으로 그들의 무덤이나 사원의 그림, 벽화는 물론 조각상 등 전방위에서 나타난다.

따라서 고대 이집트 예술은 수천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은 딱딱한 예술이었다. 이는 이집트 예술이 변화를 수용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실은 그 범주가 나일 유역에 한정되고 그 밖은 사막으로 둘러싸여 폐쇄적이었다는 점도 이유일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이 원칙은 변함이 없었는데 이는 후기에 이를수록 쇠퇴하기보다는 더 보수적이며 경직된 형태로, 그 옛날 전성기의 영광스러운 시절을 이어갔다.


영생불사 정신에 정복당한 알렉산더 대왕, 파라오가 되다

이후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Alexander the Great, BC 356~BC 323)에 의해 이집트는 정복당했지만, 그는 이집트의 영생불사 정신에 정복당해 파라오가 됐고 그 또한 영원불멸의 모습으로 새겨지고 그려졌다.

그만큼 이집트의 영원불멸, 생명불변의 법칙은 여전히 생명력을 지녔고 후에 로마에 복속돼 멸망할 때까지도 이 원칙은 지켜졌다.

정면성의 법칙은 인체의 평형과 부동성이라는 절대자세를 기본으로 한다. 조각이나 벽화의 인물들은 인체를 좌우로 양분하는 중앙선을 중심으로 분명하게 좌우대칭을 이룬다. 또 인물의 본질에 중점을 두어 닮는 것보다는 절대적인 형상을 만들고자 했다. 약 3000년을 이어온 이 방법은 이집트의 지배자 또는 왕족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아 늘 언제나 똑같은 한 인물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남자들은 모두 팔과 발을 모은 채 차렷 자세를 취한 모습이다. 여성은 허리를 곧게 펴고 가슴은 풍만하게 묘사되지만, 부동의 차렷 자세는 동일하다.

모든 이집트 예술은 이 하나의 법칙에 따라야 했고 그래서 이 방식은 수천 년 동안 거의 동일하게 유지됐다. 가장 존경받는 예술가는 과거의 기법과 스타일을 그대로 고수하는 사람들이었다. 피라미드(Pyramid)와 미라(Mummy), 스핑크스(Sphinx) 같은 것도 이런 영생불사라는 믿음에 대한 결과물이다. 다만 벽화에서 보이는 일상은 비교적 사실적이며 살아있는 듯 생동감 넘치게 그렸다. 주인공의 모습은 정면성의 법칙에 따라야 했지만, 배경은 그리는 이들의 자유였다. 따라서 종종 일상생활을 생생하게 묘사한 것들이 발견된다. 또 집과 그 안에 사는 사람, 새, 수영장, 신 등은 기하학적으로 디자인한 모습을 지니기도 한다. 다만 여기서도 지체 높은 사람은 크고 화려하게, 시종이나 아랫사람들은 작게 그리는 존대비소(尊大卑小)의 원칙을 지켰다. 아무튼 이집트 미술은 살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죽은 자를 위한 것이었으며, 오늘날의 미술이 지닌 감상과 장식의 역할이 아니라 현세와 영생을 이어주는 충실한 중개자였다. 


<정준모 큐레이터/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