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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애 문화산책]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입력 2018. 11. 22   13:55
업데이트 2018. 11. 23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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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정 애 
숙명여대 총장
강 정 애 숙명여대 총장



내가 몸담고 있는 숙명여대 캠퍼스 옆에는 효창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오가는 길에 낙엽이 쌓인 공원을 걷다 보면 서울 도심 한복판에 이렇게 고즈넉한 공간이 있나 싶다.

겉으로 보이는 한가로움과 달리 효창공원은 대한민국의 다사다난한 역사가 담긴 중층적 공간이다. 원래 정조의 장남 문효세자의 묘가 있어 효창묘로 불렸다. 고종에 의해 원으로 승격하며 도성에서 가장 가까운 왕실 묘역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듯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일본군 주둔지와 위락시설로 전락하는 시련을 맞았다.

광복 후 효창공원 일대는 백범 김구 선생이 애국지사들의 묘를 옮겨오면서 독립운동의 성지로 거듭났다. 대표적 항일 독립운동가인 윤봉길·이봉창·백정기 의사와 대한민국 임정 요인 출신인 이동녕·조성환·차리석의 유해가 이곳에 안장됐다. 언젠가 돌아올 안중근 장군의 유해를 모실 수 있도록 가묘도 만들었다. 백범 선생 본인도 이곳에 영면했다. 그렇지만 1950~60년대 효창운동장 건립과 반공공원화 사업이 이어지며 애국선열의 넋을 기린 공간은 차츰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숙명여대가 효창공원 옆에 자리 잡은 건 우연이 아니다. 현재 학교 부지는 일제 말기에 영친왕이 숙명여전 설립을 위해 대가 없이 양여(讓與)한 땅이다. 민족 여성교육의 효시가 된 숙명은 일찍이 학생 항일운동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다. 1911년 일왕의 생일 축하를 거부하는 무언 항쟁을 했고, 1919년에는 전교생이 3·1운동에 뛰어들었다.

숙명여학교를 나온 독립운동가 박자혜 지사의 남편이기도 한 단재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말했다. 그 말처럼 우리 제자들에게 숙명과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리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 그래서 올해 숙명여대는 이와 관련해 두 가지 사업을 진행했다. 창학자인 순헌황귀비의 애국애족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추진한 순헌황귀비길 명예도로 명명이 첫째고, 또 하나가 바로 효창 독립로드 조성 사업이다.

독립로드는 학교와 백범 김구 기념관, 효창공원 내 삼의사 및 임정 요인 묘역 등을 거쳐 인근 이봉창 생가터까지 잇는 답사코스다. 이미 지난여름 두 차례 학생들과 지역주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독립로드 투어를 진행했다. 재학생들의 아이디어를 접수해 관련 홍보책자를 내고 앱도 개발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대한제국이 설립한 교육기관이 독립운동의 살아있는 현장을 보존하고 계승하는 일에 앞장선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욱 크다고 할 수 있겠다.

때마침 내년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다. 이를 기념해 국가보훈처에서 효창공원의 독립운동기념 공원화를 추진한다고 한다. 이는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계승한 정부의 공약사항이기도 하다. 서울 시내 변변한 독립기념관 하나 없는 상황에서 정부와 지자체의 이러한 움직임은 만시지탄이지만,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 대학의 독립로드 조성이 일종의 마중물 역할을 해 지지부진했던 효창동 일대의 독립운동 성지화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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