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국립박물관에 깃든 우리 역사와 문화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암흑의 기록...역사의 거울

김가영

입력 2017. 02. 27   17:15
업데이트 2019. 07. 31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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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 공간 ‘기억의 터널’

쌓인 노무 수첩·마지막 가족사진…강제 동원 고통·슬픔 ‘고스란히’

마지막 공간 ‘시대의 거울’

피해자 이름 빼곡히 적힌 거울 희생 위에 세운 철길엔 비통함만…


삼일절을 앞두고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찾은 한 해군 수병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삼일절을 앞두고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찾은 한 해군 수병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사진을 꼼꼼히 살펴보고 있다.


삼일절을 앞두고 찾은 국립일제강제동원역사관으로 가는 길은 가팔랐다. 역사관이 부산에서 흔한 산등성이에 자리 잡은 건물이어서다.

숨이 차올랐지만, 일제에 의해 강제 동원됐던 우리 선조들의 고통에 비할까 싶어 걸음을 재촉하자 어느 순간 역사관 건물이 나타났다. 웅장하고 현대적인 느낌의 건물 표면이 독특했다. 곳곳이 움푹움푹 파였다. 몸의 상처와 아픈 기억을 표현하기 위해 새긴 것이라 한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역사자료를 전시·체험할 수 있는 전국 유일의 역사관인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부산에 건립된 이유는 분명하다. 부산항이 대부분의 강제동원 출발지였고 광복 후 동포들이 밟은 첫 귀향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2015년 12월 개관한 역사관은 1층부터 전시 공간이 시작되는 일반 박물관과 달리 4층부터 전시가 시작된다. 4·5층이 상설전시실, 6층이 기획전시실이다. 높낮이 차이가 심한 역사관 터의 성격을 고려해 지상 3층, 지하 4층 규모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우토로, 남겨진 사람들의 노래’전 관람 소감을 적은 나비 모양 쪽지들.
‘우토로, 남겨진 사람들의 노래’전 관람 소감을 적은 나비 모양 쪽지들.

 

기획전시실의 관람이 시작되는 ‘기억의 터널’.
기획전시실의 관람이 시작되는 ‘기억의 터널’.


강제동원과 관련된 유물과 기증품 등 192건, 354점을 비롯해 패널 453점, 영상 34개, 모형 12개를 전시하는 상설전시실 내에서도 4층과 5층의 성격이 구별된다. 4층이 패널·유물 등을 통해 강제동원의 역사를 전체적으로 보여준다면, 5층은 모형과 세트를 활용해 당시 동원됐던 이들의 고통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역사관 관람은 어두운 ‘기억의 터널’을 지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15세에 일본 홋카이도(北海道)로 끌려간 어린 노무자와 자살특공대로 동원된 고(故) 인재웅 씨의 이야기를 통해 일제의 잔혹성을 일깨움으로써 관람객들이 강제동원의 기억을 잊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무덤처럼 쌓인 노무 수첩이나 일본군으로 징집돼 무표정한 얼굴로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 등 가슴 아픈 전시물이 한둘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고 강삼술 씨의 ‘북해도 고락가’는 눈에 띄는 전시물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남긴 기록 중 유일무이한 ‘노래’이기 때문이다.


조선땅의

우리집은


저녁밥을

먹건만은


여기나의

이내 몸은


수만길

땅속에서


주야간을

모르고서


이와같이

고생인고


이처럼 4·4조 운율의 가사체로 강제동원의 고달픔을 표현했다. 전시장에서는 성우가 직접 읊조린 노래를 들려줘 당시 고통과 슬픔을 생생하게 느끼도록 하고 있다.


어린 청소년도 강제 동원했음을 보여주는 작은 군복.
어린 청소년도 강제 동원했음을 보여주는 작은 군복.

 

강제동원 피해자가 고향을 떠나기 전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
강제동원 피해자가 고향을 떠나기 전 찍은 마지막 가족사진.


한 피해자의 군복도 눈길을 끌기는 마찬가지. 어린이에게나 맞을 정도로 크기가 너무 작았기 때문이다. 앳된 얼굴, 작은 체구의 13~15세 청소년도 마구잡이로 강제동원한 흔적이었다.

4층 전시장 한가운데서는 기획전 ‘우토로, 남겨진 사람들의 노래’가 열리고 있었다. 일제가 1941년 교토 군 비행장 건설을 위해 조선인 노동자 1300여 명을 동원하면서 형성된 우토로 마을은 최근 일본 정부가 정비사업을 시작하면서 오는 2020년 현재의 마을이 완전히 사라진다. 전시에서는 사진작가 곽동민 씨가 현지를 찾아 촬영한 마을과 주민들의 모습, 인터뷰 내용을 선보이고 있다. 애초 지난 26일까지 전시할 예정이었으나 반응이 좋아 오는 4월 말까지 연장 전시가 이뤄지고 있다.

긴 계단을 따라 올라간 5층에는 ‘다코베야’(태평양전쟁 당시 광산 노동자나 공사 인부가 생활하던 열악한 조건의 합숙소), ‘탄광’, ‘일본군 위안소’를 세트로 재현해 좀 더 생생한 관람이 가능하다. 그중에서도 비스듬하게 판 갱도인 ‘사갱(斜坑)’ 세트는 온종일 일어나지도 못한 채 일해야 했던 공간을 고스란히 재현했다. 하태현 교육홍보부장은 “탄광에서 일했던 한 강제동원 피해자께서 이곳을 보시더니 ‘똑같다’며 눈물을 흘리셨다”고 소개했다.

전시관 관람을 마무리하는 공간은 ‘시대의 거울’ 방. 짧은 철길이 깔린 방의 벽면은 강제동원 피해자의 이름이 빼곡히 적힌 거울로 꾸며졌다. 철길의 침목 하나하나가 조선인의 생명이라고 할 정도로 많은 희생 속에 건설된 철길 위에 서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이름과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노라면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경구를 절로 되새기게 된다.

역사관 뒤편에 조성된 추모공원도 꼭 찾아봐야 할 공간이다. 부산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공원의 중심에는 추모탑이 우뚝 서 있고 탑 꼭대기에는 다섯 마리의 새 조형물이 힘차게 날아오르고 있다. 마치 몸은 이역만리 타국에 있지만, 고향을 향해 날아가고 싶었던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마음처럼.

 

관람 안내
♣관람 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추석 당일 휴관.
♣전시 해설은 단체 10인 이상 신청 가능, 사전 예약 051-629-8600.
♣부산광역시 남구 홍곡로 320번길 100, 부산지하철 대연역 5번 출구에서 도보 약 10분 

 

■ 일제 강제동원이란?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침략전쟁을 벌이기 위해 실행한 인적·물적 동원 및 자금 통제를 말한다. 강제동원은 일제가 지배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자행됐다.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 규모는 동원 주체인 일본이 인정한 것만 782만7355명. 1940년대 초반 조선 인구가 2600만 명 정도였던 것을 고려하면 인구의 30%가 넘는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수치마저도 축소·은폐 의혹이 있는 데다 위안부 피해 등 반인륜적 전쟁 행위에 관한 명부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아 일제 강제동원 피해는 현재로는 정확한 규모 추산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김가영 기자 < kky71@dema.mil.kr >
사진 < 조용학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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