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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사람 살리는 ‘보배 의학서’ 천하가 공유해야

기사입력 2016. 12. 22   15:57

<48> 의학서를 구했던 참선비

병들면 참고할 의학서적 못구해 발 동동

중국판 ‘동의보감’ 비싸 서문 베껴 소개

평소 이질·학질 같은 질환에 관심 많아

‘금료소초’에 처방전·배꼽 잡는 내용도

 

 

 

동의보감 (규장각 소장).

 

독일인 쿨무스의 ‘해부도해’ (1764년판, 초판은 1722년).

 

 

약방에 들르다

연암 박지원은 조선에 약재료가 많지 않아서 중국 약재를 수입해 쓰는데 진품이 아니어서 병이 낫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황해도 금천에 머물 때, 그는 푸른 사슴을 보고 호기심이 발동했다. 털과 뿔을 자세히 관찰하려고 다가가자, 사슴이 놀라 달아났다. 열하일기의 ‘구외이문’(口外異聞·만리장성 밖에서 들은 기이한 이야기) 편에는 사슴과 녹용에 관한 흥미로운 기록이 보인다.

연암은 열하로 가는 도중에 공물로 실려 가는 크고 작은 사슴 무리를 실컷 구경하고, 열하에서 다시 만리장성 안으로 들어와서는 길이가 네댓 자나 되는 사슴뿔이 가득한 어느 약포(藥포·약방)에 들렀다. 주인은 긴 사슴뿔을 녹용이라고 했지만, 연암은 그것이 미용(미茸·고라니 뿔)이라면서, 진짜 녹용을 좀 보여 달라고 청했다.

주인은 녹(鹿)자를 쓰는 사슴 종류의 뿔은 모두 녹용이지만, 한겨울인 동지에 뿔이 빠지는 주()자를 쓰는 사슴뿔이 약효가 탁월한 녹용이라고 설명한다. 이때 연암은 조선 관북지방의 녹용은 효험이 탁월하지 못할 것 같은데도 날로 구하기 어려워지는 현실을 한탄한다.

주인은 네덜란드에서 푸른 바탕에 흰 얼룩무늬가 있는 주먹 크기의 사슴 한 쌍을 황제에게 공물로 올리는 것을 보았다고도 설명한다. 또한, 타조 알을 보여주며 희한한 병을 고치는 약효가 있다고 설명한다.


1774년 일본에서 발간된 ‘해체신서’.

 

중국판 ‘동의보감’

조선에 의학 서적이 널리 퍼지지 못해서 양반 신분인 연암 자신과 가족도 병이 들면 참고할 만한 책을 빌려보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하물며 평민이나 천민은 어떻겠느냐는 생각에서 중국 여행길에 의학책을 수소문하다가 뜻밖에 1766년 청나라에서 인쇄된 ‘동의보감(東醫寶鑑)’을 발견했다.

조선에서 1610년에 완성된 책이 청나라에서도 발간되다니! 책을 사려 했으나 쌀 다섯 가마니 값을 달란다. 차마 사지 못하고, 중국인이 쓴 책의 서문을 베껴서 ‘구외이문’ 편에 소개했다.

“조선 사람들은 옛날부터 한자를 알았으며 글 읽기를 좋아했다. 동의보감은 명나라 때 조선의 명문가 출신인 허준이 엮은 것이다.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허봉·허성·허초희(허난설헌)·허균은 모두 문장가로 유명했으며, 특히 허초희는 형제 중에서도 뛰어난 재주를 타고났다.

‘동의(東醫)’란 조선의 의학이라는 뜻이며, ‘보감(寶鑑)’이란 책을 펼치면 마치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책은 중국과 조선의 옛사람이 이루어 놓은 의술을 따르면서도 새로운 세계를 밝힘으로써 중국과 조선의 의술 사이의 부족함을 보충하고, 인간의 몸에 밝은 양기를 불어넣는 방법을 제시했다.

‘해체신서’에 실린 삽화.

 


이 책은 이미 황제께 올려서 황실의 병을 고치는 의학서로 추천됐으며, 여태껏 궁중의 은밀한 곳에 간직돼 세상 사람들이 구해 보기 힘들었다. 얼마 전에 지방 의원들이 환자를 치료하는 데 잘못이 많은 것을 안타깝게 여긴 왕(王) 씨 성을 가진 수령이 연경에 사람을 보내 베껴왔으나, 비용이 많이 들어 간행하지 못한 채 떠나버렸다.

다행히도 나의 친구인 좌한문(左翰文)이 병든 사람의 구제를 위해서 선뜻 경비를 내놓았다. ‘천하의 보배는 온 천하가 공유해야 한다’는 그의 어진 마음은 참으로 위대하다. 목판에 새긴 후에 서문을 부탁하기에 1766년 7월 초 광동성의 능어(凌魚)가 쓰다.”

참고로 2006년 12월 26일 홍콩 문회보는 강희제가 기하학을 공부할 때 사용하던 만주어판 ‘기하원본’이 발견됐다고 보도하면서, 겉표지가 강희제가 소장했던 ‘동의보감’의 겉표지를 뜯어서 만든 것이라고 밝혀서 뉴스거리가 됐었다.



중국 의학서와 ‘해체신서’

연암은 중국판 동의보감을 사지는 못했으나, 신간 의학서를 구하려고 윤가전에게 추천을 부탁했다. 그는 네덜란드에서 간행된 책을 일본에서 번역한 ‘소아경험방’을 추천했으며, ‘서양수로방’도 자세하기는 하나 효과는 신통치 않더라고 가르쳐줬다.

둘 다 서양 의학서라는 사실에 솔깃한 연암은 연경의 책방을 두루 찾았으나, 제목조차 생소하다는 말을 듣고, 실망이 컸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저명한 청나라 문장가인 왕사진이 지은 문집 ‘향조필기(香祖筆記)’를 들추다가 약방문 여럿을 찾고, 또 다른 여러 책의 처방을 뽑아서 기록으로 남겼다. 열하일기의 ‘금료소초(金蓼少抄)’ 편이 그것이다.

연암은 특히 이질이나 학질과 같은 질환에 관심이 많았다. ‘금료소초’에는 그럴듯한 처방도 보이지만, 배꼽을 잡을 만한 내용도 포함돼 있다.

- 송나라 효종은 게를 많이 먹고 이질을 앓았는데, 새로 캔 연뿌리를 잘게 갈아서 더운술에 섞어 마셨더니 나았다.

- 쇠 연장에 베였을 때는, 외톨밤을 말려 갈아서 가루를 내어 붙이면 곧 낫는다.

- 치질은 대변을 본 뒤 감초 끓인 물을 뒷물로 하고, 오배자와 여지초를 사기 냄비에 달인 물로 씻는다.

- 바늘이 배 속에 들어갔을 때는, 참나무 숯가루 서 돈쭝을 우물물에 타서 먹어도 좋고, 또 자석(磁石)을 항문에 붙여두면 끌어 당겨져서 나온다.

연암은 중국의 처방이 아니라 자신이 왕민호에게 준 남자의 양기를 돋우는 처방도 기록해 두었다.

- 가을 잠자리의 머리·날개·다리를 떼버리고, 곱게 갈아서 쌀뜨물에 반죽해 환으로 만들어 먹으면 좋다. 세 홉을 먹으면 아이를 낳을 수 있고, 한 되를 먹으면 늙은이가 젊은 여자를 사랑할 수 있다.

연암은 왜 ‘소아경험방’ 등 서양 의학서들을 사들이지 못했을까? 이들은 단순히 약초로 병을 고치는 책이었을까? 혹시 윤가전이 추천한 일본에서 번역된 네덜란드 의학서 중에 ‘해체신서(解體新書)’가 포함되지는 않았을까?

‘해체신서’는 독일인 쿨무스의 저서 ‘Anatomische Tabellen’(解剖圖解)의 네덜란드어 번역본을 일본인들이 1774년에 한문으로 재번역한 해부학책이다. 이 책은 일본 의학의 급속한 발전은 물론 일본 근대화의 중요한 계기를 만들었다. 만일 청나라에서 서양 의학서를 찾던 연암의 눈에 이 책이 띄었다면, 조선에도 근대화의 큰 파문이 일지 않았을까? 사진=필자 제공

<이현표 전 주미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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