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테러리즘과 국가안보

잇단 도발, 60년 이어진 중동 분쟁… 어떻게 멈추나

입력 2018. 04. 0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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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수도 선언 의미와 팔레스타인 분쟁의 쟁점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집터에서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폐허가 된 집터에서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여성들.



유대인·아랍인, 1800년 간 팔레스타인에서 공존… 중동전쟁으로 틀어져

1948년 팔레스타인 심장부에서 아랍인 내쫓은 이스라엘, 주변국도 점령

팔레스타인 주민들 극렬 저항… 알카에다 등 테러조직 “우리땅, 양보 없다”



지난해 12월 22일,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포하고 미국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라는 명령서에 서명함으로써 전 세계가 발칵 뒤집혔다. 현재 이스라엘이 50년 이상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고, 누가 보더라도 ‘통곡의 벽’ 등 유대인 성지가 즐비한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정하는 것이 뭐가 잘못됐기에 그렇게 온 세상이 반대하는가? 그리고 왜 아랍과 이스라엘은 그렇게 타협 없는 죽기살기식 전쟁을 60년 이상 계속하는가? 분쟁의 핵심 쟁점은 무엇이며 해결의 접점은 없는 것일까?


‘평화의 도시’였던 예루살렘

이스라엘은 1980년 ‘예루살렘법’ 제정을 통해 예루살렘이 이스라엘의 수도임을 천명했다. 그러자 국제사회는 유엔안보리 결의안 478조를 통해 즉각적으로 이 법의 무효를 선언했다. 1000년 이상 이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자결권 행사라는 인류의 기본 가치 측면에서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에 귀속돼야 했다. 물론 종교적 성소로서 예루살렘은 공동문화유산으로 보호되고 각각의 종교 행위는 보장됐다. 1300여 년간 이 원칙은 지켜져 왔다. 오랫동안 예루살렘은 다른 신앙, 다른 가치가 공존하는 이름 그대로 ‘평화의 도시’였다. 유대교에는 헤롯 왕의 유대성전과 솔로몬 신전 터, 통곡의 벽 등이 고스란히 남아있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그 시신이 묻혀 있는 ‘거룩한 무덤 성당’이 있으니 이곳이 절대적 기독교 성지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왜 이슬람에도 중요한 성지일까?


1300년 이상 이슬람 통치 지역

아랍 세력이 이 도시를 차지한 것은 이슬람 초기인 638년이었다. 이슬람의 전승에 의하면 예언자 무함마드가 신의 계시를 받아 예루살렘의 바위에서 승천하는 사건이 일어난다. 바로 솔로몬의 신전 터에 있는 바위다. 그는 아담과 아브라함은 물론 모세와 예수, 궁극적으로는 알라까지 만나고 나서 이슬람 종교를 더욱 공고히 하게 된다. 그래서 초기에는 예배 방향을 메카가 아닌 예루살렘으로 정하기도 했다. 그 바위 터가 중요한 이슬람의 성지인 셈이다. 그곳은 신이 아브라함의 신앙을 시험해 보기 위해 자식을 번제로 바치라는 명을 내리자 지체 없이 아들 이삭을 희생하려 했던 장소다. 이슬람에서는 그 자식이 이삭이 아니라 이스마엘이다. 이스마엘은 첩인 하갈 소생의 장자고, 이삭은 본처 사라 소생의 적자다. 장자와 적자 논쟁이 결국 한 뿌리에서 나왔지만 기독교와 이슬람이 갈라지는 종교적 계기가 됐다.

예루살렘을 정복한 이슬람 정권은 솔로몬 성전 터에 황금색 돔을 가진 화려한 모스크를 세웠다. 사진에서 흔히 보는 ‘바위의 돔’ 모스크다. 그 후 1967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때까지 1300년 이상 이 도시는 이슬람의 통치 지역이었다. 기독교인들의 순례는 허용됐으며 토착 유대인과 아랍인들은 이웃으로 함께 살면서 별다른 불편 없이 자신들의 종교를 이어왔다. 그런데 1099년 1차 십자군이 기독교 성지를 탈환하겠다며 예루살렘을 침략해 들어왔다. 그들은 승리했고 88년간 이어진 기독교 통치에서 성 안의 모든 무슬림과 유대인이 살해당하거나 추방당하는 추악한 인종청소가 자행됐다. 1187년 아랍 장군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재정복했을 때 성 안 주민 누구 하나 다치지 않게 하고 원하는 자는 자신의 재산을 갖고 떠나도록 성문을 열어주었다는 포용 정치의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이처럼 소수의 유대인과 다수의 아랍인들은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1800여 년 동안 척박한 생태환경을 공유하면서 팔레스타인 땅에서 비교적 평화롭게 살아왔다.

문제의 발단은 1948년 아랍인을 내쫓고 팔레스타인 심장부에 이스라엘을 세운 것이며, 결정적인 충돌의 확산은 1967년 3차 중동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6일 만에 승리한 이스라엘은 유엔에서 승인한 자국 영토를 넘어 이웃 아랍 주권국가들의 영토까지 점령했다. 이집트 북부의 시나이 반도, 동예루살렘이 있는 웨스트 뱅크, 지중해 해변의 가자지구, 시리아 접경 쪽의 옥토 베카계곡과 골란고원 등이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포하고 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선포하고 있다.



유엔, 13차례 이상 이스라엘 영토 반환 촉구

승자의 특권일 수 있다. 그러나 그나마 비옥한 영토를 이스라엘에 내준 아랍 국가들에게 이제 또 영토를 빼앗긴다는 것은 가혹한 생존의 문제였다. 그들은 저항했고 유엔은 안보리 만장일치 결의안 242조를 통해 이스라엘의 점령지 영토 반환과 군대 철수를 명했다. 이스라엘은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유엔은 1973년 4차 중동 전쟁 이후에도 안보리 결의안 338조로 이를 다시 요구했고, 지금까지 적어도 13차례 이상의 안보리 결의안을 통해 이스라엘의 영토 반환과 원상 복구를 촉구했다. 이스라엘은 국제사회의 일관된 원칙과 국제법 준수 요구를 거부했다. 더 나아가 돌려주어야 할 점령지에 12개 대규모 주택단지를 건설하고 약 20만 명의 유대인을 정착시키고 있다. 반환은커녕 실효적 지배를 통해 자국 영토화하겠다는 의지를 전 세계에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자국안보 우선을 내세우고 있지만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다. 이에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빼앗긴 영토와 자결권 확보를 위해 극렬하게 저항하고 있는 것이 중동 분쟁의 핵심이다. 파타 같은 조직은 협상을 통한 해결 쪽이지만, 하마스 같은 급진 조직은 더 이상 양보는 없다며 대이스라엘 무장투쟁을 지속하고 있다. 국제테러조직인 알카에다나 ISIS의 테러 명분이기도 하다.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 홀로코스트 참사 직후 유대인을 돕기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으로 1947년 팔레스타인 지역에 대한 유엔 분할안이 통과됐다. 그러면서 공동성지인 예루살렘에 대해서는 별도로 국제관리하에 둔다는 특별지위를 부여했다. 아랍인들은 자신들의 영토를 쪼개는 분할안에 강력 반발했지만 강대국들의 압박을 이겨낼 수 없었다.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하자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맡고, 동예루살렘은 국제관리하에 두도록 했다. 국제사회의 합의였고 교황청과 미국도 동의한 글로벌 약속이었다. 그래서 한국을 포함한 모든 외국 대사관들이 예루살렘이 아닌 텔아비브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제 사회의 약속이 이번에 깨져버린 것이다.

중동 평화 로드맵은 구체적이고 비교적 잘 정비돼 있다. 이스라엘이 정착촌 건설을 중지하고, 분리장벽을 헐고, 예루살렘을 자신들의 수도로 하겠다는 도발을 멈춘다면 평화의 물꼬는 다시 트일 것이다. 두 나라가 서로 공존하면서 팔레스타인 난민 귀환과 보상 문제, 전력과 수자원 배분 문제 같은 실무적인 현안들은 얼마든지 협상을 통해 합의점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이희수 한양대 교수>
감수=국군기무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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