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국방일보-한국관광공사-강원도 공동기획 이달의 면회길

까맣던 석탄길이 울긋불긋 단풍길로...백두대간, 지금은 오색 향연 중

김용호

입력 2017. 11. 04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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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정선 하늘길 운탄고도




수묵화 같던 산천 화려한 컬러로 복원

석탄소재 관광산업 붐, 제2전성기 맞아

 
만산홍엽 태백준령이 가히 황홀경일세! 눈앞에 펼쳐진 대자연의 신비로움이 놀랍기만 하다. 40여 년 세월은 검은색 일색이었던 이곳을 완벽한 컬러로 복원해 놓았다. 수묵화 같던 산천은 빨강·초록의 알록달록한 아름다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천지개벽, 이보다 더 적절한 표현이 있을까?

강원도 정선 하늘길 운탄고도는 ‘석탄(炭)을 운반(運)하는 높은(高) 길(道)’이다. 지금은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있는 옛길(雲坦古道)’이라고 한다.

고한읍 아라리고갯길인 만항재(해발 1330m)에서 백운산(해발 1426m)~화절령(해발 960m)~두위봉(해발 1466m)을 거쳐 함백역에 이르기까지 총 길이 40㎞의 고산준령이 숨 막히게 펼쳐진다. 이곳의 탄광들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89년 폐광할 때까지 대한민국의 산업화를 이끈 숨은 동력이다. 삼척탄좌와 동원탄좌에서 생산한 석탄은 1957년 개통한 함백선(여미역∼함백역∼조동역을 연결하는 9.6㎞ 구간)을 이용해 전국으로 실려 나갔다. 당시 석탄은 산업의 동력이자 도시민들의 필수 연료였다.

우리나라 산업화의 대동맥 역할을 했던 운탄고도는 석탄 산업이 사양화되면서 잊혀졌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이 지역에 초대형 리조트가 들어서고, 석탄을 소재로 한 관광산업의 붐이 일면서 제2 전성기를 맞고 있다.
또한 정선은 2018 평창동계올림픽대회 종목인 알파인 스키 경기가 열리게 되면서 이제 세계인이 주목하는 관광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숨은 비경과 자연의 신비함이 숨 막히게 전개되는 운탄고도는 백두대간 자락이다. 백두대간 주봉은 대덕산~은대봉~금대봉이 남으로 내려와 함백산·소백산으로 이어진다.

 

정선 운탄고도 만항재에서 화절령으로 가는 길에 고고한 구름이 양탄자처럼 펼쳐져 함백산 정상을 덮고 있는 모습.

 


함백산 자락에서 떨어져 나온 운탄고도라고 얕봤다간 큰코다친다. 평균 해발 고도가 1100m에 이르는 하늘길이다. 이 길을 중심으로 무릉도원길·고원숲길·둘레길 등 10개의 하늘길이 거미줄처럼 펼쳐진다.

야생화·희귀 고산식물 자리한 힐링 명소

‘도롱이 연못’ 광부아내의 애절한 사연 간직

 
화절령에서 낙엽송길을 지나 하이원호텔&CC로 이어지는 구간에는 다양한 석탄 이야기가 펼쳐진다. 옛 탄광 문화의 발자취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이곳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발 1100m가 넘는 고지와 능선으로 이어지는 호젓한 산길로 수백여 종의 야생화와 희귀 고산식물이 함께 호흡하는 힐링 명소다.

풍광만큼이나 태백준령의 지명도 예쁘다. 화절령은 백운산 자락의 고개로 봄철 진달래와 철쭉이 온 산에 만발해 나그네들이 한아름 꺾어 갔다 하여 꽃꺾이재·화절치로 불렸다. 화절령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함백역이 나오고, 첫 갈림길에서 한 번 더 왼쪽 길로 들어서면 하늘마중길이다. 방향을 틀지 않고 곧장 가면 도롱이 연못을 만난다.

해발 1000m 고지에 연못이 펼쳐진다. 100평 남짓한 연못 렌즈 속 세상은 신비롭다. 깨끗하고 맑아 어린아이 눈망울 같다. 나무가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포근하고 아늑하다. 미세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며, 하늘에 떠 있는 뭉게구름까지 연못은 주변 사물의 움직임을 한순간도 놓치지 않는다.

심지어 빨강·주황·노랑 물감을 뿌린 듯 알록달록한 단풍 색깔이나 전나무의 올곧은 기상,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고사목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한 폭의 수채화보다 더 아름다운 작품을 연못 속에 전시해 눈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이처럼 아름다운 도롱이 연못에는 애절한 사연이 전해져 내려온다. 과거 화절령 일대에 사는 광부의 아내들은 지하 막장에서 석탄을 캐는 남편들의 무사귀환을 기도했다. 이들은 연못에 도롱뇽이 살아 있으면 탄광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다고 믿었다.

그 덕분에 생태환경이 잘 보존돼 있다. 여름과 겨울 연교차가 60도 이상 나는 최악의 상황인데도 다양한 곤충들이 서식하는 환경을 유지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그래서 이곳은 자연생태계의 보고로 각광 받는다.

도롱이 연못에서 100m 거리에는 아롱이 연못이 있다. 석회암 지대의 탄광 지하 갱도가 무너져 내린 곳에 물이 차올라 생겨난 연못들이다.

 

 

최초 개발된 국내 최대 민영탄광 ‘1177갱’

운탄고도 주변으로 학교·마을 자리하기도

 


 

도롱이 연못에서 운탄고도 낙엽송길을 따라 1㎞쯤 걷다 보면 1177갱이 나온다. 1177갱은 과거 국내 최대 민영 탄광이었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최초 개발한 갱도로서, 우리나라 탄광 산업이 첫걸음을 뗀 곳이다.

당시 이곳 막장에서 캐낸 석탄은 트럭으로 함백역까지 옮겼으며 이때 만들어진 길이 운탄고도다.

 


 


1177은 갱도 입구의 해발 고도를 나타낸다. 갱 입구에서 바라본 풍경은 장관이다. 숨 막히는 막장에서 나온 광부들은 장쾌하게 뻗은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오늘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었을 것이다.

오광호 정선문화관광해설사는 “정선·태백 일대의 산에는 많은 갱이 있어 일일이 이름을 붙이기가 어렵기 때문에 해발 고도를 갱도 이름으로 불렀다”고 말했다.

석탄산업이 사양길로 접어들면서 함백선 철길 옆 
광부들이 떠나고 폐가만 남아 있는 모습.

 

 

태백준령의 선경을 간직한 운탄고도는 과거 석탄 산업이 활황일 때는 사람의 발길이 잦았다. 산등성이 일대에 초등학교도 있었다. 당시 이 능선에는 석탄을 나르는 트럭의 거친 엔진 소리와 밝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석탄 산업이 사양화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끊겼고 학교는 문을 닫았다.

사람이 떠난 척박한 땅의 주인은 숲이었다. 아무도 돌보지 않았지만 숲은 수십 년 동안 스스로 상처를 치유했다. 검은 산천에 조금씩 새살이 돋아나면서 푸르름을 되찾았다. 사라졌던 산새며 짐승들이 돌아왔고, 숲속은 떠나간 아이들 웃음 소리 대신 산새들의 멜로디로 가득 찼다. 그러면서 이곳은 국내 최고의 힐링 여행 명소로 떠올랐다.

운탄고도에서 만난 임영자(76·사북읍) 할머니는 과거 탄광에서 석탄의 불순물을 골라내는 선별 작업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먹고살기가 힘들어 석탄 먼지를 마시며 일했다는 임 할머니는 “당시 사북 일대 산과 하천은 모두 검은 괴물 같았다. 어린아이들은 그림을 그릴 때 산도 사람도 계곡의 물도 모두 까맣게 그렸다”면서 “울창한 이 길 주변에도 학교와 마을이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잦았다. 이제 이 길에는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갖춰 입고 전국에서 몰려드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고 말했다.

김용호 기자 < yhkim@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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