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정호영의 역사소설 광해와 이순신

광해, ‘生死’ 두 글자에 하염없이 통곡

정호영

입력 2018. 11. 27   14:57
업데이트 2018. 11. 27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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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생과 사의 뒤바뀜 (217회·끝)


송희립은 노량해전이 끝난 뒤 손문욱이 전공을 세운 인물로 부상해 본격적인 출세 가도를 달렸다고 증언했다. 그의 출세 가도에 대해 당시 많은 수군 장졸들은 분노했지만, 임금을 비롯해 이이첨 등이 그를 후원한 탓에 어쩔 수가 없었다고 회고했다.

“반역자!”

광해군은 이순신 죽음의 전모를 알자 탄식했다. 비로소 조선을 망친 반역의 무리가 누구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순신이 손문욱이라는 자의 말을 쉽게 믿는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광해군은 노량해전이 벌어지기 두 달 전 유성룡의 말에 따라 이순신에게 살아서 원균의 무리를 처단하라는 내용의 친서를 보냈다. 반역자를 처단한 뒤 조선을 바로 세우려는 결단이었다.

‘그런데 왜?’

광해군은 자신에게 물으며 송희립을 바라봤다. 무엇이 잘못됐는지 송희립은 알 것만 같았다. 송희립은 품속에서 빛이 바랜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돌아가신 장군의 유품 중에 전하의 친서가 있었습니다. 여기….”

‘生死’

광해군은 깜짝 놀랐다. 오래전 자신이 이순신에게 보낸 글이 틀림없었다. 살아서 반역자를 죽이라는 뜻이었다.

“장군께서는 손문욱과 만난 후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라를 살릴 수 있다면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고요. 그리고 돌아가신 뒤 유품인 이 글을 보고 조선과 모두를 살리기 위해 기꺼이 죽음의 길을 택하셨다고 생각했습니다.”

살아서 반역자를 죽이라는 ‘생사’의 뜻이 나라를 살리기 위해선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의미로 뒤바뀌어 있었다. 중간에서 누군가가 뜻을 왜곡해 전달한 것이었다. 그들이야말로 바로 죽어야 할 반역자였다.

“오, 이럴 수가! 장군. 아닙니다! 장군은 반드시 살아서 저 반역의 무리를 처단하셔야 했습니다.”

광해군은 솟구치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통곡했다.



1641년 7월 1일, 광해군은 유배지인 제주도의 허름한 토방에서 눈을 감았다. 광해군의 부음을 듣고 제주목사 이시방이 들어왔을 땐 계집종이 혼자 염을 마친 뒤였다.

광해군이 죽은 지 3년 후인 1644년, 명나라는 청에 의해 멸망했다. 이후 조선은 명나라에 하던 사대(事大)를 청나라에 더욱 극진하게 하며 쇠락의 나락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했다.



그동안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국방일보 기자로서 주어진 업무와 함께 매일 소설을 연재하다 보니 다소 소홀한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무사히 연재를 마쳐 기쁘게 생각합니다.

소설 ‘광해와 이순신’은 가까운 시일 내에 신문 지면에 미처 싣지 못했던 내용 등을 보강해 단행본으로 출간할 예정입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정호영 기자 < fighter7@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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