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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 최고 전문가 장군들이 야전교범 직접 작성

기사입력 2018. 11. 19   16:39 최종수정 2018. 11. 19   20:45

<9> 환영받지 못한 혁신가, 윌리엄 드푸이 장군 (중)-1976년판 미 육군 야전교범 100-5 [작전] 비하인드 스토리

드푸이 장군이 교범 초안 쓰고
운영분석 전문가 폴 고먼 장군과
기갑전 전문 스태리 장군 필자 참여
새 교범 개념·전술 놓고 치열한 설전


     


폴 고먼 장군. 운영분석과 체계분석을 군에 도입한 선구적 인물이다.


베트남전 당시 대령이었던 돈 스태리 장군.  
 필자 제공


1976년 7월 발간된 새 야전교범 100-5 [작전]의 차별적 특성은 ‘과학과 권위’에 있었다. 미 교육사령관 드푸이 장군이 추구한 것은 ‘과학적 분석을 기반으로 한 권위 있는 지시’로서의 교범이었다. 그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우리는 중위, 대위, 소령, 중령에게 가르친다.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가 무엇을 가르친다는 것은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만약 우리가 믿지 않는 것을 가르친다면 우리는 모두 사기꾼이다.” 드푸이는 신념을 갖고 만든 교범, 신뢰할 수 있는 교범을 원했던 것이다.

어떻게 해야 교범에 신념을 담을 수 있고, 장병이 교범을 신뢰할 수 있을까? 드푸이가 내린 답은 단순 명확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을 불문하고 각 분과별 전공서·교과서는 해당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쓴다. 군대의 최고 전문가는 누구인가? 바로 장군이다. 그래서 1976년판 [작전]을 비롯한 HTF(How To Fight) 교범을 장군들이 쓴 것이다.


드푸이·고먼·스태리, 수시 통화·편지 교환


[작전]의 첫 번째 필자는 드푸이 자신이었다. 처음부터 그렇게 하려 했던 것은 아니다. 원래 교범 작성은 제병협동센터(Combined Arms Center)의 과업이었다. 그들은 드푸이 부임 후, 관례대로 ‘이전 교범에 약간의 변화를 가미한 개정판’을 만들어 보고했다. 1974년 12월의 일이었다. 드푸이는 이를 반려하고, 1975년 봄부터 직접 야전교범 100-5의 초안을 쓰기 시작했다.

두 번째 필자는 교육사령부 부사령관 폴 고먼(Paul F. Gorman) 장군이었다. 그는 조직 운영의 관점에서 육군을 어떻게 훈련시키고 평가해야하는지 연구했다. 중간결과를 정리해 연구문(‘어떻게 우세한 적과 싸워 이길 것인가?’)을 발표했는데, 이는 나중에 ‘교육훈련평가모형(ARTEP)’으로 발전했다. 현재까지도 수많은 국가의 군대에서 사용하고 있는 바로 그 ARTEP이다.

세 번째 필자는 돈 스태리(Donn A. Starry) 장군이다. 스태리가 필진에 포함된 배경은 다음과 같다. 드푸이는 1973년 ‘중동전’의 전훈을 교범에 포함시키고자 별도의 분석팀을 소집했다. 1974년 5월, 드푸이는 자신이 작성한 작전 개념과 전술의 개략안을 검토하라고 팀에 지시했다. 개략안은 대략 “견고한 ‘방어 지탱점’을 만들고 대전차화기를 집중 배치해 적의 강력한 일격을 버틴 후 예비대를 운용, 적의 약점을 공격한다”는 것이었다. 팀은 시나리오가 ‘수동적이며 기동의 장점을 활용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장차전의 결정적 수단이 될 전차를 적극 활용하는 기동 중심 교리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중동 지역 전훈분석관 출신에다가 당대 기갑학교장인 스태리가 이 일에 안성맞춤이었다.

드푸이, 고먼, 스태리. 이 세 명의 장군은 수시로 통화하고 편지를 주고받았다. 드푸이는 무관 근무, 중앙정보국 파견 등을 통해 정보 종합, 체계 분석을 경험한 과학적 분석 기법의 전문가였다. 고먼은 무기지수, 전투력 비율 측정 방법을 연구개발한 운영분석 전문가였다. 스태리는 기갑전의 전문가였는데 전술뿐만 아니라 전차 설계, 분해조립까지 가능한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이들은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의 참전자였다.

이렇게 당대 최고의 전문가와 그들의 팀이 이론적 전문성, 실전 경험을 바탕으로 새 교범의 개념, 전술 하나하나를 놓고 치열한 설전을 벌였다. 나는 2013년 미 펜실베이니아 칼라일에 있는 미 육군 사료실에 파견연구원으로 있으면서 그들이 주고받은 편지, 회의록 등을 촬영하고 분석했다. 거기엔 1976년판 [작전]을 만든 사람들의 메모도 보존돼 있었다. 메모지나 유인물 공란에 손글씨로 ‘Active Defense(적극 방어 혹은 능동 방어)’ 혹은 ‘AirLand Battle(공지전투)’이라고 써있는 것을 볼 때마다 감동이 일었다. 사료실에는 드푸이와 스태리의 자료를 모아놓은 별도의 컬렉션이 있었는데 상당수가 임무형 지휘, 주도권, 결정적 기동, 기습, 속도 등에 관한 그들의 손글씨 노트, 보고서, 교범 초안 등이었다.


드푸이 분석팀은 제다이 기사단의 모델

언급했던 드푸이의 분석팀에 대해서도 잠시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그들은 레드팀(Red Team) 역할을 했다. ‘보트하우스 갱(Boathouse Gang. 그들의 사무실이 보트 창고 바로 위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불렀다)’이라고도 불렸는데, 후일 미 지휘참모대학 고급과정(CGSC SAMS) 수료자들로 구성한 ‘제다이 기사단(Jedi Knights)’의 모델이기도 하다.(1991년 ‘사막의 폭풍작전’ 기본계획을 이들이 작성했다.)

야전교범 100-5 [작전]의 작성자들은 이 교범을 통해 미군이 베트남전의 실패 경험, 중동전 목도의 충격으로부터 빨리 벗어날 수 있길 소망했다. 또한 미래 유럽 전장에서 승리할 수 있는 물리적·심리적 준비의 토대가 될 것이라 믿었다. 이런 소망과 믿음을 담아, [작전]은 야전 성경책을 모델 삼아 제책됐다. 표지에 군용 위장무늬를 넣고 항상 휴대할 수 있는 포켓 사이즈로 만들었다. (계속)   <남보람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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