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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 개혁 원했던 케네디, 국방장관에 맥나마라 임명

기사입력 2018. 12. 03   15:13 최종수정 2018. 12. 03   15:44

<11> 우리는 ‘맥나마라’의 개혁을 잘못 알고 있다 상 : 베트남전 실패는 정말 그의 책임일까?

케네디, 포드 경영 혁신한 맥나마라 국방장관 임명…국방개혁 임무 맡겨
당시 가능성 높았던 미·소 핵전쟁 대비 2년 간 다양한 데이터 수집·실험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의 맥나마라(오른쪽)와 케네디 대통령.  필자 제공

1961년 1월, 로버트 맥나마라(Robert McNamara)가 국방장관이 됐다. 대통령 존 F. 케네디(John F. Kennedy)는 그를 국방개혁의 적임자로 봤다. 맥나마라는 천재였다. 23살에 하버드에서 M.B.A를 받고 세계적 회계법인 ‘프라이스 워커하우스(Price Waterhouse)’에서 일했다. 24살에는 하버드비즈니스스쿨에서 제일 많은 돈을 받는 가장 젊은 교수가 됐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1943년 미 전쟁부 통계국(Office of Statistical Control)에 보직됐다. 그는 미 군수조달 절차와 공군(당시 육군항공) 전력 운용에 수학, 통계, 분석,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전쟁이 끝났을 때 헨리 포드(Henry Ford II)는 통계국에 있던 민간 출신 학자들을 모두 고용했다. ‘쌩쌩이들(Whiz Kids)’이라 불린 이들은 포드 경영에 계량화, 통계 기법, 체계 분석을 도입해 혁신에 어느 정도 성공했다. 눈에 띄는 업적은 방만한 조직과 낭비되는 예산을 일소한 것이다.

케네디 대통령이 맥나마라를 고용한 이유는 포드가 그를 고용한 이유와 같았다. 방만한 군대 조직, 국방예산 낭비를 일소하라는 뜻이었다. 맥나마라는 함께 일했던 쌩쌩이들과 랜드연구소의 경제학 전문가를 국방부로 데리고 왔다.

이들은 두 가지 가정을 하고 있었다. 첫째는 전쟁의 불확실성과 복잡성을 자신들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맥나마라팀은 국방정책·군사전략을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그 성안 과정에 ‘몬테카를로 방법(핵실험에 쓰임)’이나 ‘마코프 체인 시뮬레이션(날씨 예보에 쓰임)’과 같은 컴퓨터 기반 도구·절차를 도입했다. “주먹구구식 군의 선택을 합리적으로 만들고 환경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주도권을 강화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둘째는 모든 군사 문제를 경제의 이론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맥나마라팀은 경제학에서 스핀-오프된 체계 분석(System Analysis), 총평가(Net Assessment) 등의 방법으로 군대의 모든 요소를 계량화할 수 있다고 믿었다. 맥나마라는 포드에서 그랬던 것처럼, 국방부에서 말단 부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제대의 편제·무기·장비에 대한 세부 정보를 요구했다. 이 정보를 통해 어떤 무기와 장비가 필요한지 최적의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제부터가 흥미로운 부분이다. 우리나라 거의 모든 책, 간행물, 인터넷 콘텐츠는 ‘맥나마라의 경제학에 경도된 문제해결 방식, 맥나마라팀의 과학과 계량화에 대한 신화가 미 국방부를 망쳤다’고 받아 적고 있다. ‘베트남전 참전 결정과 확전의 책임이 맥나마라에게 있으며, 맥나마라팀이 주입한 계량적 접근법 때문에 미군의 전쟁수행능력은 망가졌다’고 되뇌고 있다.

과연 그랬을까? 정말 맥나마라 때문에 미 국방부가 망가지고, 미국이 하지 않았을 전쟁을 했을까? 진짜로 맥나마라팀의 프로그램 때문에 미군이 엉터리로 전투를 했을까?

이런 것을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순수하거나 어리석은 사람이다. 실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몰라도 상식으로 알 수 있는 일 아닌가? 어떻게 한 국가의 참전이 어느 한 사람 때문에 좌지우지 되겠는가? 그것도 미국에서. 어찌 한 나라 군대의 작전과 전술이 경제학을 공부한 팀에 의해 싹 바뀌겠는가? 그것도 미군에서 말이다.

맥나마라와 그의 팀은 강력한 소명의식을 갖고 복무했다. 당시 가장 가능성 높은 전쟁은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이었다. 그리고 미군은 전혀 그런 전쟁을 치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국방부에 들어온 맥나마라팀은 경악했다. 공업시대의 낡은 사고 틀, 감정에 근거한 대적관, 경험과 계급에 대한 무비판적 복종, 직관에 근거한 비합리적 결정으로 장군들이 핵 단추를 누르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맥나마라팀이 국방부 군인, 군무원들과 격렬하게 싸우고 기존의 프로그램을 갈아엎은 배경이 이와 같다.

맥나마라팀은 약 2년 간 방대한 데이터를 모으고 다양한 실험을 했다. 아무도 경험해본 적 없는 핵 시대의 전쟁을 준비하는 기초작업이었다. 여기엔 군복무 30년도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도 별 소용이 없었다. 군인과 군무원이 배제된 것은 이 때문이었다. 대신 정치·경제·사회·문화 분과의 세계 수준 전문가가 들어와서 해법을 제시했다. 오늘날 전 세계 국방 담당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하는 ‘국방기획관리제도(PPBS)’, ‘비용-효과 분석(Cost-Effectiveness Analysis)’ 등 수많은 도구와 절차가 이때 탄생했다.

더 중요한 것은 여기부터다. 2년의 데이터 수집, 실험, 프로그램 개발 및 적용 과정을 거쳐 3년 차인 1963년부터 맥나마라팀은 환류 단계에 들어갔다. 자신들의 산물에 오류는 없는지, 기존 국방부의 아이디어나 절차에서 받아들일 장점은 없는지 살핀 것이다. (계속)

<남보람 박사 군사편찬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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