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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애 문화산책] Y에게 보내는 반성문

입력 2018. 12. 20   17:17
업데이트 2018. 12. 20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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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애 숙명여대 총장
강정애 숙명여대 총장


지난달 나는 특별한 일주일을 보냈다. 학생들과 함께 김장 봉사활동을 하고, 창업을 준비하는 캠퍼스의 젊은 청춘들을 만나 그들의 고충을 함께 나눴으며, 신입생들에게 112년 전, 지금의 숙명여대 모체가 된 명신여학교를 설립한 대한제국 황실의 역사를 보여주기 위해 덕수궁 석조전도 다녀왔다.

이처럼 학생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총장에 취임한 후 지난 2년간 끝없이 이어지는 회의와 밀려오는 행정업무들을 마주하다 보니 막상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아니, 좀 더 솔직해지는 용기를 내자면, 총장이 되기 전 평교수 시절에 학생들과 얼마나 열심히 소통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게 된다. 강의실에 앉아 있는 학생들의 마음과 머릿속을 짓누르는 고민과 걱정을 함께 짊어지려는 노력보다, 강의실 밖의 일에 더 많은 신경을 쓴 것은 아니었는지. 이 칼럼은 그런 자화상에 대한 나의 반성문이기도 하다

우리 시대 청춘들은 마치 신의 노여움을 사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로 밀고 올라가야 하는 시시포스의 형벌처럼 치열한 경쟁의 쳇바퀴에 몸을 맡겨야 한다. 초·중·고부터 시작되는 옆자리 친구와의 내신 경쟁은 대학에 들어와도 학점 경쟁으로 이어진다. 졸업하고 바늘 같이 좁은 취업의 관문을 통과해도 끝이 아니다. 이들에게 ‘도전하라. 그러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고 떠미는 건 어쩌면 잔인한 일이다. 인내는 쓰지만 그 열매는 더욱 쓰다.

그런 환경에 놓인 우리 젊은이들의 선택이 아찔해진다. 올해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발표한 2017 청년 사회경제실태조사에서 해외 이주를 고려하는 청년들이 40%에 육박했다고 한다. 그 이유의 무게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단지 행복한 삶을 찾기 위해서다. ‘탈조선’이라는 신조어는 고용불안과 사회·경제적으로 누적된 불평등에 지친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슬픈 탈출구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보다 경쟁과 생존의 법칙이 귀하게 대접받는 사회에서는 협업과 소통을 기대하기 어렵다. 젊은 세대와 기성세대의 대립과 갈등도 더욱 심해질 뿐이다. 사회적 기반이 취약한 ‘저신뢰 사회’가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서 있는 현실이기도 하다. 이 같은 청년들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주체 중 하나는 대학이다. 입시지옥에서 벗어나 자신의 인생을 차분히 설계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간이기도 한 대학 1·2학년 때조차 학생들은 각종 스펙 쌓기에 내몰리고 있다. 안식처가 되지 못하는 대학은 청년과 사회로부터 외면받을 수밖에 없다.

올해 젊은이들 사이에 ‘소확행’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이었다. 현재를 중시하는 가치관의 변화 탓도 있겠지만 스스로 기대 수준과 자기만족의 범위를 좁힌다는 의미에서, 한편으로는 요즘 청년들의 비애감의 그 씁쓸함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게 된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시점에서 후회보다는 다가올 미래와 무거워지는 대학의 책임에 기대를 걸어보려 한다. 부디 내년에는 우리 청년들이 조금 더 웃을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지길, 그리고 이런 반성문은 더 이상 필요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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