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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권’, 합법적으로 보장된 권리이자 의무

기사입력 2018. 12. 11   16:13 최종수정 2019. 01. 14   15:45

●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로 알아보는 장병 인권이야기 ⑥ 지휘계통을 따르지 않은 신고라는 이유로 한 징계 처분은 부당 : 진정권

2017년 군 인권실태 설문조사서
‘진정조사’ 처리 만족도 가장 높아

 
‘문제 미해결’에 따른 불만족 많고
신원 노출로 인한 사후 불이익 우려

 
‘군인복무기본법’에 신고 의무 부과
‘신병교육 가이드북’에 진정권 명시  

삽화=김신철 작가



군 장병의 권리구제 제도
군에는 다양한 권리구제 제도가 있습니다. 대표적인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침해 조사·구제제도 이외에도 소원수리, 병영생활 상담관, 인권 상담관, 성 고충 상담관, 군 인권 지키미, 고충심사, 국방 헬프콜 등이 그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병영부조리에 대한 상담이나 침해 구제에 빈틈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 처리 만족도는 어떤 제도가 가장 높을까요. 2017년 국방연구원에서 실시한 군 인권실태 설문조사에 의하면 군 내 제도로는 ‘진정조사’의 처리 만족도가 76.1%로 가장 높았고, ‘소원수리’는 47.2%를 차지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처리 만족도는 75%로 군 내 제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만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각종 권리구제 제도에 대한 불만족 이유로는 ‘문제 미해결’에 따른 불만이 가장 많고, ‘신원 노출로 인한 사후 불이익’을 꼽은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장병 여러분들은 이에 동의하시나요? 과거 「군인복무규율」 제25조는 군인의 고충은 지휘계통에 따라 상담 또는 건의하도록 하고, ‘복무와 관련된 고충사항을 진정·집단서명 기타 법령이 정하지 아니한 방법을 통하여 군 외부에 그 해결을 요청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여 마치 군인은 지휘계통을 통해서만 고충을 제기할 수 있는 것처럼 해석될 소지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2017. 6. 22. 시행된 「군인복무기본법」 제43조는 아예 군인의 신고의무를 규정하고 병영생활에서 다른 군인이 구타, 폭언, 가혹행위 및 집단 따돌림 등 사적 제재를 하거나, 성추행 및 성폭력 행위를 한 사실을 알게 된 경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제기할 수 있음을 명문화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법률 규정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병영부조리에 대한 신고는 쉽지 않습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삽화=김신철 작가



우리가 신고를 안 하는 이유
2014년 윤 일병 폭행 사망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선임병들은 윤 일병이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의무대에 전입한 2주 후부터 사망 당시까지 약 1년간 지속적으로 폭언, 구타·폭행을 자행했습니다. 가해자는 6명이었습니다. 주범인 이 병장은 윤 일병뿐만 아니라 다른 후임들에게도 폭행을 행사했습니다. “후임들을 풀어주면 기어오른다.” “맞기 싫으면 후임들 관리 잘하라.” 부대원들은 최고 선임인 이 병장의 폭언, 구타·폭행에 부대 생활이 무서웠습니다.

윤 일병 사망사건에는 놀라운 사실이 한 가지 있습니다. 당시 윤 일병은 1년 가까이 폭행을 당했습니다. 폭행 현장을 목격했거나 알고 있는 부대원들은 하나도 없었을까요? 왜 이들은 그 긴 기간 동안 아무도 신고를 하지 않았을까요? 사건이 불거진 후 진행된 조사에서 37%의 부대원들이 윤 일병이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목격하거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들은 왜 신고를 하지 않았을까요?

“주범인 이 병장의 폭행 사실을 신고해봤자 이 병장은 분대 이동 정도로 조치가 끝날 거예요. 그래서 제가 이 병장이 제대할 때까지 그냥 기다리자고 했어요. 간부에게 이야기해봐도 간부는 일과시간 이후면 퇴근하기 때문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럼 저희는 또다시 이 병장에게 폭행을 당하겠죠.” 윤 일병 사망사건의 가해자이면서 이 병장에게 폭행을 당해온 한 부대원의 이야기입니다.

“제 포대 일도 아니고, 상부에 보고하면 제가 속한 포대도 조사될 수 있으니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윤 일병의 옆 포대 부대원의 이야기입니다. “신고를 해도 개선되지 않을 겁니다.”, “신고를 하면 당사자에게 불리합니다.”, “신고자에 대한 비밀이 지켜지지 않아 불이익을 당합니다.” “이등병들 대상으로 일주일가량 연대캠프에서 생활할 당시 부조리에 대해 마음의 편지를 썼습니다. 이후 배신자 소리를 들었고 왕따를 당했습니다.”



지휘계통을 따르지 않은 신고를 이유로 징계?
이번에는 지휘계통에 따른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오히려 피해자가 징계를 받은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김 일병은 ‘차량 정비 시 스패너 인치를 모른다’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선임병들로부터 구타 및 가혹행위를 당했습니다. 가혹행위의 정도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참다못한 김 일병은 공중전화로 부모님에게 피해 사실을 알린 뒤 당직 부사관에게 보고합니다. 다음 날 주임원사와 행정보급관은 각각 지휘통제실 및 행정반으로 김 일병을 불러 사실을 확인합니다. 당시 현장에는 당직 병사와 행정병 등이 있었습니다.

김 일병이 신고한 사실을 알게 된 선임병은 “그런 식으로 군 생활해서 잘되나 보자”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신고 이후에도 선임병의 가혹행위는 계속되었습니다. 김 일병은 다시 부모님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 그러자 부모님은 이번에는 훈련 중이던 대대장에게 전화하여 강하게 항의합니다. 부모님의 항의를 받은 대대장은 “부대에 복귀하여 잘 처리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라”고 답변합니다.

그러나 대대장은 엉뚱하게 “개인 고민사항 보고체계가 잘못되었으니 진술서를 받아 김 일병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라”는 지시를 합니다. 이에 따라 가해 선임병은 폭행·가혹행위로 휴가제한 5일의 처분을 받고, 피해자인 김 일병은 허위보고로 근신 5일에 완전군장 도보라는 얼차려 처분을 받았습니다.

김 일병으로서는 황당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도대체 무엇이 허위보고일까요? 바로 김 일병이 피해 사실을 일일결산 시 분대장에게 보고하는 지휘체계를 통하지 않고 당직 부사관에게 보고했다는 점입니다. 여러분들은 이러한 징계처분이 이해가 되나요. 이런 상황에서 누가 병영부조리에 대해 신고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일단 해당 부대에서 김 일병의 신고를 조사할 때부터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신고자의 비밀보장입니다. 4명의 당직병이 근무하는 지휘통제실, 행정병이 근무하는 행정반에서 선임병의 가혹행위를 신고하는 후임병은 앞으로 부대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요? 또한 과연 김 일병이 허위보고를 하였다고 할 수 있을까요. 병장인 분대장에 의해 행해지는 공식행사인 일일결산 시간에 선임의 비행 사실을 보고한다는 것이 도대체 가능하기나 할까요. 그렇다면 분대장이 가해자인 경우는 또 어떻게 신고를 해야 할까요. 게다가 해당 사건에서 분대장은 훈련으로 부재중이었고 김 일병은 할 수 없이 당직 부사관에게 보고를 한 것입니다.

이 사례에서 국가인권위원회는 피해자를 징계처분한 것은 군 지휘관에게 인정되는 재량권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판단하였고, 재발 방지 차원에서 관련자들로 하여금 징계권 행사를 신중히 하도록 경고할 것을 권고하였습니다.



진정은 인권개선의 초석이며 권리이자 의무
대부분의 병사들은 구타·가혹행위를 신고해도 형식적으로 접수되어 개선되지 않는 문제를 지적합니다. 또한 부적절한 처리 관행으로 군부대 조치를 신뢰하지 않습니다. 당사자가 아닌 제3자 신고일 경우 본인에게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더 불리할 수 있고, 신고자에 대한 비밀이 지켜지지 않아 부대원들에게 왕따를 당하거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가득합니다.

최근 군은 내부적으로 부대원 면담, 마음의 편지 등 소원수리 제도, 국방헬프콜 등 각종 신고 제도를 운용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군인복무기본법’은 군인의 신고의무까지 부과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은 권리이자 의무입니다.

하지만 막상 장병들은 신고로 인한 불이익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러한 제도를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훈련소 입소 시부터 모든 병사에게 국가인권위원회 등 외부기관을 통한 권리 구제 방법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합니다. 군도 이러한 필요성을 인식하여 육군훈련소에서 발간하는 ‘신병교육 가이드북’에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권은 합법적으로 보장되는 권리임을 명시할 예정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진정 방법 역시 제한이 없으며, 전화, 이메일, 우편, 방문 등이 모두 가능합니다. 나의 적극적인 진정이 군 장병의 인권을 개선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상담전화 1331)

이 지 훈 육군소령·군법무관 (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조사과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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