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 적대 금지 조치로 일촉즉발 불확실성 체계적 관리
확실하게 군축 성공 위해선 국제사회 지원과 협력 필요
많은 대화와 타협 필수 가장 중요한 건 ‘약속 실천’
일시적 긴장완화 넘어 비핵화 촉진토록 해야 큰 효과
급해도 단계적 실천… 미국과 의견 조율·설득 중요해
한반도 안보 정세가 아슬아슬한 훈풍이다. ‘9·19 군사 분야 합의서’에 따라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가 이뤄졌고, 시범적 GP 철수가 진행 중이다. 지난 1일부터는 ‘남북 간 모든 상호 적대 행위 금지’가 발효되며 우발적 군사충돌 가능성이 원천 차단됐다. 하지만 이러한 순풍 속에서도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기싸움은 더욱 거세지며 평화를 향한 항해는 삐걱거리고 있다. 이에 국방일보는 창간 54주년을 맞아 숙명여대 홍규덕 교수와 중앙대 최영진 교수를 초청,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특별좌담은 지난 9일 국방일보에서 진행됐다.
-지난 1일부로 ‘9·19 군사 합의서’에 의한 상호 적대 행위 금지가 발효됐다. 이 조치가 갖는 의미가 있다면?
홍규덕 교수(이하 홍 교수)= “대통령께서 평양을 방문, 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간 군사합의서에 합의하고 비준함으로써 항구적인 평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번 합의 내용은 과거 1972년 7·4 공동선언 이후 양 당사자가 합의해온 내용 대부분을 반영했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 북측이 가질 수 있는 안전에 대한 우려 부분도 선제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 매우 담대한 결정이며, 군축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과감한 합의라고 판단된다.”
최영진 교수(이하 최 교수)= “군사적 측면에서 볼 때 사실상 종전선언에 가까운 정도의 광범위한 군사적 긴장 완화와 위기관리 시스템의 도입이라 할 수 있다. 남북한이 명시적으로 종전을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9·19 군사 합의와 이에 기반한 상호 적대 행위 금지 내용은 사실상 서로에 대한 군사적 적대 행위를 금지함으로써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남북한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특히 사회적으로 남북 간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남북의 군사적 대립의 상징적 공간이었던 DMZ에서 남북한 군인들이 비무장한 상태에서 평화롭게 근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심리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상호 적대 금지 조치가 향후 남북관계에 실질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해도 되는지?
최 교수= “정치적·경제적 의미도 적지 않다. 남북관계의 본질은 체제경쟁이지만, 적대의 형식은 군사적이었다. 6·25전쟁과 이후 남북 간 군사적 대치는 한반도 위기의 핵심이었다. 북핵 문제 역시 이러한 남북관계의 본질에서 비롯됐다. 남북군사합의와 상호 적대 행위 금지를 통해 남북 간의 일촉즉발의 불확실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군사합의가 성공적으로 실현된다면 정치적·경제적 차원의 남북대화 역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대화도 총부리를 겨눈 상태에서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이번 상호 적대 행위 금지를 통해 이제 비로소 총부리를 내려놓았다. 대화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마련한 셈이다.”
홍 교수= “일단 긴장 완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이라고 본다. 향후 이러한 신뢰 구축의 분위기가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 간의 뉴욕 회동이 시발점이 되겠지만 트럼프와 김정은 위원장 간에 2차 미·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큰 진전 없이 비핵화가 답보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면 잠재적 핵보유국 북한과 공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깊은 불신의 뿌리와 오해를 극복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 8일(현지시간)로 예정됐던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뉴욕회담은 연기됐다. 이에 대해 현지에선 북측의 요구로 연기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경제교류 우선 후 군사적 긴장 완화 순서에 비해 남북의 경우 군사긴장 완화가 경제교류에 비해 앞서고 있고 특히 북한 비핵화 속도보다 남북 군사긴장 완화 속도가 너무 앞서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홍 교수=“신뢰 구축과 운용 및 구조적 군비통제의 단계를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는 역사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이번 9·19 합의는 신뢰 구축을 위한 유해발굴과 지뢰제거 작업과 동시에 비행금지 구역(No Fly Zone)을 설정해 항공정찰금지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매우 과감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신뢰 구축을 충분히 한 다음 시도해도 늦지 않겠지만 아마 북측이 우려하는 아군 및 한미동맹 정찰자산들의 전개를 제한함으로써 북한을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본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 촉진을 위해 의도적으로 톱-다운 방식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한미연합훈련의 연기도 이러한 북한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기본적 조치라고 본다. 다만 이런 결심이 유효하려면 북한의 핵시설이나 생산한 핵물질과 관련한 신고 절차가 성실하게 이행돼야 한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 아래 북한은 미측에 상응하는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1991년 남북 비핵화 공동성명에서 이미 비핵화를 구체적으로 약속한 북한이 2017년까지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했고, 핵무기 개발의 고도화를 이룬 사실 자체만을 놓고 볼 때, 비핵화에 대한 의지 표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통된 입장이다. 대북경협의 속도가 비핵화의 속도를 절대 앞서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 교수=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통합은 사회경제적 차원의 가볍고 실질적인 교류를 통해 기반을 쌓은 다음, 군사적 조치와 같은 무겁고 어려운 의제로 넘어가는 것이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 군사적 긴장과 대치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적 불확실성을 평화적으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경제적 교류는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힘들게 쌓아 올린 개성공단이 천안함 폭침과 군사적 충돌로 하루아침에 내려앉은 것도 그런 까닭이라 생각한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적 관리가 실현된다면, 경제교류는 안정적으로 발전할 조건을 갖추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북핵협상과의 관계는 선후의 문제라기보다 상호작용의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느 하나가 잘 진행되면 다른 문제 역시 잘 풀릴 가능성이 높다.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가 실질적인 결과를 가져올 경우, 북·미 관계가 나아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따라서 북·미 간의 북핵협상도 더 잘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북핵협상과 남북한 긴장 완화를 상호작용의 틀에서 볼 경우, 이번 상호 적대 행위 금지는 궁극적으로 북·미 간의 북핵협상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미·북 간 기싸움이 치열하다. 남북 군사 긴장 완화 조치가 북·미 관계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없는지?
홍 교수= “남북 긴장 완화 노력은 별개로 추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미·북 관계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다. 미·북 관계가 악화되거나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게 된다면 결국 긴장 완화 노력도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미국이 핵을 갖는 북한을 용인하거나 현재와 유사한 상태로 비핵화에 근접하지 못한 채, 자국의 위협 제거에만 관심을 보인다면, 한국 내 안보 불안감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최 교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상호 적대 행위 금지 조치는 북·미 간의 북핵협상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긴장 완화 자체가 양측으로 하여금 신뢰와 양보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과 미국 간의 조율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급격한 군사적 조치에는 선뜻 납득하지 못할 수 있다. 9·19 군사합의 세부내용을 두고 미국 측에서 불만을 토로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한미 외무장관 회의에서 양국의 의견 조율을 위해 실무자 중심의 워킹그룹을 운영하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과의 충분한 의견 조율과 설득이 매우 중요한 일이며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남북군사합의서에선 북방한계선(NLL)의 구역 문제를 향후 구성될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 해결 과제로 남겼다.
최 교수= “남북 간에 가장 의견 차이가 심한 부분이 NNL 문제가 아닌가 한다. 그만큼 분쟁의 소지가 크다는 의미다. 이 문제는 단순히 군사적 효용성만 가지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설 때, 어느 한쪽의 전적인 양보보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소위 윈윈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남북 갈등보다 우리 내부 갈등이 더 심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는 의제에 대해서는 상호 간 양보가 불가피한데, 이러한 양보를 국민이 이해해 줄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홍 교수= “북한이 주장하는 경비계선과 우리 측의 NLL 사이에서 새로운 평화지대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북한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하지만 국제법적으로나 우리 헌법 66조 2항에 명시된 영토보존의 의무를 고려할 때, NLL은 우리의 영토선이며 반드시 이를 지켜나가야 한다. 다만 이번에 합의된 대로 적대 행위 중단 구역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모니터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문제가 전혀 없을 수 없겠지만 합의한 대로 이를 평화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와 위기관리 능력을 확보해야 하며, 동시에 군사적 대비태세를 철저히 유지해야 한다.”
-북한의 군사 분야 합의서 이행 여부, 운용적 군비통제는 검증이 어렵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홍 교수=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숫자만으로도 이러한 합의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현재 비핵화 과정만 봐도 미 핵전문가 지그프리드 해커의 보고서에 의하면, 총 66개 단계에서 고작 3개 정도를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검증은 확고한 정치적 의지를 필요로 하며, 검증 과정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세계 군축 역사상 지난 100년 간 성공한 사례가 3~4차례에 불과하며 그것도 매우 제한적인 분야에서만 성공을 거뒀을 뿐이다. 1987년 합의된 INF 협약이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파기된 것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차분히 시작을 하되, 장밋빛 기대만으로 조급하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군축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특히 북한과 같은 선군사상에 입각한 군 중심의 사회를 민수전환(conversion)하기 위해서는 사회체제의 내부 변혁과 함께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며,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력이 필요하다.”
최 교수= “완벽한 검증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재래식 전력에서는 우리가 앞서기 때문에 좀 자신감 있게 대처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우리 군이나 미군의 정찰자산을 감안할 때, 북한군의 움직임은 대부분 체크될 것이고, 설령 부분적인 누락이 있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그만큼 재래식 전력에 있어 질적으로 앞서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남북 간 군사 분야 합의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홍 교수= “마음이 급해도 단계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또 국제사회가 북한의 신의를 확인하게 해줘야 한다. 지뢰제거를 예로 들자면 1997년 국제사회는 오타와 프로세스(OTTAWA Process)을 통해 비인도적 무기인 대인지뢰를 금지하기 위한 ‘대인지뢰금지조약’에 합의한 바 있지만, 한반도의 특수사정을 감안해 우리나 미국은 협약에 참가하지 않았다. 북한이 이번 기회에 대인지뢰금지조약에 한국과 함께 합의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을 구체화하면 좋겠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되도록 신용을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차분하게 밟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국민의 공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평화수역 조성과 관련한 부분이나 GP 철수 문제, 비행금지구역 문제 등과 같은 민감한 현안에 대해 국내 안보전문가 및 군비통제 전문가들, 특히 군 지휘부와 충분히 교감하고 협조를 얻어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 교수=“크게 두 가지다. 흔히 말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군사합의 자체는 성공적으로 이뤄졌지만 막상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되, 북한이 약속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꼭 따져야 한다. 군사적 긴장 완화는 기본적으로 ‘신뢰 구축’ 과정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대화와 타협을 이뤄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얼마나 많은 양보를 받아냈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약속의 실천 여부다. 또 다른 하나는 협상단의 자율성을 가능한 한 많이 보장해줘야 한다는 부분이다. 분명 정치적으로 판단할 부분은 정치적 결정을 해 주어야 하지만, 군사적 문제에 대해서는 협상단에 결정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수많은 약속과 실천 과정에서 우리 협상단이 얼마나 많은 자율성을 갖고 대화에 임하느냐에 따라 성과도 달라질 수 있다. 정치권이나 군 지휘부, 예비역 장성 등이 자신들의 생각만 옳다고 강요하면 협상단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실무진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협상단을 믿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영선 기자
< lgiant61@dema.mil.kr >
전혜린 기자
< lin597998@dema.mil.kr >
상호 적대 금지 조치로 일촉즉발 불확실성 체계적 관리
확실하게 군축 성공 위해선 국제사회 지원과 협력 필요
많은 대화와 타협 필수 가장 중요한 건 ‘약속 실천’
일시적 긴장완화 넘어 비핵화 촉진토록 해야 큰 효과
급해도 단계적 실천… 미국과 의견 조율·설득 중요해
한반도 안보 정세가 아슬아슬한 훈풍이다. ‘9·19 군사 분야 합의서’에 따라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가 이뤄졌고, 시범적 GP 철수가 진행 중이다. 지난 1일부터는 ‘남북 간 모든 상호 적대 행위 금지’가 발효되며 우발적 군사충돌 가능성이 원천 차단됐다. 하지만 이러한 순풍 속에서도 북한 비핵화를 둘러싼 미국과 북한의 기싸움은 더욱 거세지며 평화를 향한 항해는 삐걱거리고 있다. 이에 국방일보는 창간 54주년을 맞아 숙명여대 홍규덕 교수와 중앙대 최영진 교수를 초청,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가 한반도에 미칠 영향에 대해 의견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특별좌담은 지난 9일 국방일보에서 진행됐다.
-지난 1일부로 ‘9·19 군사 합의서’에 의한 상호 적대 행위 금지가 발효됐다. 이 조치가 갖는 의미가 있다면?
홍규덕 교수(이하 홍 교수)= “대통령께서 평양을 방문, 3차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 간 군사합의서에 합의하고 비준함으로써 항구적인 평화를 만들어 가기 위한 실천적 조치들을 취해 나갈 것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이번 합의 내용은 과거 1972년 7·4 공동선언 이후 양 당사자가 합의해온 내용 대부분을 반영했다. 특히 북한의 비핵화를 촉진하기 위해 북측이 가질 수 있는 안전에 대한 우려 부분도 선제적으로 고려했다는 점에서 매우 담대한 결정이며, 군축 역사상 전례를 찾기 힘든 과감한 합의라고 판단된다.”
최영진 교수(이하 최 교수)= “군사적 측면에서 볼 때 사실상 종전선언에 가까운 정도의 광범위한 군사적 긴장 완화와 위기관리 시스템의 도입이라 할 수 있다. 남북한이 명시적으로 종전을 선언한 것은 아니지만, 9·19 군사 합의와 이에 기반한 상호 적대 행위 금지 내용은 사실상 서로에 대한 군사적 적대 행위를 금지함으로써 전쟁 발발의 가능성을 남북한이 통제할 수 있는 상황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데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보인다. 특히 사회적으로 남북 간의 관계를 새롭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남북의 군사적 대립의 상징적 공간이었던 DMZ에서 남북한 군인들이 비무장한 상태에서 평화롭게 근무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심리적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인다.”
-상호 적대 금지 조치가 향후 남북관계에 실질적으로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해도 되는지?
최 교수= “정치적·경제적 의미도 적지 않다. 남북관계의 본질은 체제경쟁이지만, 적대의 형식은 군사적이었다. 6·25전쟁과 이후 남북 간 군사적 대치는 한반도 위기의 핵심이었다. 북핵 문제 역시 이러한 남북관계의 본질에서 비롯됐다. 남북군사합의와 상호 적대 행위 금지를 통해 남북 간의 일촉즉발의 불확실성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은 남북관계의 개선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실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번 군사합의가 성공적으로 실현된다면 정치적·경제적 차원의 남북대화 역시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 어떤 대화도 총부리를 겨눈 상태에서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이번 상호 적대 행위 금지를 통해 이제 비로소 총부리를 내려놓았다. 대화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을 마련한 셈이다.”
홍 교수= “일단 긴장 완화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이는 일시적이라고 본다. 향후 이러한 신뢰 구축의 분위기가 비핵화를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김정은 위원장의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 간의 뉴욕 회동이 시발점이 되겠지만 트럼프와 김정은 위원장 간에 2차 미·북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큰 진전 없이 비핵화가 답보 상태를 유지하게 된다면 잠재적 핵보유국 북한과 공존해야 한다는 점에서 깊은 불신의 뿌리와 오해를 극복하기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
※ 8일(현지시간)로 예정됐던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부위원장의 뉴욕회담은 연기됐다. 이에 대해 현지에선 북측의 요구로 연기됐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경제교류 우선 후 군사적 긴장 완화 순서에 비해 남북의 경우 군사긴장 완화가 경제교류에 비해 앞서고 있고 특히 북한 비핵화 속도보다 남북 군사긴장 완화 속도가 너무 앞서고 있다는 의견이 있다.
홍 교수=“신뢰 구축과 운용 및 구조적 군비통제의 단계를 동시에 진행하는 경우는 역사적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이번 9·19 합의는 신뢰 구축을 위한 유해발굴과 지뢰제거 작업과 동시에 비행금지 구역(No Fly Zone)을 설정해 항공정찰금지에 합의했다는 점에서 매우 과감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신뢰 구축을 충분히 한 다음 시도해도 늦지 않겠지만 아마 북측이 우려하는 아군 및 한미동맹 정찰자산들의 전개를 제한함으로써 북한을 안심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본다. 결국 북한의 비핵화 촉진을 위해 의도적으로 톱-다운 방식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한미연합훈련의 연기도 이러한 북한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기본적 조치라고 본다. 다만 이런 결심이 유효하려면 북한의 핵시설이나 생산한 핵물질과 관련한 신고 절차가 성실하게 이행돼야 한다. ‘행동 대 행동’의 원칙 아래 북한은 미측에 상응하는 경제제재 해제를 요구하고 있지만 1991년 남북 비핵화 공동성명에서 이미 비핵화를 구체적으로 약속한 북한이 2017년까지 여섯 차례의 핵실험을 했고, 핵무기 개발의 고도화를 이룬 사실 자체만을 놓고 볼 때, 비핵화에 대한 의지 표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공통된 입장이다. 대북경협의 속도가 비핵화의 속도를 절대 앞서갈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최 교수= “기능주의적 관점에서 통합은 사회경제적 차원의 가볍고 실질적인 교류를 통해 기반을 쌓은 다음, 군사적 조치와 같은 무겁고 어려운 의제로 넘어가는 것이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반도의 경우, 군사적 긴장과 대치가 워낙 심각하기 때문에 언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군사적 불확실성을 평화적으로 관리하지 않을 경우, 경제적 교류는 사상누각이 될 가능성이 높다. 힘들게 쌓아 올린 개성공단이 천안함 폭침과 군사적 충돌로 하루아침에 내려앉은 것도 그런 까닭이라 생각한다. 군사적 긴장 완화와 평화적 관리가 실현된다면, 경제교류는 안정적으로 발전할 조건을 갖추게 될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북핵협상과의 관계는 선후의 문제라기보다 상호작용의 차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어느 하나가 잘 진행되면 다른 문제 역시 잘 풀릴 가능성이 높다. 남북한의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가 실질적인 결과를 가져올 경우, 북·미 관계가 나아질 것이라는 것은 분명한 일이다. 따라서 북·미 간의 북핵협상도 더 잘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북핵협상과 남북한 긴장 완화를 상호작용의 틀에서 볼 경우, 이번 상호 적대 행위 금지는 궁극적으로 북·미 간의 북핵협상에도 좋은 영향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한 미·북 간 기싸움이 치열하다. 남북 군사 긴장 완화 조치가 북·미 관계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은 없는지?
홍 교수= “남북 긴장 완화 노력은 별개로 추진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미·북 관계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다. 미·북 관계가 악화되거나 답보 상태를 면치 못하게 된다면 결국 긴장 완화 노력도 한계에 봉착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미국이 핵을 갖는 북한을 용인하거나 현재와 유사한 상태로 비핵화에 근접하지 못한 채, 자국의 위협 제거에만 관심을 보인다면, 한국 내 안보 불안감이 다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최 교수=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번 상호 적대 행위 금지 조치는 북·미 간의 북핵협상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긴장 완화 자체가 양측으로 하여금 신뢰와 양보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과 미국 간의 조율에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여전히 북한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급격한 군사적 조치에는 선뜻 납득하지 못할 수 있다. 9·19 군사합의 세부내용을 두고 미국 측에서 불만을 토로했다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한미 외무장관 회의에서 양국의 의견 조율을 위해 실무자 중심의 워킹그룹을 운영하기로 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과의 충분한 의견 조율과 설득이 매우 중요한 일이며 이 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남북군사합의서에선 북방한계선(NLL)의 구역 문제를 향후 구성될 남북군사공동위원회의 해결 과제로 남겼다.
최 교수= “남북 간에 가장 의견 차이가 심한 부분이 NNL 문제가 아닌가 한다. 그만큼 분쟁의 소지가 크다는 의미다. 이 문제는 단순히 군사적 효용성만 가지고 판단하기도 어렵다. 양측의 입장이 팽팽히 맞설 때, 어느 한쪽의 전적인 양보보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소위 윈윈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남북 갈등보다 우리 내부 갈등이 더 심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쨌든 의견이 첨예하게 맞서는 의제에 대해서는 상호 간 양보가 불가피한데, 이러한 양보를 국민이 이해해 줄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하고 납득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판단된다.”
홍 교수= “북한이 주장하는 경비계선과 우리 측의 NLL 사이에서 새로운 평화지대를 만들어 보자는 것이 북한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하지만 국제법적으로나 우리 헌법 66조 2항에 명시된 영토보존의 의무를 고려할 때, NLL은 우리의 영토선이며 반드시 이를 지켜나가야 한다. 다만 이번에 합의된 대로 적대 행위 중단 구역을 관리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모니터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문제가 전혀 없을 수 없겠지만 합의한 대로 이를 평화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만반의 준비와 위기관리 능력을 확보해야 하며, 동시에 군사적 대비태세를 철저히 유지해야 한다.”
-북한의 군사 분야 합의서 이행 여부, 운용적 군비통제는 검증이 어렵다는 우려를 제기하는 사람도 많다.
홍 교수=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숫자만으로도 이러한 합의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 수 있다. 현재 비핵화 과정만 봐도 미 핵전문가 지그프리드 해커의 보고서에 의하면, 총 66개 단계에서 고작 3개 정도를 얘기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검증은 확고한 정치적 의지를 필요로 하며, 검증 과정은 막대한 비용과 시간이 필요하다. 세계 군축 역사상 지난 100년 간 성공한 사례가 3~4차례에 불과하며 그것도 매우 제한적인 분야에서만 성공을 거뒀을 뿐이다. 1987년 합의된 INF 협약이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 의해 파기된 것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차분히 시작을 하되, 장밋빛 기대만으로 조급하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군축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북한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특히 북한과 같은 선군사상에 입각한 군 중심의 사회를 민수전환(conversion)하기 위해서는 사회체제의 내부 변혁과 함께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하며, 국제사회의 지원과 협력이 필요하다.”
최 교수= “완벽한 검증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재래식 전력에서는 우리가 앞서기 때문에 좀 자신감 있게 대처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현재 우리 군이나 미군의 정찰자산을 감안할 때, 북한군의 움직임은 대부분 체크될 것이고, 설령 부분적인 누락이 있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는 판단이다. 그만큼 재래식 전력에 있어 질적으로 앞서 있기 때문에 자신감을 갖고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남북 간 군사 분야 합의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 조언을 한다면?
홍 교수= “마음이 급해도 단계적으로 실천해야 한다. 또 국제사회가 북한의 신의를 확인하게 해줘야 한다. 지뢰제거를 예로 들자면 1997년 국제사회는 오타와 프로세스(OTTAWA Process)을 통해 비인도적 무기인 대인지뢰를 금지하기 위한 ‘대인지뢰금지조약’에 합의한 바 있지만, 한반도의 특수사정을 감안해 우리나 미국은 협약에 참가하지 않았다. 북한이 이번 기회에 대인지뢰금지조약에 한국과 함께 합의해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을 구체화하면 좋겠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건전한 일원이 되도록 신용을 회복시키기 위한 조치들을 차분하게 밟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국민의 공감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평화수역 조성과 관련한 부분이나 GP 철수 문제, 비행금지구역 문제 등과 같은 민감한 현안에 대해 국내 안보전문가 및 군비통제 전문가들, 특히 군 지휘부와 충분히 교감하고 협조를 얻어 진행하는 것이 필요하다.”
최 교수=“크게 두 가지다. 흔히 말하지만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다. 군사합의 자체는 성공적으로 이뤄졌지만 막상 현실적으로 구현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자신감을 갖고 양보할 것은 양보하되, 북한이 약속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꼭 따져야 한다. 군사적 긴장 완화는 기본적으로 ‘신뢰 구축’ 과정이고 이를 통해 더 많은 대화와 타협을 이뤄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얼마나 많은 양보를 받아냈느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약속의 실천 여부다. 또 다른 하나는 협상단의 자율성을 가능한 한 많이 보장해줘야 한다는 부분이다. 분명 정치적으로 판단할 부분은 정치적 결정을 해 주어야 하지만, 군사적 문제에 대해서는 협상단에 결정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수많은 약속과 실천 과정에서 우리 협상단이 얼마나 많은 자율성을 갖고 대화에 임하느냐에 따라 성과도 달라질 수 있다. 정치권이나 군 지휘부, 예비역 장성 등이 자신들의 생각만 옳다고 강요하면 협상단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실무진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협상단을 믿어주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이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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