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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통제사회 바이킹족 멸망 패러다임 변화 이누이트족 희망

기사입력 2017. 12. 18   17:14

<233> 바이킹족보다 더 강했던 민족



소빙하기 두 민족 운명 가른 ‘적응’


눈으로 집 짓고 조선 신기술로 먼바다 나가 고래사냥 이누이트족

이누이트족 삶 모방하거나 협력할 방안도 수용 안 해 바이킹족 


바이킹 하면 어떤 인상이 떠오르는가? 거센 파도를 뚫고 거침없이 항해해 나가는 바이킹 선박과 우람한 팔뚝으로 칼과 방패를 들고 싸움을 즐기는 호전적인 바이킹족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습격과 약탈을 자행하는 바이킹족은 오랫동안 중세 유럽인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바이킹족이 원래부터 이렇게 약탈을 자행하는 민족은 아니었다. 이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만든 것은 기후 변화였다.

900년경에 접어들면서 스칸디나비아 반도 주위의 기후가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온난기에 접어든 것이다. 이에 따라 농사를 시작할 수 있게 돼 농기구가 발달하고, 식량 생산이 늘어나면서 인구가 급증했다. 그런데 노르웨이는 대부분 산악지역이어서 국토의 3%만 농지로 이용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농사로는 늘어난 인구의 수요를 채우는 데 한계가 있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바깥으로 눈을 돌렸다.

이들은 날렵하고 조작하기 쉬운 배, 돛과 노를 동시에 동력으로 사용하는 빠른 배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북유럽에서만 생산되는 짐승의 털과 귀한 보석들을 유럽과 영국으로 수출해 먹고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은 모피를 팔지 않고 유럽 지역을 습격해 금은과 보석을 빼앗는 것으로 주업을 바꾸었다. 약탈자로 변한 것이다.

세계를 휘젓고 다니던 바이킹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약탈자에서 정착자로 다시 바뀌기 시작했다. 유럽 대륙과 영국에 정착한 바이킹은 토착민들과 융화돼 러시아·잉글랜드·프랑스 등 국민국가를 세우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그린란드에도 정착하기 시작했다.

1000년경에는 그린란드의 바이킹 인구가 약 5000명에 이를 정도로 독립적인 문명을 이뤘다. 이곳에 정착한 바이킹들은 양과 염소, 순록과 바다표범을 잡아 부족한 식량을 채웠다.

이들의 노력으로 984년부터 1400년대 초까지 거의 5세기 동안 그린란드는 유럽 문명에서 가장 멀리 떨어지고 가장 추운 곳에 세워진 문명이 됐다.

그러나 1300년대 후반 온난기가 끝나면서 소빙하기가 닥쳐왔다. 건초 생산량이 급격히 줄고, 그린란드와 노르웨이를 잇는 해로가 결빙되기 시작했다. 해로가 결빙된다는 것은 노르웨이로부터 식량이나 목재 등의 공급이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기후가 변하면서 추위가 닥쳐오자 경제의 근간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여름이 짧고 추워지고 안개와 비가 많아지면서 식량 생산은 줄어들었고, 눈 내리는 춥고 긴 겨울은 가축과 순록의 번식을 방해했다. 빙하가 늘고 해수 온도가 낮아져 물고기들이 찾아오지 않았다. 물고기를 먹고 사는 바다표범도 사라졌다. 혹독한 기후가 계속되면서 이들은 더는 버틸 수가 없었다.

코펜하겐대학의 빙하퇴적물 분석에 의하면 바이킹 사회의 몰락은 기온 강하와 해빙 상승 등 기후 변화가 원인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추웠던 것이다.

그런데 바이킹 문명과 함께 그린란드에 정착했던 이누이트족은 살아남았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온난기에 결빙된 바다가 녹자 1200년경 베링해를 건너 그린란드로 이주해왔다. 이누이트족은 가혹한 기후를 이겨내는 방법을 터득해 이용했다. 그들은 눈으로 집을 지었고, 고래와 바다표범의 기름을 태워 집을 난방하고 조명을 밝혔다. 배의 골조에 바다표범 가죽을 씌우는 신기술로 먼바다로 나가 고래를 사냥했다.

바이킹들은 연안의 바다표범이 사라졌을 때 속수무책으로 죽어갔지만, 이들은 더 먼 바다로 나가서 고래를 잡아 생존에 성공했다. 이웃에 거주하던 바이킹들은 추워지는 기후에도 이누이트의 삶을 모방하거나 협력하는 방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역사학자들은 바이킹이 엄격하게 통제된 사회였기에 족장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위기를 극복할 사고조차 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이런 것이 그린란드의 바이킹 문명을 멸망시켰다는 것이다.

유럽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바이킹족. 하지만 그들보다 더 강한 민족은 극심한 기후변화에도 생존했던 이누이트족이라 생각된다. 우리는 이누이트족이 소빙하기에 살아남은 방식에서 적응의 위대함을 배워야 한다. 로버트 피어리와 로알 아문센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북극탐험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누이트의 방식을 최대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사회가 종잡을 수 없이 변화하고 있다. 마치 빙하기의 도래처럼. 여러분은 어떠한 환경 변화에도 현명하게 적응하는 진정한 강자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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