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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L급 소형 수송함 : 부산함

윤병노 기사입력 2018. 09. 05   17:42 최종수정 2018. 11. 22   14:19

<19> 한국 해군 최초의 수송함… 해사 연안실습의 효시



1949년 ‘FS-남원호’ 인수 후 ‘AKL-901 부산함’으로 명명

6·25전쟁 발발 전까지 해군사관학교 생도 훈련함으로 사용
전쟁 당시 통영상륙작전·원산방어작전·대간첩작전 등 투입


한국 해군 최초의 수송함 ‘부산함’

한국 해군은 1949년 7월 1일 교통부에서 인수한 FS-남원호를 AKL-901 부산함으로 명명했다. 이 함정이 우리 해군 최초의 수송함이다.

이어 1950년 7월 1일 FS-김해호·여주호·왜관호·충주호를 교통부에서 인수해 AKL-인천함(902)·원산함(903)·진남포함(905)·성진함(906)으로 명명하고, 군수물자 수송을 전담하도록 했다.

6·25전쟁 이후에는 목포함(907)·군산함(908)·마산함(909)을, 1970년대에는 울산함(910)을 도입했다. AKL급 함정은 해안 도시를 함명으로 사용하다 1980년 군산함·마산함·울산함을 각각 천수함(61)·광양함(62)·영일함(63)으로 함명과 선체 번호를 변경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중 연안에서의 원활한 수송을 목적으로 육군의 FS급과 해군의 AKL급 소형 수송함 300여 척을 건조했다. 이 함정들은 4가지 모델로 디자인됐다. 대부분의 함정이 철로 선체를 제작했지만, 일부는 나무로 만들었다.

한국 해군이 초기에 도입한 AKL은 미 육군이 운용하던 FS(Freight Supply Boat)급이었으며, 군산함 이후부터는 미 해군이 운용하던 AKL(Light Cargo Ship)급 모델이다.

6·25전쟁 당시 경비·수송 임무 수행

부산함은 6·25전쟁 전까지는 해군사관학교(해사) 생도 훈련함으로 사용됐다. 1949년 11월 5일부터 1950년 1월 24일까지는 해사 3기생의 함정 실습을 지원했다.

6·25전쟁 발발과 함께 경비·수송 임무를 부여받아 각지에서 활약했다. 1950년 8월 16일부터 21일 사이에는 통영상륙작전에 투입돼 고성∼통영 간 도로 차단을 위한 함포 사격을 했다. 적의 야포·박격포 진지에 포격을 가하기도 했다. 이후에는 주로 수송 임무를 맡았다.

1950년 10월에는 노획한 기뢰를 사세보로 수송하고, 12월에는 인천 해역에서 임무 수행 중인 아군 함정에 재보급을 실시했다. 또 해주 지역에 정부 식량을 공급하기도 했다.

1951년 6월에는 사세보에서 소해 장비를 장착해 임무 수행 능력을 강화했다. 1951년 10월부터 12월까지는 원산방어작전에 동참했으며 이후 동·서·남해를 돌며 정기 수송 임무를 수행했다.



목포함, 대간첩작전서 뛰어난 능력 발휘

인천함·원산함·진남포함·성진함은 해군이 인수하기 전까지 군수품을 수송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인수 후에도 동·서·남해를 항해하며 해군부대에 군수품과 보급품을 수송했다.

1951년에는 동·서해안 철수작전을 지원해 다수의 피난민을 이송했다. 이 작전은 크고 작은 위험이 뒤따랐다.

진남포함은 1952년 1월과 8월 적 포대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아 기관포대가 손상되는 등의 피해를 봤다. 성진함은 1953년 4월 여도에서 작업 중 수십 발의 포격을 받기도 했다.

목포함은 대간첩작전에서 뛰어난 임무 수행 능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1969년 9월 20일 간첩 4명이 군산 앞 오식도에 침투할 수 있다는 정보를 입수한 해군은 경찰 등과 합동작전을 전개해 간첩선 1척을 나포하고, 간첩 3명을 사살했다.

당시 목포함은 이 나포작전에서 간첩선의 퇴로를 차단하고, 공군기를 유도해 조명탄을 투하하는 등의 활약을 펼쳤다.
글= 윤병노 기자

● 전문가 해설

   

 태극기 달고 일본으로… 군함 최초의 외국 항해 기록


AKL급은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미 해군과 육군에서 수송함으로 운용했던 함정이다. 한국 해군은 정부 수립 이후 교통부에서 1척을 도입했고, 6·25전쟁 당시 교통부에서 4척, 정전협정 체결 뒤 미 해군에서 4척을 더 도입했다.

우리 해군은 1949년 7월 1일 FS-남원호를 교통부에서 인수해 이날 바로 AKL-901함(부산)으로 개칭했다. 이 함정은 우리 해군 최초의 수송함이었던 만큼 특별하고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AKL-901함은 1949년 11월 5일부터 1950년 1월 24일까지 해군사관학교(해사) 3기 생도들을 편승시켜 진해~제주~묵호~포항~부산~여수~목포~군산~인천~대청도~진해 항로를 항해하면서 함상 실습을 지원했다. 


오늘날까지 시행하고 있는 해사 생도 연안실습의 효시인 셈이다. 특히 인천항에 일주일간 체류하면서 사교춤을 배웠고, 출항 하루 전날에는 이화여자대학생들과 댄스 파티를 하기도 했다.

당시 함장이었던 김영관(대장 예편·8대 해군참모총장) 소령은 이승만 대통령과 미 극동군사령관 맥아더 장군의 합의에 따라 미군에게 3개월 동안 교육훈련을 받을 한국 육군 장교 33명을 AKL-901함에 태웠다.

해사 3기생 37명도 실습을 위해 승함한 AKL-901함은 1950년 4월 12일 부산을 출항해 4월 15일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이것이 정부 수립 후 대한민국 군함이 태극기를 달고 외국으로 항해한 최초의 기록이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한국 육군 장교들은 3개월의 교육과정을 다 이수하지 못한 채 비행기로 귀국길에 올랐다.

임성채 해군역사기록관리단 군사편찬과장 >


■ 기사 원문 


   국방일보 ‘대한민국 군함이야기’, 윤병노 기자, 

   2018년 9월 6일자 12면

☞ PDF 보기 : 한국 해군 최초의 수송함… 해사 연안실습의 효시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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