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로 알아보는 장병 인권 이야기

군인은 아프면 꾀병? 참지 말고 치료받아야

입력 2018. 10. 03   11:22
업데이트 2019. 01. 14   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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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 결정례로 알아보는 장병 인권이야기 ② 의료접근권


 

모든 사회 현상에는 트렌드(유행·경향)가 있습니다. 진정사건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렇다면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에 접수되는 군 사건의 트렌드는 무엇일까요? 영원히 근절되지 않을 것 같은 구타·가혹행위일까요. 아니면 언어폭력일까요? 조사관으로서 느끼는 최근 진정사건의 주된 경향은 의료접근권입니다. 모든 사람은 건강권, 즉 질병발생 시 의료와 간호를 제공받을 권리가 있고 국가는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있습니다.

 

 

 

 

 

삽화=김신철 작가
삽화=김신철 작가

삽화=김신철 작가
삽화=김신철 작가


군인들 진료 청구하는 것 자체 부담

꾀병이라 생각할까 참은 경우 많아

민간병원 자유롭게 이용 못해 문제

의료접근법 제한 생명 앗다갈 수도

적절한 의료접근권은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받기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하물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고 있는 군인이야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동안 오히려 의료접근권을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왜 군에서는 의료접근권이 침해되기 더 쉬울까요? 단체생활을 하는 군인들은 부대 구성원들의 눈치, 치료받는 동안 동료에게 주는 업무부담 때문에 자유롭게 진료 청구를 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병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치료받으러 군 병원에 가면 꾀병으로 단정한다’는 불만이 컸습니다.

‘군 의료관리체계에 대한 인권상황 실태조사’에서도 ‘진료 필요에 대한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하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와 같이 치료요청이 쉽지 않은 병영 분위기는 결과적으로 제때 치료받지 못하는 요인이 됩니다. 병사들은 꾀병이라고 생각할까봐 아픔을 참는 경우가 많습니다.

군의관을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 때로는 부대 지휘관이 병을 진단하는 경우까지 있습니다. 임상경험이 부족한 단기 군의관 위주의 군 진료인력, 비전문 의무병의 진료보조 수행, 민간병원의 자유로운 이용 제한 등도 군인들의 의료접근권을 침해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사례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①무릎수술 후 혹한기 훈련에서 무리하게 행군을 하면서 병이 악화됐습니다. ②행군 중 발생한 발목 통증으로 간단한 진통제 처방을 받은 뒤 간부가 부대차량이 없다는 이유로 진료를 못 받고 있습니다. ③허리 디스크가 발병했는데 지휘관이 아무런 조치를 해주지 않고 있습니다. ④부대 공사감독을 하던 중 포클레인을 피하려다 넘어져 손이 다쳤는데 간부가 “너는 뭐 살짝 다친 것 같고 사회에서도 병원 다녔냐? 니가 어린애야? 여긴 군대야 너도 성인이고, 네가 알아서 해”라고 말해 외진을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⑤민간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도록 병가나 휴가를 줄 것을 요청하자 중대장이 “전화로 군의관에게 알아보니 큰 병도 아니고 군에서 다 고쳐주니 걱정하지 말라”며 거절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너무 사소한 것처럼 들리나요?

그렇다면 이런 경우는 어떨까요? ⑥신체검사 1급을 받고 건강한 몸으로 입대해 신병교육 중 뇌수막염에 걸렸는데, 훈련소에서 어렵게 받은 세 차례 진료에서는 모두 감기 처방만 받았습니다. 자대 배치 후에도 열이 지속돼 사단 의무대에 갔지만 뇌수막염은 발견하지 못했고, 후송 진료를 받으려 했지만 외진 차량에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자대로 되돌아와야 했습니다. 국군병원에서도 뇌수막염은 발견하지 못한 채 내과 치료만 받다가 결국 병이 악화돼 새벽에 쓰러졌습니다. ⑦신병 훈련을 받던 중 야간 행군 후 고열로 뇌수막염 증세를 보였지만 당직 군의관이 퇴근한 상태라 의무병이 해열진통제만을 먹인 후 복귀시켰고, 순회진료 예약시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군의관의 진료를 받지 못한 채 뒤늦게 지구병원과 대학병원에서 후송치료를 받다가 사망했습니다.

참고로 ⑤번 사례의 병사는 전역 후 위암 3기말 판정을 받았습니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입니다.

사소한 의료접근권 제한이 합쳐지면 때로는 생명을 앗아갈 수도 있습니다. 의료인력, 예산부족 등 인프라만을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군인은 건강을 유지하고 복무 중에 발생한 질병이나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적절하고 효과적인 의료처우를 받을 권리(군인복무 기본법 제17조)가 있습니다.

인권위는 이런 군인의 의료접근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권고하고 있으며 국방부는 이러한 권고를 수용해 인권침해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병의 의료접근권은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개선해 나가야 할 분야입니다.

최근 국군외상센터 준공, 군의료개혁에 대한 논의가 진척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병의 실질적인 의료서비스 향상을 위해 더욱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담(전화 1331)


 


 

육군 소령.군법무관(국가인권위원회 군인권조사과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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