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백과 함정 군함이야기

PT급 고속어뢰정 : 갈매기정

윤병노

입력 2018. 08. 15   17:34
업데이트 2018. 11. 22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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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한반도 해안 특성에 안성맞춤… ‘해군 특공대’ 명성


수심이 얕고 섬이 많은 한반도 해안 특성상 한국 해군은 작고, 빠르며, 화력이 강한 함정이 필요했다. 해군은 이러한 함정을 물색하던 중 일본 사세보에 미 해군 고속정들이 정박하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 함정은 미 해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운용했던 PT(Motor Torpedo Boat)급 고속어뢰정이었다.


일본 사세보 미 해군기지에서 열린 PT-23 갈매기정과 PT-25 기러기정, PT-27제비정의 명명식. 
 사진 제공=이학수 예비역 해군준위
일본 사세보 미 해군기지에서 열린 PT-23 갈매기정과 PT-25 기러기정, PT-27제비정의 명명식. 사진 제공=이학수 예비역 해군준위

 

한국 해군, 1952년 엘코사 모델

미 해군기지서 ‘어뢰정’ 4척 인수

최고 50노트 속력, 5인치 로켓포 장착

  



2차 대전 때 케네디 美 대통령이 근무한 함정

어뢰를 장착한 모터 보트는 1900년 초반부터 영국·프랑스·이탈리아에서 운용했다. 미 해군은 1930년대 자체 개발을 시작해 엘코(ELCO), 히긴스(Higgins), 허킨스(Huckins) 등 세 회사에서 PT정을 대량 양산했다. 한국 해군이 인수한 PT정은 엘코에서 제작한 모델이다.

PT정은 케네디(John F. Kennedy) 미 대통령이 근무한 함정으로 유명하다. 케네디는 해군중위 시절 PT-109 정장으로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남태평양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일본 구축함에 공격당해 함정과 승조원 일부를 잃었으나 극적으로 생환했다.

한국 해군은 1952년 1월 24일 사세보 미 해군기지에서 고속어뢰정 4척을 인수한 뒤 갈매기·기러기·올빼미·제비정으로 명명했다.

韓 해군 함정 중 가장 빨라… ‘미끼’로 투입

우리 해군이 운용할 당시 PT정의 주 무장은 5인치 로켓포였다. 좌·우현에 로켓포 8기가 들어가는 발사대를 설치했고, 정장이 직접 사격했다. 또 함미에 40㎜ 단열 대공포 1문, 함수에 중기관총 3정, 좌·우현에 20㎜ 단열포 1문을 장착했다. 그러나 어뢰정임에도 어뢰는 제거됐다.

1500마력 엔진 3기를 탑재해 최고 속력은 50노트(시속 92.6㎞)에 달했다. 선체는 필리핀에서 생산되는 마호가니 목재로 건조돼 철선보다 단단했다. 평균 승조원은 17명이었다. 정장이 엔진 속도까지 조절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승조원은 기관실과 무기 운용에 배치됐다.

PT정은 한국 해군 함정 중에서 가장 빠른 함정이었다. PT정을 보유하면서 ‘아침은 진해에서, 점심은 목포에서, 저녁은 백령도에서 먹는다’는 말이 생겼을 정도였다.

PT정은 높은 엔진 출력 때문에 항공기만큼 소리가 컸다. 기습을 위해 잠입할 때는 소음기인 머플러(Muffler)를 덮어 소리를 낮춘 상태에서 5노트로만 움직였다.

PT정은 가볍고 빠른 속도를 활용해 적의 공격을 유도하고, 이를 통해 위치를 파악하는 ‘미끼’로 투입되기도 했다.

적으로 오인돼 유엔 항공기 공격 받기도

갈매기정과 올빼미정은 1952년 4월 19일부터 서해안 작전에, 기러기정과 제비정은 1952년 5월 23일부터 동해안 작전에 투입됐다.

PT 편대의 기습작전 임무는 매우 위험했다. PT정의 로켓포 유효 사거리가 2000야드(약 1829m)에 불과해 적을 기습하기 위해서는 목표에 최대한 가까이 접근해야 했기 때문이다.

PT정은 아군에게 적으로 오인되기도 했다. 미 해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 PT정을 대량 생산했고, 전쟁 종료 후 그중 일부를 소련에 양도했다. 그 PT정들이 북한으로 들어갔고, 6·25전쟁 초기 북한 해군의 주요 전력으로 활동했다. 이로 인해 한국 해군의 PT정이 적으로 오인돼 유엔 항공기로부터 공격을 받는 일이 종종 발생했다.

PT정은 한국 해군에서 특공대로 불렸으며, 대우도 남달랐다. PT정 승조원들은 고유 마크를 부착했고, 강한 바람에 유용한 항공모를 착용했다. 부식도 항공기 조종사와 똑같이 지급됐다. PT정이 출동할 때는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의 지시로 유엔 해군 귀빈들이 사용하던 고급 식당인 LCI에서 식사를 하기도 했다.

기름탱크 총탄 관통 안 돼 인명 손실 거의 없어

 

PT정은 서해의 대청도나 동해의 여도 같은 전진기지에 정박하면서 야간에만 작전을 수행했다. 주간에는 유류·탄약 등을 보급받고 휴식을 취했다.

PT정의 주요 목표는 적의 요새나 병력 집결지, 해안포대 등이었다. 그중에서도 ‘기차 사냥’이 유명했다.

기차 사냥은 해안에 기차 선로가 부설된 동해안에서만 가능했다. 동해안의 기차 선로를 따라 군수물자를 이송하는 적의 기차를 격파하는 게 기차 사냥이었다.

북한군은 주간에는 유엔군 항공기의 폭격이 심해 야간에만 기차 운행을 했다. 특히 기차를 운행할 때는 손전등으로 신호를 하면서 움직였는데, PT정은 해안에 바짝 붙어 북한군의 손전등 불빛을 관찰했다.

공격 장소에 미리 대기하고 있던 PT정은 북한군의 불빛이 보이면 로켓으로 기차를 격파했다. 당시 PT정은 미국 연락장교에게 조명탄을 올려달라고 하거나 함수에 설치된 81㎜ 박격포로 조명탄을 발사해 기차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런 다음 함정의 방향을 틀어 목표물에 사격을 가했다.

PT정의 로켓포 발사대는 고정형이라 정확한 사격을 위해서는 함정의 방향을 틀어야 했다. 81㎜ 박격포는 인수 당시에는 없었지만 한국 해군이 나중에 설치했다. 북한군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북한군은 해안포 등으로 PT정을 공격했다. 어떤 때는 PT정 선체에 수십 개의 총탄 구멍이 생겼다.

처음에는 PT정 선체가 마호가니 나무로 제작됐고, 옥탄가가 높은 항공유를 사용해 연료탱크가 피격되면 화재가 발생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러나 고무로 만든 기름탱크는 총탄으로 외부에 구멍이 생겨도 관통되지는 않았다. 이러한 특성으로 PT정은 6·25전쟁 중 인명 손실이 거의 없었다.

글 = 윤병노 기자 


■ 기사 원문 

    국방일보 ‘대한민국 군함이야기’, 윤병노 기자, 

    2018년 8월 16일자 

☞  PDF 보기 : 한반도해안특성에안성맞춤… 해군특공대 명성

윤병노 기자 < trylover@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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