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화장품은 생필품 아닌 사치품
“손노동 없애고 현대화” 김정은 재촉
생산 품목 다양화·고급화에 힘 실려
최초의 생산시설 ‘신의주화장품공장’
최근 품질·용기 디자인 등 변화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에서 화장품 ‘은하수’ 제품들이 호평을 받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5월 2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신의주화장품공장 내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시·판매장. 연합뉴스
북한의 화장품 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에 눈뜬 중산층 이상 여성들의 수요가 늘고 있는 데다 북한 당국이 화장품 품질 향상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핵과 미사일 도발로 자초한 대북제재로 북한 경제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가 여전한 것과 대조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이설주가 여성 화장품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 생산 품목의 다양화와 고급화에 힘이 실리고, 노동당과 내각의 해당 부문과 생산라인에 비상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김정은, 화장품에 각별한 관심
김정은 위원장은 화장품 생산시설이나 판매 현장을 직접 방문해 품질을 점검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북한 관영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지난 6월 하순에도 대표적 화장품 생산설비가 있는 신의주 지역을 찾았다. 2002년 아버지이자 선대 수령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정한 경제특구인 신의주의 산업시설을 돌아보는 형식을 취했지만 김정은의 관심은 신의주화장품공장에 쏠려 있었다.
이곳은 김일성이 1949년 설립을 지시한 북한 최초의 화장품 생산시설이다. 북한 최대 규모의 화장품공장으로, ‘봄향기’라는 브랜드로 북한 여성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는 게 탈북 인사들의 전언이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신의주화장품공장 관계자들에게 “이미 거둔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계속 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생산 공정에서 손노동을 완전히 없애고 공업화하기 위한 현대화 사업을 진행하라”며 “평양 시내에 ‘봄향기’ 화장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상점을 건설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런 독려 분위기는 신의주 지역 다른 공장 방문 때와는 판이했다. 신의주방직공장을 현지지도한 김정은은 “공장이 과학기술에 의거해 생산을 정상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재와 자금·노력 타발(투정)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불만은 신의주화학섬유공장 현지지도 때 폭발했다. 김정은은 “현대화 공사를 진행한다는 이 공장에서는 보수도 하지 않은 마구간 같은 낡은 건물에 귀중한 설비들을 들여놓고 시험생산을 하자고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웃음을 보인 건 화장품 생산라인 방문 때가 유일했다.
김정은의 화장품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집권 초반부터 이어졌다. 북한 내 양대 생산시설인 신의주화장품공장과 평양화장품공장을 수시로 직접 방문한 건 물론이고 평양 시내 쇼핑몰의 화장품 판매 코너에도 들렀다. 집권 이듬해인 2013년에는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가 평양 해당화관 쇼핑몰을 둘러보는 장면이 북한 TV에 공개됐는데 한국 브랜드인 ‘라네즈’ 간판이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5년 2월 평양화장품공장을 찾은 김 위원장은 “외국산 마스카라는 물에 들어가도 유지되는데 우리 제품은 하품만 해도 너구리 눈이 된다”고 질타했다. 눈 화장 제품에 방수 효과가 부족해 눈가로 검게 번지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이처럼 김정은이 화장품 품질 등과 관련해 구체적인 개선방안 등을 언급할 수 있는 건 부인 이설주와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조언이 있기 때문이란 관측도 나온다. 낙후된 화장품 생산시설과 떨어지는 품질과 관련한 여성들의 불만을 있는 그대로 김정은에게 직언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란 얘기다.
해외시장도 염두에 두고 개발
김정은 위원장은 관심을 갖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외국의 유명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 품질의 화장품을 생산하라며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공개 연설 등을 통해 경공업 제품 질 향상과 함께 외국산을 선호하는 ‘수입병(病)’ 타파를 강조한 김정은이 화장품을 시범 분야로 삼은 분위기다. 김정은은 세계 정상급 화장품 브랜드인 랑콤과 샤넬·시세이도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해가면서 북한 화장품의 품질 향상을 강조하고 있다는 게 대북정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평양화장품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은하수 화장품 인기가 괜찮은데 여기에 만족 말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제품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도록 투쟁하라”고 강조했다.
이런 김정은의 재촉에 힘입은 듯 화장품 분야에서 품질 향상과 함께 용기 디자인과 포장 등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의주화장품공장은 ‘봄향기’ 상표를 내세워 스킨·로션은 물론 안티에이징 제품과 향수·립스틱 등으로 품목을 넓혀가고 있다. 과거 개성 고려인삼 한 뿌리를 스킨에 넣는 파격을 보였던 봄향기는 인삼 성분의 자외선차단 기능 제품과 미백·주름 개선을 내세운 분 크림을 최근 선보였다. 북·중 접경지역을 방문해 북한의 한류와 장마당 실태를 조사해온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북한이 ‘분 크림’이라 부르는 화장품은 우리 여성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BB크림’이었는데 포장에 영문 표기를 그대로 하고 있어 해외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회적 개방 풍조 확산에 영향
사실 북한 여성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오랜 기간 억눌려 왔다. ‘병영 국가’를 방불케 하는 긴장되고 폐쇄적인 체제 운용에 만성적인 경제난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북한 여성의 삶과 일정한 거리가 있었던 화장품은 김정은 체제 들어 변화를 보이고 있다. 북한 여성들의 패션·헤어스타일 유행을 만들어 내는 이설주·김여정의 등장과 신흥 부유층인 ‘돈주(錢主)’의 구매력, 사회적 개방 풍조 확산에 힘입은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 한국 화장품의 우수성을 뒷심으로 한 ‘K뷰티’까지 가세하면서 우리 관련 기업도 눈독을 들이는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북한판 한류가 평양의 중상류층 여성들을 중심으로 남한 화장품에 눈길을 가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 경제의 일반적 수준으로 보면 화장품은 생필품이 아닌 사치품에 가깝다. 평양 광복거리상업중심 쇼핑센터에선 스킨과 로션 등으로 구성된 ‘미래’ 브랜드 화장품 6종 세트가 북한 돈 36만5100원에 팔린다. 일반 근로자 월급(3000원 수준) 10년 치를 쓰지 않고 모두 모아야 하는 많은 금액이다. 달러당 8000원 안팎인 암달러 시세로 환산해도 45달러 수준이다. 달러를 손에 만질 수 있는 특별한 계층이 아니고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들어 대남 및 대외부문에서 유화공세를 취하면서 정상국가 지도자로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비핵화 합의에 나서고 내부 정책노선에서도 경제를 우선하는 변화를 꾀하고 있다. 주민들에게는 민생에 우선적 관심을 돌릴 것임을 공언하기도 했다. 진정한 민생 챙기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핵 폐기를 향한 구체적인 행동조치를 보여주는 게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유엔과 국제사회가 촘촘히 쳐놓은 대북제재의 그물망을 걷어내지 않고서는 모든 약속이 장밋빛 공약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북한 여성들의 욕망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은 그 누구에게도 없어 보인다.
북한 화장품은 생필품 아닌 사치품
“손노동 없애고 현대화” 김정은 재촉
생산 품목 다양화·고급화에 힘 실려
최초의 생산시설 ‘신의주화장품공장’
최근 품질·용기 디자인 등 변화
평양봄철국제상품전람회에서 화장품 ‘은하수’ 제품들이 호평을 받고 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5월 24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신의주화장품공장 내부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전시·판매장. 연합뉴스
북한의 화장품 시장이 꿈틀거리고 있다.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에 눈뜬 중산층 이상 여성들의 수요가 늘고 있는 데다 북한 당국이 화장품 품질 향상에 각별한 공을 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핵과 미사일 도발로 자초한 대북제재로 북한 경제 전반에 어두운 그림자가 여전한 것과 대조되는 분위기다. 무엇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부인 이설주가 여성 화장품 문제에 각별한 관심을 보이고 있어 생산 품목의 다양화와 고급화에 힘이 실리고, 노동당과 내각의 해당 부문과 생산라인에 비상이 걸렸다는 후문이다.
김정은, 화장품에 각별한 관심
김정은 위원장은 화장품 생산시설이나 판매 현장을 직접 방문해 품질을 점검하고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는 것으로 북한 관영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지난 6월 하순에도 대표적 화장품 생산설비가 있는 신의주 지역을 찾았다. 2002년 아버지이자 선대 수령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정한 경제특구인 신의주의 산업시설을 돌아보는 형식을 취했지만 김정은의 관심은 신의주화장품공장에 쏠려 있었다.
이곳은 김일성이 1949년 설립을 지시한 북한 최초의 화장품 생산시설이다. 북한 최대 규모의 화장품공장으로, ‘봄향기’라는 브랜드로 북한 여성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다는 게 탈북 인사들의 전언이다. 북한 매체들에 따르면 김정은은 신의주화장품공장 관계자들에게 “이미 거둔 성과에 만족하지 말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하여 계속 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생산 공정에서 손노동을 완전히 없애고 공업화하기 위한 현대화 사업을 진행하라”며 “평양 시내에 ‘봄향기’ 화장품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상점을 건설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런 독려 분위기는 신의주 지역 다른 공장 방문 때와는 판이했다. 신의주방직공장을 현지지도한 김정은은 “공장이 과학기술에 의거해 생산을 정상화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재와 자금·노력 타발(투정)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불만은 신의주화학섬유공장 현지지도 때 폭발했다. 김정은은 “현대화 공사를 진행한다는 이 공장에서는 보수도 하지 않은 마구간 같은 낡은 건물에 귀중한 설비들을 들여놓고 시험생산을 하자고 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정은 위원장이 웃음을 보인 건 화장품 생산라인 방문 때가 유일했다.
김정은의 화장품에 대한 각별한 관심은 집권 초반부터 이어졌다. 북한 내 양대 생산시설인 신의주화장품공장과 평양화장품공장을 수시로 직접 방문한 건 물론이고 평양 시내 쇼핑몰의 화장품 판매 코너에도 들렀다. 집권 이듬해인 2013년에는 김정은과 부인 이설주가 평양 해당화관 쇼핑몰을 둘러보는 장면이 북한 TV에 공개됐는데 한국 브랜드인 ‘라네즈’ 간판이 포착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5년 2월 평양화장품공장을 찾은 김 위원장은 “외국산 마스카라는 물에 들어가도 유지되는데 우리 제품은 하품만 해도 너구리 눈이 된다”고 질타했다. 눈 화장 제품에 방수 효과가 부족해 눈가로 검게 번지는 현상을 지적한 것이다. 이처럼 김정은이 화장품 품질 등과 관련해 구체적인 개선방안 등을 언급할 수 있는 건 부인 이설주와 여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의 조언이 있기 때문이란 관측도 나온다. 낙후된 화장품 생산시설과 떨어지는 품질과 관련한 여성들의 불만을 있는 그대로 김정은에게 직언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란 얘기다.
해외시장도 염두에 두고 개발
김정은 위원장은 관심을 갖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외국의 유명 브랜드에 뒤지지 않는 품질의 화장품을 생산하라며 채찍질을 가하고 있다. 공개 연설 등을 통해 경공업 제품 질 향상과 함께 외국산을 선호하는 ‘수입병(病)’ 타파를 강조한 김정은이 화장품을 시범 분야로 삼은 분위기다. 김정은은 세계 정상급 화장품 브랜드인 랑콤과 샤넬·시세이도 등을 구체적으로 거론해가면서 북한 화장품의 품질 향상을 강조하고 있다는 게 대북정보 관계자들의 귀띔이다. 평양화장품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는 “은하수 화장품 인기가 괜찮은데 여기에 만족 말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제품과 당당히 경쟁할 수 있도록 투쟁하라”고 강조했다.
이런 김정은의 재촉에 힘입은 듯 화장품 분야에서 품질 향상과 함께 용기 디자인과 포장 등에서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의주화장품공장은 ‘봄향기’ 상표를 내세워 스킨·로션은 물론 안티에이징 제품과 향수·립스틱 등으로 품목을 넓혀가고 있다. 과거 개성 고려인삼 한 뿌리를 스킨에 넣는 파격을 보였던 봄향기는 인삼 성분의 자외선차단 기능 제품과 미백·주름 개선을 내세운 분 크림을 최근 선보였다. 북·중 접경지역을 방문해 북한의 한류와 장마당 실태를 조사해온 강동완 동아대 교수는 “북한이 ‘분 크림’이라 부르는 화장품은 우리 여성들 사이에 인기를 끌고 있는 ‘BB크림’이었는데 포장에 영문 표기를 그대로 하고 있어 해외시장을 염두에 둔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사회적 개방 풍조 확산에 영향
사실 북한 여성의 아름다워지고 싶은 욕망은 오랜 기간 억눌려 왔다. ‘병영 국가’를 방불케 하는 긴장되고 폐쇄적인 체제 운용에 만성적인 경제난까지 겹쳤기 때문이다. 북한 여성의 삶과 일정한 거리가 있었던 화장품은 김정은 체제 들어 변화를 보이고 있다. 북한 여성들의 패션·헤어스타일 유행을 만들어 내는 이설주·김여정의 등장과 신흥 부유층인 ‘돈주(錢主)’의 구매력, 사회적 개방 풍조 확산에 힘입은 것이란 분석이다. 여기에 한국 화장품의 우수성을 뒷심으로 한 ‘K뷰티’까지 가세하면서 우리 관련 기업도 눈독을 들이는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북한판 한류가 평양의 중상류층 여성들을 중심으로 남한 화장품에 눈길을 가게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북한 경제의 일반적 수준으로 보면 화장품은 생필품이 아닌 사치품에 가깝다. 평양 광복거리상업중심 쇼핑센터에선 스킨과 로션 등으로 구성된 ‘미래’ 브랜드 화장품 6종 세트가 북한 돈 36만5100원에 팔린다. 일반 근로자 월급(3000원 수준) 10년 치를 쓰지 않고 모두 모아야 하는 많은 금액이다. 달러당 8000원 안팎인 암달러 시세로 환산해도 45달러 수준이다. 달러를 손에 만질 수 있는 특별한 계층이 아니고서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정은 위원장은 올해 들어 대남 및 대외부문에서 유화공세를 취하면서 정상국가 지도자로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비핵화 합의에 나서고 내부 정책노선에서도 경제를 우선하는 변화를 꾀하고 있다. 주민들에게는 민생에 우선적 관심을 돌릴 것임을 공언하기도 했다. 진정한 민생 챙기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북핵 폐기를 향한 구체적인 행동조치를 보여주는 게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핵과 미사일 도발에 대응해 유엔과 국제사회가 촘촘히 쳐놓은 대북제재의 그물망을 걷어내지 않고서는 모든 약속이 장밋빛 공약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아름다워지고 싶어 하는 북한 여성들의 욕망을 억누를 수 있는 힘은 그 누구에게도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