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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병영칼럼] ‘오성 장군’ 김홍일로 읽어보는 육군역사

입력 2017. 12. 14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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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군 사상 장군으로 바로 임관한 군인이 단 한 명 있다. ‘오성 장군’으로 불리는 김홍일 장군이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광복 후 귀국한 그에게 육군준장 계급장을 달아줬다.

김홍일 장군이 오성 장군으로 불리게 된 사연은 중국군 소장 출신으로, 한국군 중장으로 전역한 데서 비롯됐다. 이승만 대통령은 그를 주중(현재의 대만) 대사로 임명하면서 임명장을 수여하는 자리에서 “김 장군이 군인으로서 우리나라에 기여한 공로를 생각한다면 오성 장군으로 제대시켜야 했는데, 우리 군에 그런 제도가 없다고 해서 내가 그렇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김 장군은 우리나라 별 세 개에다 중국 별 두 개를 보태면 곧 오성 장군”이라고 덕담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홍일 장군은 중국과 러시아에서 항일전을 지휘하고 한국인으로서 최초의 중국군 장성이 돼 일본과의 전쟁에서 명성을 떨쳤다. 그는 중국군 상하이 공병창 주임장교 시절 이봉창 의사와 윤봉길 의사에게 폭탄을 제공했다. 왕웅이라는 중국식 이름으로도 알려졌는데, 『백범일지』에도 등장한다.

중국군과 광복군을 넘나들던 그는 광복군 초대 참모장을 거쳐 광복과 함께 한국군 최초의 장성으로 임관했다. 그는 6·25전쟁이 일어나자 엿새 동안 북한군 남침을 한강에서 저지했다. 또 한국군 최초의 군단장으로서, 중동부 전선에서 지연작전을 끈질기게 전개해 유엔군의 낙동강 반격 교두보 구축을 가능케 한 지휘관이었다. 1984년에는 KBS 라디오에서 그의 일대기가 특별기획으로 전파를 타기도 했다.

김홍일 장군의 일대기를 살펴보면 조선말 일본에 의한 군대의 강제해산과 의병저항, 이후 독립군 조직과 활약, 우리 국군의 창설로 이어지는 일련의 맥락을 짚을 수 있다. 특히 중국군 장군과 광복군 장군을 다 경험했던 그의 특이한 이력을 통해 광복군과 중국군의 관계를 알 수 있다. 또 6·25전쟁 당시 무능한 육군 지휘부와의 갈등, 그의 지휘력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 그리고 오성 장군 김홍일을 굳이 외면하려 했던 세력들의 숨은 의도 등을 통해 이들이 시사하는 여러 가지를 읽을 수 있다.

마침 김홍일 장군이 교장을 지냈던 육군사관학교가 최근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 특별 학술대회 개최를 통해 군 정통성을 독립군·광복군에서 찾으려고 시도했다. 학술대회 참석자들은 신흥무관학교가 독립전쟁의 기틀을 마련했고 독립군 양성의 대표적 산실이라는 점에서 ‘육사의 뿌리’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장교 양성기관인 육사의 교장으로 광복군의 주요 간부인 최덕신·김홍일·이준식·안춘생 등이 연이어 부임한 사실도 소개했다. 국군이 광복군을 계승했다는 것을 두 군의 역사적·인적 관계를 통해 설명하는 발표도 있었다.

육군이 이왕 뿌리 찾기에 나선 김에 육군의 통사적 연구를 김홍일 장군의 일대기로 접근하는 것도 괜찮은 방안일 듯싶다. 육군 장병들에게도 김홍일 장군을 통해 육군 역사를 간접적으로 짚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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