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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전협정 이행 감독…충돌 막고 긴장 완화 이끌어

김철환 기사입력 2018. 07. 27   17:49

● 65년 한반도 평화 지킴이 군정위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처음으로 손을 맞잡은 곳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파란색 건물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과 ‘군정위 소회의실’ 사이였다. 이 모습을 통해 세계는 이들 파란 단층 건물들을 새로운 평화의 시대를 연 주요한 풍경 중 하나로 기억하게 됐다. T2와 T3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이 건물에서 군사정전위원회는 정전협정 이후 수십 년간 완전한 평화가 올 때까지 양측의 충돌을 막고 긴장을 완화하는 구실을 했다. 65년간 이어진 군정위의 역사를 돌아봤다.


판문점에서 자유의 집을 등지고 중앙을 바라봤을 때 왼쪽에 있는 파란 건물이 ‘군사정전위원회 본회의실’,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군사정전위원회 소회의실’이다. 이들 건물의 T2, T3라는 별칭은 ‘임시(Temporary)’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1953년 7월 27일 정전협정 체결 당시 평화가 올 때까지 임시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건물들이 벌써 65년째 남북의 경계선 상에 놓여 있다.



한반도 긴장완화·평화유지 역할

T2와 T3의 주 사용자인 ‘군사정전위원회(MAC: Military Armistice Commission)’는 정전협정 체결 이후 정전협정의 이행을 감독하며 위반 사건을 협의 처리하는 공동기구로서 오랜 세월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왔다.

정전 유지 기구인 군정위가 군사적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정전협정 자체가 한반도에 큰 상처를 남긴 전쟁을 중지하고 평화적 해결이 달성될 때까지 적대행위와 일체의 무장행동 금지를 보장할 목적으로 쌍방의 군사령관 사이에 이뤄진 협정이기 때문이다.

군사정전위원회 관계자들이 전방 부대를 방문해 시찰하고 있다.     군정위 제공

유엔-北·中 각 5명씩 10명으로 구성

군정위는 정전협정 당사자인 국제연합군(UN) 측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군·중공인민지원군 측에서 각 5명씩 10명의 위원으로 구성됐다. 양측의 사령관은 5명의 위원 중 1명을 수석대표로 임명해 군정위 회의 시 발언권을 행사해 사령관의 대변인 역할을 수행토록 했다.

이에 따라 정전 직후부터 약 40여 년간 유엔 측 수석대표는 미군 장성이, 북한·중공 측은 북한군 장성이 군정위 수석대표직을 수행했다.

군정위 회의는 정전협정에 따라 일방이 24시간 전 통고하면, JSA의 T2, T3 건물에서 개최됐다. 수석대표의 발언은 스피커를 통해 회의실 외부에서도 들을 수 있으며, 기자들이 창문을 통해 회의장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공개회의라는 점이 큰 특징이다.

군정위 본회의는 1953년 7월 28일 제1차 회의를 시작한 이후, 북한 측의 반발로 기능이 마비되기 전인 1991년 2월 13일까지 총 459회 열렸다. 이후 1994년 4월 28일 북한이 군정위를 철수시키기 전까지 유엔사와 북측은 ‘정전협정 위반현황 통계’를 매월 판문점에서 상호 통보·교환했으며, 1953년 7월 27일부터 이때까지 북한의 정전협정 위반 건수는 42만5000여 건에 달했다.



협정 위반 시 유일한 군사문제 협의 창구

군정위는 비무장지대(DMZ) 내 각종 총격, 군사분계선(MDL) 월선·침투, 항공기·선박에 대한 포격, 대한민국 국민 납치 등 북한이 저지른 수많은 정전협정 위반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남북 간 유일한 군사문제 협의 창구로서 대화를 통해 사건 확대를 방지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담당해왔다.

특히 1976년 8월 18일 JSA의 북한군들이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빌미로 미군 장교 2명을 살해한 ‘판문점 도끼만행 사건’도 8월 21일 군사정전위에서 북한 측 수석대표가 북한 인민군 최고사령관이 유엔군 사령관에게 전하는 유감 표명과 재발방지 노력에 대한 메시지를 구두로 전하면서 마무리된 바 있다.



1991년 한국군 군정위 수석대표 탄생

군정위에서 한국군이 본격적으로 활약하기 시작한 것은 1954년 한국군 장성이 위원으로서 38차 군정위 회의에 참석하면서부터다.

이후 1991년 3월 25일 최초로 한국군 장성인 황원탁 육군소장이 유엔사 측 군정위 수석대표로 임명됐다. 이에 북측은 한국군 장성이 군정위 회의에 참석하는 것은 묵인할 수 있으나 한국군 대표는 정전협정에 서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군정위 수석대표가 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며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유엔사 측 수석대표 임명은 유엔군 사령관의 고유 권한이며, 한국이 비록 정전협정에 직접 서명하지는 않았으나 유엔군과 한국군을 통합 지휘한 유엔군 사령관이 참전 16개국과 한국군을 대표한 것이기에 한국군의 정전협정 당사자 문제는 법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었다.

그런데도 북한은 수석대표가 참석하는 군정위 본회의 개최 거부와 수석대표 명의의 모든 전문을 접수하지 않겠다고 하면서 군정위 기능을 크게 약화시켰다. 이어 1994년 북한은 군정위를 판문점에서 철수시키고 ‘조선 인민군 판문점 대표부’를 설치하면서 중국군 대표까지 철수시켰다.

1996년 4월 4일 북한은 외교부 성명을 통해 ‘정전협정 준수 임무 포기’를 선언하면서 정전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유엔사 측은 북측의 일방적 선언은 무효라고 선언하고 한반도 평화유지를 위한 정전협정 체제를 계속 유지한다는 기본원칙을 고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998년부터는 북한군 판문점 대표부와 유엔사 군정위 간 장성급 회담을 통해 정전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군정위는 지난 2010년 천안함 피격사건 당시에도 북한군 판문점 군사대표부와 함께 정전협정 위반 여부를 두고 회의를 열어 치열한 공방을 벌였으며, 2017년 JSA 북한군 귀순사건 때도 조사활동을 펼친 바 있다. 또 2016년 우리 군의 한강하구 중립수역 불법조업 중국 어선 단속활동에도 우리 측이 정전협정을 위반하는 일이 없도록 군정위 요원을 동참시키는 등 오늘날까지 다양한 임무를 수행해왔다. 신상범(육군소장) 군사정전위원회 수석대표는 “군정위가 그동안 임무를 잘해온 덕분에 남측이 정전협정을 준수하며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다”면서 “유엔사 군정위의 활동이 결과적으로 2018년 남북정상회담의 여건을 마련하는 데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철환 기자 < droid001@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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