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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비빔밥·프랑스 오믈렛…결사항전 앞두고 먹던 ‘한솥밥’

입력 2016. 12. 28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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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끝> 단합의 상징 음식





프랑스 오믈렛 19세기 초, 나폴레옹 군대 위해 초대형 오믈렛이 만들어졌다?



나라마다 단합을 상징하는 음식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오믈렛이 그런 음식 중 하나다. 달걀을 깨 모아서 우유나 생크림을 넣고 저어 부드럽게 만든 다음, 프라이팬에 부치고 최대한 크게 말아서 여러 사람이 나눠 먹는다.

이런 풍속이 생긴 데는 유래가 있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군대가 프랑스 남부를 지나면서 베시에르라는 마을 근처에서 야영했다. 나폴레옹은 현지의 여관을 숙소로 삼았는데 그곳 주인이 그를 위해 특별히 오믈렛을 만들어 대접했다. 오믈렛을 맛있게 먹은 나폴레옹은 이렇게 좋은 음식은 병사들과 나눠 먹어야 한다며 마을 사람들에게 모든 달걀을 모아서 다음날 군대가 먹을 수 있는 커다란 오믈렛을 만들라고 명령했다.

이때부터 베시에르 마을에서는 해마다 초대형 오믈렛을 만드는 전통이 생겼다. 부활절 무렵이면 축제를 열고 마을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대형 오믈렛을 만들어 나눠 먹었다. 이 마을에서 만든 가장 큰 오믈렛은 달걀 5000개가 들어간 것이다. 이런 전통이 퍼지면서 오믈렛은 단합의 음식이 됐고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다. 그래서 곳곳에서 경쟁적으로 단합의 상징인 초대형 오믈렛을 만들었다. 현재까지는 2002년 캐나다에서 만든 3톤짜리 오믈렛이 최고 기록이라고 한다.

그런데 나폴레옹이 병사와 함께 먹으려고 초대형 오믈렛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는 사실일까? 남아 있는 믿을 만한 기록은 없다.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다.

임진왜란 진주대첩도. 필자 제공

 

한국 비빔밥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서 육회 비빔밥 만들어졌다는 설



우리나라에서 단합의 음식은 비빔밥이다. 행사장에서 초대형 솥에 밥과 나물, 고기를 넣고 여러 사람이 커다란 주걱으로 비벼 먹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단합의 상징인 비빔밥의 원형으로는 진주 육회 비빔밥을 꼽는다. 여기에도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임진왜란 때 제2차 진주성 전투를 앞두고 군·민이 다 함께 만들어 먹었던 비빔밥이 뿌리라는 것이다.

1593년 6월 9만여 명에 이르는 왜군이 진주성으로 몰려 왔다. 제2차 진주성 전투다. 당시 진주성에는 원래 성을 지키던 관군 2400명과 함께 경상도와 충청도의 관군, 그리고 전라도의 의병을 합쳐 대략 7000명 정도가 있었다. 이들은 성 밖 100리 이내에 지원군이 전혀 없는, 문자 그대로 고립무원의 상태가 됐다.

하지만 성 안의 병사와 백성은 결사항전의 의지를 다졌다. 그리고 마지막이 될 수 있는 식사를 다 함께 먹었다. 진주성에 남아 있던 소를 모두 잡아서 육회를 만든 후 밥과 나물을 한데 넣고 비벼서 적이 공격해 오기 전에 서둘러 한 끼 식사를 해결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진주성은 왜군에 함락됐고 끝까지 항전했던 병사는 물론 백성들까지 6만 명이 모조리 살해됐다.

진주 육회 비빔밥이 만들어진 유래라는데 물론 진주비빔밥에 관해서도 실제로 남겨진 기록은 없다. 역시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일 뿐이다.

 

코사크 기병의 아조프 요새 공방 삽화. 필자 제공

러시아 보르쉬 수프 난공불락 요새 함락시킨 힘의 원천 ‘보르쉬 수프’


러시아에서 단합을 상징하는 음식은 ‘보르쉬(Borscht)’라는 수프다. 한국인의 밥상에 반드시 국이 오르는 것처럼, 러시아의 밥상에는 일년 내내 보르쉬가 오른다. 그래도 러시아 사람들은 이 음식을 질린 기색 없이 먹는다고 한다.

보르쉬는 돼지뼈를 푹 고아 낸 국물에 양배추와 사탕무, 양파, 당근 등의 채소와 소고기, 닭고기 등의 육류를 넣고 장시간에 걸쳐 푹 끓여서 만든다. 동유럽의 여러 나라와 지방마다 차이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빠지지 않는 재료는 사탕무다. 그런데 보르쉬가 러시아 사람들에게 단합의 상징이 된 유래가 전해져 내려온다.

1637년 러시아 남부의 흑해 연안에 인접한 아조프(Azov)의 요새는 200여 문의 대포를 보유한 4000명의 터키 군대가 굳건히 지키고 있었다. 당시 아조프는 난공불락의 요새로 명성을 떨쳤다. 요새를 공격하는 코사크 기병 역시 4000명 규모.

약 두 달에 걸친 공방전 끝에 코사크 기병이 마지막 결사 공격을 감행하기로 했다. 모두가 모여 커다란 솥에 물을 끓인 후 먹을 수 있는 것은 모두 집어넣었다. 사탕무와 양배추를 비롯한 갖가지 채소와 고기를 섞어 진한 수프를 끓였다. 그리고 모든 병사가 수프를 나눠 먹은 후 총공세 끝에 드디어 터키군을 물리치고 요새를 함락시켰다. 보르쉬 수프는 이렇게 러시아에서 단합을 상징하는 국민 음식이 됐다. 보르쉬 수프 이야기 역시 사실일까? 물론 근거는 없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하나같이 단합의 음식은 전쟁과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 사실이건 아니면 만들어 낸 이야기건 생사를 가르는 전투가 있기 직전, 한 솥의 음식을 나눠 먹고 단합을 과시했다는 것이다. 이유가 무엇일까?

한솥밥을 먹는 사람이 바로 식구(食口)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같은 음식을 먹는 사람은 가족이 됐건, 아니면 가족 같은 전우가 됐건 서로 목숨을 걸고 지켜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리더의 식탁’, 그리고 ‘전쟁과 음식’이라는 주제로 4년에 걸쳐 연재한 전쟁에 얽힌 음식 이야기를 마친다. 그동안 함께해 주신 국군 장병과 국방일보 독자 여러분께 지면을 빌려 감사를 전한다.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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