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국립박물관에 깃든 우리 역사와 문화

짚풀의 무궁무진한 쓰임새…모양도 참말 예뻐라

송현숙

입력 2017. 10. 0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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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끝> 짚풀생활사박물관




절박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급하게 찾는 물건(?)이 있다. 바로 ‘부서진 짚의 부스러기’, 지푸라기다. 암흑 속 한 가닥 희망 같은 존재로 묘사되는 이 지푸라기는 요즘 가축 사료나 황토 주택 건축 단열재 정도로 쓰이지만, 그 옛날 우리 조상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생활 재료였다. 깊어가는 가을, 자연과 함께 공존해온 조상의 지혜를 만나러 가보자.



서울 대학로에 가면 한국의 전통문화를 지켜가는, 숨은 보석 같은 공간이 있다. ‘짚풀생활사박물관’(관장 신좌섭)이다.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4번 출구로 나와 혜화동 로터리 방향으로 5분 정도 걸어가면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 한 채가 고향 집 어머니처럼 고즈넉이 기다리고 있다.

“우리 민족은 오래전부터 벼농사의 부산물인 볏짚과 산천에 자라는 각종 풀을 채취해 생활 용구를 만들어 썼습니다. 짚풀생활사박물관은 그 옛날 짚풀로 만든 생활 용구 속에 담긴 조상들의 삶의 지혜와 전통 철학, 민간 신앙을 보존·계승하고 널리 알리고자 민속학자인 인병선 전 관장이 1993년 설립했습니다.” 민지은 실장의 설명이다.

짚풀공예의 다양한 엮음새.

그릇·멍석 등 다양한 짚풀 생활 용구

2001년 가을, 서울 강남 청담동에서 대학로로 이전한 이 박물관에는 설립자가 전국을 답사 다니며 수집하거나 기증받은 8000여 점의 관련 유물을 3개 상설전시실과 1개 기획전시실에 나눠 전시하고 있다.

1전시실(본관 지하 1층)은 세 벽면 가득 짚풀 생활 용구들로 채워져 있다. 말린 벼의 쭉정이를 제거하기 위해 펄럭여 바람을 일으킬 때 쓰는 ‘부뚜’, 곡식을 담기 위해 볏짚으로 거적을 짜서 반으로 접어 꿰맨 자루 ‘섬’, 마른 농작물을 담는 그릇 ‘둥구미’, 둥근 모양의 멍석 ‘도래멍석’ 등 낯설지만 친근한 이름 속에서 조상들의 땀방울이 느껴졌다.

또 엄동설한에 태어난 강아지를 위해 만든 작은 강아지 집, 소 등에 짐을 싣기 전에 쿠션처럼 얹어주는 ‘떰치’ 등은 말 못하는 가축이라도 배려하고 생각해주는 따뜻한 심성이 오롯이 배어 있다.

본관 지하 1층 제1상설전시실 전경. 이 공간에서는 조상들이 짚풀로 만든 각종 생활 용구와 짚풀의 종류, 짚풀공예의 꼬임새 등을 살펴볼 수 있다.

겨울에 태어난 강아지를 위한 집도 있어

“짚은 먹으려고 기르는 곡식을 추수한 다음에 남는 줄기를 말린 것을 뜻합니다. 벼를 말리면 볏짚, 보리를 말리면 보릿짚이 되는 거죠. 풀은 갈대, 억새, 대나무, 칡 등 종류만 수백 가지 이상이고 지역과 계절에 따라 채취하는 것들이 다릅니다. 강도와 광택, 색상, 만들고자 하는 생활용품에 따라 사용하는 풀의 종류도 바뀌죠.” (민 실장)

우리 조상들은 자연 속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본인의 필요에 의해 직접 만들어 사용했다. 이름 없는 장인이었고, 세상에 똑같은 작품도 없다. 비록 지금은 산업화로 인해 그 자리를 빼앗겼지만 선조들의 지혜가 오롯이 담긴 물건들이다. 짚풀을 사용한 것은 비단 우리 선조만이 아니다. 벼농사권에서는 비슷한 문화가 형성돼 있고, 밀 농사를 많이 짓는 유럽은 밀집 문화가 발달했다. 또 짚풀은 꼬는 방법에 따라 모양, 용도, 강도 등이 달라진다.

“보통 짚신과 같은 생활용품은 오른새끼(밖으로 밀어내면서 꼰 것)를 쓰는 반면, 금줄과 제례, 장례 등 생사와 관련된 것은 왼새끼(안쪽으로 당겨가며 꼰 것)를 써요. 짚풀을 꼬면 장력이 엄청 세집니다. 실제로 인병선 전 관장께서 일본의 한 직물원사시험연구소를 찾아가서 실험한 결과, 새끼줄이 차를 끌 수 있을 정도로 장력이 세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설립자 인병선 선생의 집념이 이룬 공간

이 박물관은 설립자의 집념이 만들어낸 결정체였다. 원래 철학을 전공했던 인병선(83) 선생이 짚풀 관련 유물을 수집하게 된 계기는 새마을 운동과 관련 있다. 산업화 바람을 타고 시골에서 짚풀 용구들이 마구 버려지는 것이 아쉬워 하나둘 수집하기 시작한 이후 만드는 방법을 직접 영상으로 기록하고 저서로 남기며 우리의 얼을 지켜나가는 일을 해왔다. 지인들의 ‘돈이 되는 골동품이나 사라’는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서민들의 손때 어린 것들을 지켜준 덕택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사라져 가는 우리 문화를 보고 경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뿌듯한 마음을 안고 2전시관(본관 1층)에 가면 좀 더 스케일이 큰 유물들이 기다린다.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초고장(草藁匠) 임채지 선생이 손수 만든 소 인형을 비롯해 추수한 다음 곡식을 담아 놓는 바구니- 성인 남성 2명은 족히 들어가고도 남을 만한 크기다- ‘멱서리’, 비 올 때 쓰는 ‘도롱이’, 짚풀로 만들었다고는 믿기지 않는 만 가지 표정의 탈들, 전래동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망태’ 등을 도슨트 설명과 함께 들으면 더욱 재미있게 관람할 수 있다.



짚으로 만든 소 인형·탈 등 예술작품도

한옥관에는 각종 소품과 제기 용품 등 일상생활과 밀접한 것들을 전시한다. 어린아이와 함께라면 짚풀 공예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다. 기획전시실(본관 2층)에서는 ‘풍작, 농부의 사계를 담다’를 주제로 농기구와 생활용품들을 오는 11월 말까지 전시한다.

민 실장은 “요즘은 뭐든 너무 쉽게 쓰고 쉽게 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과거 짚풀에 담긴 조상들의 생활철학과 자연을 닮은 삶의 방식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인 것 같다”면서 “짚풀생활사박물관에서 조상들의 지혜와 삶의 향기를 느껴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관람료 3000~5000원, 문의 02-743-8787~8, 매주 월요일, 명절 연휴 휴관.

송현숙 기자 < rokaw@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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