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김정학 기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

입력 2018. 11. 14   14:35
업데이트 2018. 11. 23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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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정 학 
해병대 교육훈련단장·준장
김 정 학 해병대 교육훈련단장·준장


사막이나 정글을 혼자 헤쳐나가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외로움과 두려움, 맹수의 습격 등을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리카 속담 중에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라는 속담이 있다.

우리 군에서도 개인 한 사람만의 능력을 요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건제에 의한 그 조직의 능력 발휘를 요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즉, 조직 전체가 똘똘 뭉쳐 힘을 합치고 전진해야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래서 해병대 교육훈련단은 양성교육에서 특별히 전우애와 단결력을 강조한다. 강한 해병대 양성교육의 목표는 전우애와 단결력을 바탕으로 해병대 정신이 신념화되고, 강한 전투체력과 인내력을 갖춘 정예해병을 육성하는 것이다.

정신력·체력·인내력 모두 혼자보다는 동료 전우와 같이할 때 더 많이 생기고 함양된다. 그래서 해병대 교육훈련단에 입영한 신병들이 맨 처음 받게 되는 교육은 입영행사장에서 부모님의 환송을 받으며 교육대로 출발하는 과정에서 동기생들과 손에 손을 잡고 ‘오와 열’을 외치면서 이동하는 것이다. 이는 전우애를 함양하기 위한 첫걸음이다. 손을 잡으면서 친밀감을 향상하고, ‘오와 열’을 외치면서 내 앞과 뒤, 옆에 있는 동기의 존재를 확인하고, 같이해야 함을 느낀다. ‘오와 열’의 대상은 ‘내’가 아니다. 나와 같이 가는 ‘우리’다.

7주간의 신병훈련은 군인이 되기 위한 혹독한 훈련의 연속이며, 매 순간이 힘들고 고된 시간이다. 그러나 힘들고, 두렵고, 주저앉고 싶지만, 앞에서 끌어주는 교관과 옆에 동기가 있어서 힘을 내고, 용기를 낼 수 있다. 신병훈련의 정점은 수면과 식사량을 최소화해 극한의 상황에서 진행되는 극기주 훈련인데, 그중에서도 해병대 양성교육의 전통이자 상징인 천자봉 행군이 가장 힘들다. 천자봉을 다녀와야 비로소 빨간명찰을 받고, 해병이 될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천자봉 행군은 극기주 훈련으로 이미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밤 11시 숙영지를 출발해 몇 개의 능선을 오르고 또 올라 마침내 천자봉을 등정한 후 다음 날 낮 11시쯤 부대에 복귀하는, 약 12시간의 철야 강행군이다. 무겁고 졸린 육신은 내 의지대로 통제되지 않고, 온몸은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다. ‘내가 왜 해병대에 지원했던가’ 후회도 해본다. 하지만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 나를 끌고 밀어주는 교관이 있고, 옆에서 “동기야, 힘내자”라고 외치는 동기생이 있다. 자신이 마실 물도 모자랄 텐데 힘들어하는 동료에게 물 한 모금을 양보하는 동기도 있다.

전장에서 결코 전우를 혼자 남겨두고 오지 않는 선배 해병들의 정신이 여기서부터 시작됐구나 싶다. 그래서 전역 후에도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고 예비역들이 외치는구나를 느낀다. 어젯밤에 신병들과 함께 천자봉 행군에 동참했다. 멀리 가기 위해서 “동기야, 같이 가자!”라고 외치는 그들을 보면서 내 가슴도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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