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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두진 문화산책] 군사용 건축도 아름답다

입력 2019. 01. 03   15:42
업데이트 2019. 01. 03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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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두 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가
황 두 진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대표·건축가


제목을 보고 펄쩍 뛰는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군대와 관련된 모든 것, 그중에서도 군사용 건축을 저런 시각으로 본다는 것이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가? 하지만 이런 관점은 역사적으로 분명히 존재한다. 아름다움은 인간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의 하나다. 잘 만들어진 모든 것에는 고유한 아름다움이 있으며 군사 분야 또한 예외가 아니다.

군사용 건축에는 일단 절제의 아름다움이 있다. 우리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너무나 아쉽게도 환경의 무질서가 공통으로 느껴진다. 특히 농촌으로 가면 배경의 자연과 완전히 동떨어진 혼잡한 조형과 색채가 난무한다. 쾌적한 자연 속에 산다는 느낌을 받기 어렵다. 그런데 군부대들은 조금 예외다. 일단 위장 개념이 적용돼 그런지 크게 눈에 띄지 않는다. 울긋불긋한 군부대를 본 적이 있는가? 흔히 국방색이라고 하는 것도 알고 보면 자연의 색채 팔레트에서 가장 보편적인 색을 취한 것뿐이다. 내부 또한 모든 것이 가지런하다. 쓰레기 같은 것도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한마디로 질서 잡힌 세계다.

군사용 건축에는 낭비라는 것이 없다. 존재의 목적상 한정된 물자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 결과는 역시 고유의 아름다움으로 나타난다. 군더더기 없이 본래의 목표에 충실한 담백함 혹은 균형 같은 것이다. 어떤 군사용 건물은 상당한 영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단순한 조형과 효율적인 구조에 의한 비행기 격납고 같은 것은 기계시대의 미학을 추구하는 수많은 근현대 건축가들에게 영감의 원천이었다. 그것은 군사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훨씬 약할 뿐만 아니라 군사 문화를 사회의 귀중한 자산으로 여기는 서구에서 훨씬 더 강하게 드러난 경향이다. 알고 보면 요즘 유행하는 친환경 건축의 기본적인 생각들이 이미 군사용 건축에 다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설적이지만 화려한 군사용 건축도 분명히 있다. 수원에 있는 화성은 그 대표적인 예다. 조선 후기의 모든 창의력이 집약된 결과물인 총연장 5.52㎞의 성곽 건축이다. 군데군데의 망루며 누각 등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방화수류정은 이것이 과연 군사용 건축물인가 할 정도로 유혹적이다. 화성이 너무 화려하고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신하들의 지적에 당시 조선의 군주였던 정조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아름다움이 강함을 이길 것이다.”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배경에는 아름다움에 대한 이러한 치열한 믿음이 있었다.

군사용 건축에도 많은 변화가 느껴진다. 간단히 말하면 점점 더 민간 건축과 구별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종종 놀라기도 한다. 군대 안팎에서 일고 있는 새로운 시대의 흐름에 부응한 결과일 것이며 일단 긍정적인 변화다. 이미 김중업이 설계한 진해의 해군공관이나 육사박물관, 그리고 김종성의 육사도서관 같은 것은 대한민국 근대 건축사의 귀중한 사례다. 다만 군사용 건축은 그 목적상 자체의 고유한 가치를 지니며, 그 가치에서 군사용 건축 특유의 아름다움이 나온다는 것 또한 명심할 필요가 있다. 고유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면서도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훌륭한 군사용 건축의 출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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