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영화로 본 전쟁사

어머니는 왜 대의에 희생되었나

입력 2018. 12. 18   16:08
업데이트 2018. 12. 18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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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음모자 (The Conspirator), 2009 감독: 로버트 레드퍼드/출연: 제임스 맥어보이, 로빈 라이트


 
어머니는 왜 대의에 희생되었나
링컨 암살 음모자 아들 위해
혼자 책임 안고 가려는 어머니와
무죄 입증하려는 변호사 이야기
비상사태에 빠진 정부의 조급함
일방적 여론몰이식 재판 등 고발
역사적 사건 가공 없이 그려내  




  
미국 남북전쟁(1861∼1865)은 국가적인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싸운 최초의 현대적인 총력전이었다.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 군대가 보여준 총력전과는 또 다른 전술의 변화였다. 상대방의 전쟁 수행 능력 자체를 목표로 삼아 전략적으로 공격하는 군사 행위였다. 전쟁의 양상은 아주 격렬했고 피해는 엄청났다. 북군·남군 합쳐 60만의 젊은이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었고, 재산 피해는 당시 기준으로 약 30억 달러에 달했는데, 이는 1차 대전의 재산 피해보다도 많은 액수였다. 특히 남부는 농토와 가옥들이 초토화됐다.

더 큰 문제는 남·북부 간의 적대감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악화됐다는 것이다. 패자인 남부인들은 북부 사람들을 ‘양키(The Yankees)’라고 부르며 백안시했다. 한마디로 전쟁 직후 미국의 분위기는 과연 미국이 전쟁 이전의 ‘하나의 국가’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할 정도였다. 설상가상으로 1865년 4월 15일 남부분리주의자에 의해 링컨이 암살되면서 남부는 군정(軍政) 하에 놓이게 된다.




국가적 비극 상황 인권은 없는가

영화 ‘음모자’는 1865년 링컨 암살 사건을 배경으로 암살 음모자인 아들을 위해 모든 것을 혼자 안고 가려는 어머니와 그런 그녀를 구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하는 변호사의 이야기다. 진실보다 더 소중한 가족을 지키려는 모성과 대통령 암살이라는 국가적 비극 상황에서도 개인의 인권과 진실을 위해 애쓰는 북군 출신 변호사의 고군분투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인 사건을 가공 없이 거의 그대로 옮긴 영화는 시종 진지하며 심각하다.

영화는 남북전쟁이 끝나가는 1865년, 링컨 대통령이 암살되면서 시작한다. 범인은 배우인 존 부스 등 남부 출신 분리주의자들. 부스는 북군의 추격 끝에 사살되고 다른 음모자들은 체포된다. 이들 중 메리 서랏(로빈 라이트)은 여관을 운영하는 중년 여성이다. 아들이 가담한 암살 음모를 방관, 동조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그녀의 변호사는 존슨 의원. 하지만 그는 남부 출신이어서 재판에 승산이 없다고 판단, 북군 대위 출신인 프레데릭 에이컨(제임스 맥어보이)에게 일임한다. 선배의 강요로 마지못해 변호를 맡게 된 에이컨 역시 그녀가 유죄임을 확신한다. 그러나 재판이 진행될수록 에이컨은 서랏에게 죄가 없음을 깨닫게 된다.



재심 결정 받아낸 변호사

하지만 이미 정부는 짜맞추기식 재판으로 몰고 가고 있었다. 모두가 등을 돌린 상황에서 에이컨은 그녀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 법원으로부터 재심 결정을 받아낸다. 그러나 미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그녀를 교수형에 처한다.

영화는 남북전쟁에 참전한 북군 장교(그는 영화 초반 ‘전쟁영웅’으로 불린다) 출신 변호사를 통해, 승자인 링컨정부가 주도하는 당시 유일한 여성 음모자 메리 서랏에 대한 재판이 불공정했다고 고발한다. 아군이 아군의 잘못을 지적한 것이다.

주인공 에이컨은 국가 지도자를 잃어 비상사태에 빠진 정부의 조급함과 일방적인 여론몰이식 재판, 전우 및 사랑하는 연인 등의 외면으로 곤경에 빠진 상황에서도 오직 진실과 한 여자의 인권을 위해 사력을 다한다. 영화 종반, 에이컨은 메리를 유죄로 몰아가는 법정을 향해 “메리 서랏에게 이런 불의를 자행하는 건 복수심에 신성한 권리를 희생시키는 겁니다”라며 마녀 사냥식의 불공정한 재판을 비판한다.

영화는 법정(군사재판)에서 오가는 변호인 측과 검사 측 간의 설전이 백미다. 주인공의 선배 변호사인 존슨 의원은 국가적 슬픔에 대한 빠른 복수로 국민화합을 이뤄야 하는 링컨정부 관료에 맞서 “이 재판은 헌법에 위배된다. 피고(서랏)는 민간인으로서 배심원 앞에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있다”며 재판 형식을 문제 삼는다.

이에 검사 측이 “국가적인 슬픔만 연장될 뿐”이라며 신속한 재판을 요구하자 존슨은 다시 “우리 모두 지도자를 잃어 슬프다. 그러나 슬프다고 판단력을 잃고 마녀사냥을 해선 안 된다. 우리 선조들께서 독재국가를 원했다면 대통령과 전쟁부 장관에게 그런 무분별한 권한을 줬을 것이다. 하지만 선조들은 헌법을 만들어 권력남용을 막았다. 특히 이럴 때를 위해 만드신 거다!”라며 헌법의 가치를 주장한다.

영화 종반 에이컨은 서랏의 교수형 집행 직전에 극적으로 재심 결정을 받아낸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전쟁부 장관은 에이컨에게 “자넨 대통령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질서를 바로잡고, 정의를 실현하고 싶지 않았나?”라며 언성을 높인다. 이에 에이컨은 “장관님이 꾀하자고 하는 것은 정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라고 맞받아친다. 하지만 결국 ‘전시 중에 법은 침묵한다’는 검사 측 말대로 서랏은 교수형을 당한다.



법정서 오가는 설전 백미

감독 로버트 레드퍼드는 자신의 영화를 “한 개인이 세칭 ‘대의(大義)’라는 것에 의해 어떻게 희생되는지를 보여주는 역사 속의 숨은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집념의 변호사 역을 맡은 제임스 맥어보이의 이성적이며 차분한 연기가 돋보이며, 메리 서랏 역을 맡은 로빈 라이트의 대사 없는 절제된 연기도 인상적이다.

<김병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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