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도 열매도 ‘별 닮은 그대’ 우리 땅에만 와 더 빛나네
DMZ에는 가장 먼저 겨울이 찾아와 가장 늦게까지 남아있습니다. 그만큼 봄소식은 더디고 간절해지지요.
우리나라의 가장 북쪽 경계이고, 기온을 높여주는 도심의 열원도 없으니 온전하게 자연의 흐름에 맡겨두어야 하는 곳이고 그래서 더 맑은 곳이기도 합니다.
여전히 대기는 차가워도 2월이 가고 3월이 오면 봄이 가까워지고 있다고 믿게 됩니다. 어려움은 가고 새싹이 움트고 있다는 걸 기대하는 것이 바로 희망이겠지요.
3월이 시작하는 첫날은 삼일절입니다. 나라의 독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선 날이지요. 우리나라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기에 그 고난 속에서 가능했던 일이었을 겁니다.
이 의미 있는 즈음에 맞는 DMZ 155마일의 식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습니다. 떠오른 여러 식물 중 하나가 바로 오늘 소개하는 모데미풀입니다.
모데미풀을 꼽은 이유는 우선, 우리나라 특산식물이기 때문입니다. 개느삼을 소개해 드릴 때도 이야기했지만 특산식물이란 지구 상에 우리나라에만 있는 식물이니까 진짜 진짜 우리 식물입니다.
지난 광복 70주년 기념사업을 할 때 산림청 국립수목원에서는 ‘우리 식물 주권 찾기’ 사업을 했습니다. 식물의 이름에는 우리말 이름이 있고, 학술적인 라틴어 이름이 있으며 쉽게 부르는 영어 이름도 있습니다.
학명은 세계 공통으로 ‘국제 식물 명명 규약’이라는 까다로운 규칙을 따라서 만들어지므로 임의로 변경할 수 없지만 영어 이름은 바꿀 수 있습니다. 속상하게도 대표적인 우리 나무라고 알고 있는 소나무의 영어 이름은 그동안 ‘재퍼니즈 레드 파인(Japanese red pine)’ 즉 ‘일본 붉은 소나무’로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국립수목원에서는 여러 해 동안 4000종류 가까운 우리 식물의 영어 이름을 확인해 불합리한 것은 수정하고 없는 것은 새로 만들어 광복 70주년 되는 날 식물 이름의 독립을 선언했지요.
소나무의 경우는 ‘코리안 레드 파인(Korean red pine)’으로 고쳤습니다.
우리가 널리 사용하면 그 이름으로 불리게 되겠지요. 이때 모데미풀의 영어명은 우리말 이름 그대로 모데미풀(Modemipul)로 했습니다. 생선초밥이 ‘스시’라는 일본말로 전 세계에서 통용되듯 이 아름다운 꽃은 우리 땅에만 있는 귀한 식물이니 전 세계가 우리와 똑같이 불러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꽃을 몰라보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면 식물 이름의 주권을 찾고자 하는 노력도 보람이 없으니 꼭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모데미풀을 뽑은 또 하나의 이유는 희소성 때문입니다.
멸종 위기에 가까울 만큼 보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특산식물이니 우리가 소홀히 해서 우리 땅에서 사라지면 지구상에서 멸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참 귀한 식물이고 기억해야 하는 식물이지요.
모데미풀이라는 특별한 이름은 어떻게 얻었을까요?
지리산 자락인 남원군 운봉면 모데미란 마을의 개울가에서 이 식물이 처음 발견돼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분포는 우리나라 제주도에서부터 강원도까지 전국적으로 발견되는데, 소백산의 군락을 제외하고는 매우 드뭅니다. DMZ 내에서는 연천군·인제군·양구군에서 발견된 기록이 있습니다.
이른 봄 산에 오를 정도로 아주 부지런하고, 아주 섬세하고, 운이 좋아야 볼 수 있는 식물입니다. 게다가 워낙 이른 계절에 그리고 오염이라고는 모를 듯한 깊은 산골의 물가 혹은 습하고 비옥한 땅에서만 드물게 자라기 때문에 우리 꽃에 마음을 두고 있는 장병이라면 꼭 한번 찾기에 도전해볼 만합니다.
모데미풀을 꼽은 세 번째 이유는 추운 겨울을 이기고, 자라기에 까다로운 조건을 극복하면서 여태껏 이 땅의 우리 꽃으로 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어려움을 견뎌내고 때가 되면 그 가치를 인정받고 귀한 대접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주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이유는 모데미풀과 같은 의미 있는 꽃을 만나서 느끼는 보람과 행복감을 장병 여러분께 드리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이른 봄, 아직 잔설이 드문드문 보이는 숲속에서 졸졸 흐르는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계곡 한 자락에서 만나는 모데미풀은 순결한 별들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자리를 잡은 듯 곱고 아름답기 그지없으니 말입니다.
혹시 새봄에 모데미풀을 발견하면 꼭 알려주세요. 우리 식물의 새로운 분포도에 한 점을 찍을 확률이 높답니다.
꽃이 아름다워서 많은 사람이 관상용으로 키워보려 하지만 재배 방법이 까다롭기 때문에 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자생지를 그대로 두고 보전하는 것이 옳습니다. 부대가 높은 산, 숲이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면 상징처럼 키워볼 만도 한데 절대 햇볕에 그대로 노출되면 안 되고 6월쯤 씨앗이 익으면 바로 뿌리는 것이 좋습니다.
지금도 꽁꽁 언 땅속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을 모데미풀, 이 소중한 풀과 함께 희망의 봄을 맞고 싶습니다.
■ 모데미풀
학명 : Megaleranthis saniculifolia Ohwi
영어명 : Modemipul
과명 : 미나리아재빗과(Ranunculaceae)
분포 : 전국의 비옥한 산지
DMZ 내 연천군·양구군·인제군 등
형태 : 모습 / 여러해살이풀, 키 20cm
잎 / 여러 번 깊은 결각(缺刻)을 만들며 갈라짐
꽃 / 3∼4월, 지름 2cm, 백색의 꽃, 5장의 화피(花被)
열매 / 골돌, 별 모양
■ 기사 원문 PDF 파일로 읽기
꽃도 열매도 ‘별 닮은 그대’ 우리 땅에만 와 더 빛나네
http://pdf.dema.mil.kr/pdf/pdfData/2017/20170224/B201702241401.pdf
국방일보 기획 ‘DMZ 식물 155마일’ 2016년 2월 24일자
■ ‘DMZ 식물 155마일’은 이유미 국립수목원장이 국방일보 2017년 1월부터 2018년 6월까지 매주 금요일마다 게재한 특별기획 연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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