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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이제 그만 둘이 하나로

김여정

입력 2019. 01. 13   13:09
업데이트 2019. 01. 22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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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그만 둘이 하나로 *


                                  김 여 정*


 부르기에도 차마 부르기에도 

 목이 메이고 가슴이 떨리는 

 형제 자매여, 한 핏줄 겨레여, 

 이제 그만 둘이 하나로 

 이제 그만 반쪽 심장이 온전한 하나의 심장으로 

 이제 그만 반쪽 마비의 다리가 

 풀린 튼튼한 두 다리로 

 꽝 꽈당 땅을 울리며 힘차게 일어서야 할 때가 아니냐 


 두동강 난 허리로 장장 반세기를 누어 앓아온 

 실로 오래고 오랜 어두운 죽음의 병상에서 

 이제 그만 훌훌 털고 일어나 걸어나와야 할 때가 아니냐 

 목고개가 부러지던 기다림의 고통 

 가슴이 저며지던 그리움의 고통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던 절망의 고통 

 그 밤낮의 피눈물의 골짝 

 그 밤낮의 매운 한의 골짝에서 

 벗어나와 달려나와 둘이 하나로 부둥켜 안고 

그 긴 세월 굳어 돌이 되었던 천만 이산가족의 심장에 

그 긴 세월 불타 숯이 되었던 7천만 겨레의 심장에 

 기쁨의 새 피 새 생명의 새 피가 

 용솟음치게 해야할 때가 아니냐 


 만나고 싶다고 보고 싶다고 

 만나지 않고는 죽을 수도 없다고 

 보지 않고는 죽어서도 눈감을 수 없다고 

 말하기에도 눈물이 강물을 이루고 

 통곡이 강물을, 강물 속 돌들이 피로 물들이는 

 형제여 자매여, 한 핏줄 겨레여, 

 자나깨나 우리는 얼마나 원해 왔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길에서 조차 

 "이 나라 살리는 통일 이 겨레 살리는 통일"

 네가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내가 네 안으로 들어가는  

 오로지 조국의 평화통일이 아니었던가 


 기나긴 세월 반세기 

 갓난아기가 머리털 희끗희끗 노인이 된 지천명의 나이 

 이제 우리도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한  

 하늘의 뜻을 깨달아 휴전선도 걷어내고 

 철조망도 걷어내고 감시대도 헐어내고  

 이제 한숨도 눈물도 그만, 원망도 미움도 그만, 

 아아, 우리의 목을 졸라 숨통을 막던 

 세상에 둘도 없는 민족의 비극은 영영 그만 

 손에 손을 맞잡고 가슴에 가슴을 맞대고 

 막혔던 강물을 터서 


 독립문에서 판문점까지가 아니라 

 독립문에서 백두산까지 

 개성에서 판문점까지가 아니라 

 개성에서 한라산까지 

 드디어 한라에서 백두 백두에서 한라까지 

 3천리에 뻗친 평화 통일의 인간사슬 손에 손잡고 

 빙글빙글 강강수월래 

 한강에서 한탄강까지 대동강에서 

 가슴과 가슴이 하나로 묶이는 고운 피의 띠 

 뜨거운 맥박의 띠 

 강물과 강물이 손잡고 빙글빙글 강강수월래 

 접동새가 되어 부엉새가 되어 

 아무래도 눈 감을 수 없는 무덤도 없는 죽음의 혼백들 

 산과 들 강물과 바다 허공중에 떠도는 한맺힌 

 그 수많은 넋들도 얼싸안고 강강수월래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아들과 딸을 부르며 

손자와 손녀를 부르며 형과 아우를 부르며 

맺히고 맺혔던 피멍을 풀어내고 

막히고 막혔던 담을 헐어내고 

둑 무너진 밀물처럼 달려가고 달려나와

둘이 하나가 되어 

너도 나도 아닌 하나의 우리로 

세계를 껴안는 한민족의 둥근 띠로 

지구를 밝히는 무궁화 꽃으로 다시 피어나

우리의 눈과 눈에 축복의 촛불을 밝혀서

우리의 가슴에서 희망의 풍선을 날려 보내고

우리의 가슴에서 평화의 비둘기를 날려 보내자  

그리하여 우리 땅을 우리의 하늘을 다시열자 형제여, 핏줄이여! 


* 이 시는 1997년 6월 강원도 화천군 평화의 댐 '비목공원'에서 열린 제2회 비목문화제 에서 시인이 낭송하였습니다.


▶ 시인 김여정

193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1968년 시 '화음'으로 문단에 올랐다. 1978년 월탄문학상, 1991년 대한민국 문학상, 1996년 공초문학상, 2003년 시인들이 뽑은 시인상 등을 수상했다.




김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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