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기념관 기증유물 이야기

등대 밝혀 전쟁 흐름 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숨은 주역

입력 2018. 03. 13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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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팔미도 등대를 밝힌 연정 소령의 훈장


6·25 당시 한국인들로 구성된 미 육군 켈로 부대 부대장 맡아

 

 

인천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팔미도에는 국내 최초 등대인 ‘팔미도 등대’가 서 있다. 풍운의 백 년 세월을 목격하며 버텨 낸 팔미도 등대는 오늘날 근대문화유산으로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 팔미도 등대는 6·25전쟁 중이던 1950년 9월 15일, 켈로(KLO) 부대의 승리를 이끈 역사의 현장이었다. 당시 팔미도 등대의 불빛이 길잡이가 돼 인천상륙작전 성공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오늘은 팔미도 등대 점화로 6·25전쟁의 흐름을 바꾸는 데 크게 기여한 연정 소령의 훈장에 관한 이야기다.



연정 소령은 6·25전쟁 당시 한국인들로 구성된 미 육군 8240부대(KLO, Korean Liaison Office) 부대장으로 ‘팔미도 작전’에 투입됐다. 1950년 9월 4일 오후 7시.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앞두고, 더글러스 맥아더 사령관은 “15일 0시 팔미도 등대에 불을 밝혀라”라고 작전명령을 내렸다. 불빛을 밝힌 시간은 새벽 1시45분. 예정보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맥아더 장군은 등대의 불빛을 확인하고 작전 개시를 명령했다. 대기 중이던 전투함대는 팔미도 등대 불빛 신호에 따라 함포 사격을 실시했고, 성공 확률이 5000분의 1이었던 인천상륙작전을 기적적으로 성공시켰다.

이때의 공로로 연정 소령은 미국에서 첫 무공훈장을 받게 되며, 한 달 뒤인 10월에 중공군의 참전 준비 첩보를 입수해 연합군에 보고한 공로로 은성무공훈장을 받았다. 1951년 3월에는 원산에 침투해 흑사병 창궐이 허위라는 사실을 밝혀냄으로써 연합군의 북진작전에 기여한 공로로 또 하나의 훈장이 추가됐다. 이후 연정 소령은 KLO부대에서 활약했던 3000명의 군번 없는 한국 군인들의 명예를 높이고, 그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많은 활동을 하다가 2002년 타계했다.

그의 훈장은 2011년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경기중학교 동기생인 배익 씨가 연정 소령의 부인 김영옥 씨에게 “남편 훈장들을 모국에 기증하자”고 제안했고, 이후 배익 씨가 연정 소령의 미국 은성무공훈장 등을 포함해 유품 20여 점을 전쟁기념관에 전달했다. 기증 당시 배익 씨는 “미국에 놔두면 고철밖에 더 되겠습니까. 연정 같은 전쟁 영웅의 유품을 한국에 가져와 후손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라며 기증 이유를 밝혔다. 현재 연정 소령의 훈장을 포함한 그의 유품들은 전쟁기념관 3층 기증실에서 전시되고 있다.

6·25전쟁의 판도를 뒤바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연정 소령을 비롯한 KLO 부대원들의 혁혁한 전공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베일에 가려졌던 이들의 이야기는 2016년에 개봉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이 세상에 알려지면서다. 영화의 엔딩 자막엔 “한국군 켈로 부대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린다”는 문구가 가슴을 찡하게 했다. 계급도 군번도 없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켈로 부대원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기억하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강현삼 전쟁기념관 유물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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