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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에 집착한 파워포인트… ‘숲 대신 나무’에 함몰

기사입력 2019. 01. 14   16:03 최종수정 2019. 01. 14   16:06

<15> ‘효과중심작전(EBO)’의 폐해와 영향 <下·최종회>

효과중심작전의 ‘효과’를 가시화하기에 유용했던 ‘파워포인트’
색상과 애니메이션 추가되면서 시간·인력에 많은 부작용 발생
폐해가 있는 이론·모델은 무책임·무관심·순응주의 부를 수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파워포인트의 저주’ 사례. 실제로 아프가니스탄전에서 사용된 것이라고 한다. 실제 지휘통제실에서 사용하는 상황보고 프레젠테이션은 이것보다 열 배는 더 복잡하다. 필자 제공
미군이 효과중심작전(EBO)을 공식 폐기하자 이를 받아들였던 국가의 군대는 혼란에 빠졌다.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무관심과 무책임이었다. 평소 효과중심작전 관련 업무를 탐탁지 않게 생각했거나, 직접 관련이 없는 장교들은 손을 놓아버렸다. 그들로서는 어제까지 밤새워 만들어 보내주던 데이터와 파워포인트 틀을 ‘참고자료’ 폴더에 넣으면 그만이었다.
이런 기이한 행태는 다른 부작용으로 이어졌다. 바로 ‘파워포인트의 저주’다. 예나 지금이나 군대의 작전계획, 상황보고, 현황유지 활동에서 파워포인트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니 저주라고 부를 만하다. 이 저주의 중심에 바로 효과중심작전이 있다.

파워포인트는 2003년 이라크전에서 효과중심작전의 핵심 도구·절차 기능을 했다(물론 그 이전에도 상황보고 등의 범용 툴로 사용됐다). 파워포인트의 화려한 기능은 추상적 개념인 ‘효과’를 가시화하기에 좋았다. 작동법이 단순해 상하 제대가 정보와 이해를 공유하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뭐든 적당할 때는 좋다. 그러나 누군가 반칙을 하는 순간 과열 경쟁이 시작된다. 파워포인트에 색상이 들어가고 애니메이션이 더해지면서 각 제대 상황실은 컴퓨터 실습학원처럼 변했다. 글을 준비하면서 인터뷰했던 장교들의 생각은 대개 비슷했다.

2000년대 초반 효과중심작전과 파워포인트를 사용했던 군대가 겪었던 시행착오는 대략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훈련과 연습을 시작하기 전 사령부와 야전부대의 실무자들은 파워포인트로 구성된 수많은 ‘양식’을 미리 만들고 채우기 위해 몇 날 며칠 밤을 새웠다. 그들은 작전계획과 수행을 구상하고 준비하는 것보다 지휘관이 도착했을 때 보고할 파워포인트 화면을 ‘예쁘게’ 작성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썼다. 에너지를 다 썼기 때문에 보고가 끝나고 지휘관이 상황실을 나가면 행정병이 없는 상급 제대의 상황실에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것은 주로 소령·중령이었다. 상태를 의미하는 원 안의 색상을 노랗고 빨갛게 맞추고 그 가로세로 간격을 맞추는 단순 노동에 수십·수백 명의 영관 장교가 동원됐다.

파워포인트 화면은 더욱 화려해져 갔다. 프레젠테이션의 판은 많아졌고 솜씨는 정교해졌다. 파워포인트에 고도로 특화된 실무자들이 특정 지휘관을 따라 보직을 이동하는 사례도 발생했다.

누군가 제임스 매티스 같은 지침을 내려주길 고대했지만, 그 누구도 자신이 제임스 매티스 같은 결정을 하려고 하지 않았다. 모두가 바라는 것과는 정반대로 파워포인트의 영역은 점점 넓어졌다. 노랗고 빨갛게 채우면 되던 원형의 상태표시 부호에 누군가 “그러데이션을 넣어서 앰버에서 레드로 변화했다는 걸 드러나게 하라”고 했다. 그다음엔 “그러데이션의 방향을 수직으로 하라”더니 조금 지나자 “보기 좋게 45도로 틀어라”고 했다. “완료된 과제 앞에는 붉은 갈매기 표시를 넣으라”고 했고, “추가 설명은 작은 녹색 글씨로 써넣으라”고 했다. 실무자들은 새벽까지 남아서 그것들의 가로세로 간격을 맞췄다. 이는 곧장 다른 부서, 다른 부대로 전파됐다.

지금까지 ‘효과중심작전’이 세계 각국 군대에 수입된 배경과 폐해에 대해 적었다. 미군이 폐기를 선언했는데도 어떤 군대는 이를 버리지 않고 계속 썼다 했다. 그러는 와중에 이런저런 일들이 작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도 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일이 벌어졌을까. 이런 종류의 현상이 벌어진 원인에 관해 졸저 『전쟁이론과 군사교리』(지문당, 2011)에서는 세 가지로 추론했다.

첫째는 ‘역할 착각’이다. 냉전기 미 군사학교에 유학을 하고 귀국하는 외국군 장교들은 말하자면 ‘문익점’의 역할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목화씨를 고국에 들여온 문익점처럼 우수 선진 군사이론을 자국군에 전파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여겼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파종에서 추수까지의 사이클이 잘 돌아만 가면 문제야 없다. 그러나 너도나도 씨만 뿌리고 돌보지를 않으니 생장과 수확이 없었다. 신교리를 번역해 소개 정도만 하고 연구하지는 않은 것이다. 미군 군사교리와 야전교범을 받아들이고 있는 군대의 현주소가 대개 이렇다.

둘째는 ‘자국군 현실의 동화주의적 해석’이다. 이는 역할 착각과 연계된 오판이다. 미군의 새로운 이론과 모델에 자국군을 끼워 맞추어 해석하려는 경향이다. 이른바 ‘발을 군화에 맞추는’ 것이다. 자국이 처한 안보환경과 위협, 자국군의 능력과 제한사항은 미국·미군의 그것과 다른데 편차를 고려하지 않고 효과중심작전을 수입해 그대로 쓰는 것이다.

셋째는 ‘이론 대기주의’이다. 이는 역할 착각과 자국군 현실의 동화주의적 해석이 만난 자리에서 생겨났다. 최신 이론과 모델을 일단 소개해놓고 자국군의 후진적 현실이 언젠가 그 이론·모델의 적용이 가능해질 때까지 대기한다는 것이다.

위의 세 가지 원인이 만나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첫째는 조직에 무책임이 만연한다. 폐해가 있는 이론·모델을 들여온 이는 많아도 그것에 책임을 진 이는 보이지 않는다. 문제가 생겨도 해결하지 않은 채 부서 해체, 보직 이동으로 없었던 일처럼 된다. 이런 일을 목도한 구성원들이 어떤 마음을 갖게 되겠는가. 바로 무책임이다.

둘째는 이론적인 것에 대한 무관심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영어투성이인 이론·모델이 반복해서 왔다가 가는 것을 목도한 이들은 점차 지적으로 무관심해진다. ‘어차피 저렇게 시끌벅적하다가 다른 새로운 뭔가로 대체될 걸 내가 뭐하러…’ 하는 마음이 드는 것이다.

셋째는 현실 순응주의자, 소극적 숙명주의자가 많아지는 것이다. 이들은 쉽게 말해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뭐”라는 말을 하는 장교들이다. 순응주의·숙명주의는 조직에 만연한 무책임과 반지성주의를 극복하려는 문제의식을 아예 형성하지 않음으로써 이를 자연스러운 것 또는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집단적 생각·태도다. 위의 세 가지 현상 하나하나가 혁신에 반하는 것이다.



※ ‘효과중심작전(EBO)’의 폐해와 영향(下)을 마지막으로 ‘미 육군개혁 이야기’의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성원해 주신 독자 여러분에게 감사드립니다.

<남보람 박사/군사편찬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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