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전쟁과 심리학

사랑이란 나를 사르고 녹여 우리를 만드는 것

입력 2016. 12. 19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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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사랑한다는 것 그 큰 의미를 찾아서


더 큰 하나 위해 작은 하나를 버리는 과정

타인 사랑하기 위해선 먼저 자신 사랑해야

자기 사랑한다는 건 열린 마음 가진다는 것

완전한 사랑은 관계·집단 초월 모든 것 포괄

 


한 한국학자의 분석에 따르면, 사랑은 애타는 심정으로 하나를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뜻하는 순수한 우리말이다. 사랑은 ‘사르다’라는 말에서 온 것으로, 이 말은 ‘불사르다’처럼 ‘어떤 것을 불에 태우거나 녹여서 하나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이 어떤 것을 사랑하게 되면 스스로 자신을 불에 사르거나 녹여서 그것과 하나를 이루고자 한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사람은 자연히 하나를 이루려는 그 강한 열망으로 속이나 애를 태우는 일을 겪게 된다. 둘로 남기보다는 하나가 되려는 욕망이 훨씬 더 강한 게 사람의 본성이요 심리다.

동시에 사랑을 하면 당사자 각자가 가지는 본래의 속성들은 모두 자취를 감추고 사라진다. 왜냐하면 사랑은 서로를 살라 질적으로 다른 하나로 거듭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둘이 어떤 변화도 없이 그냥 한데 묶여 있거나 동행하는 것은 사랑의 본뜻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면에서 사랑은 각자의 개별적 속성은 사라지고 그러한 것들을 모두 아우르는 확장의 과정이다. 사랑을 한다는 것은 둘이 이루는 더 큰 하나를 위해 각자의 작은 하나를 기꺼이 버리는 과정이다.



자신 불살라 자신의 자취 없앨 수 있어야

그래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그 대상과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을 불살라 녹여 자신의 자취를 없앨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기애는 타인을 무시하거나 배척해서 자신을 더 위에 놓음으로써 경험하는 우월의식이나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는 선민의식이 아니다. 이러한 의식은 다른 사람과 하나가 되는 것을 방해한다는 점에서 자기에 대한 사랑을 방해하는 요소들이다. 또한, 이러한 의식이 강한 사람의 속내는 때로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나 확신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들에게 이러한 열등감의 반작용이 우월의식을 초래하는 것이다.

반면, 자기를 사랑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으로 향하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열린 마음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고 그 속에서 그 사람과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가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상대방을 더욱더 필요로 하게 된다. 즉, 상호의존성이 더 커지게 되고 자신의 운명을 상대방에게 더 많이 맡기게 된다. 이처럼 상호의존성의 증가는 필연적으로 타인으로부터 받을 수 있는 상처와 배신의 위험성도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런 위험과 모험을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자신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다.

자기 이외의 대상에 대한 사랑에는 여러 유형이 있다. 그 하나가 남녀 간의 낭만적 사랑처럼 두 사람이 관여하는 관계적 사랑이다. 낭만적 사랑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추구한다는 점에서 매우 보편적이다. 영화 ‘닥터 지바고(데이비드 린 감독, 1965년 작)’는 전쟁의 공포와 비극 속에서도 이뤄지는 남녀 간의 사랑을 잘 그리고 있다. 추운 겨울의 설원을 배경으로 이뤄지는 이 따뜻한 사랑의 여운이 오랫동안 우리의 가슴에 남아 있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은 둘의 관계에 국한된다는 점에서 그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물론, 이러한 배타적 특성이 낭만적 사랑을 감동적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말이다.

규모 면에서 관계적 사랑보다 좀 더 큰 사랑이 자신이 속한 집단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자신과 같은 집단에 속해 있는 다수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을 특정 집단과 동일시할 때 우리는 그 집단구성원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하나가 되고자 하며, 그들을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자 한다. 이처럼 집단에 대한 사랑이 관계적 사랑보다는 규모 면에서 좀 더 크다고 할 수 있지만, 집단에 대한 사랑도 여전히 한정적이고 배타적이다. 왜냐하면 보통 이러한 사랑은 자신이 속하지 않은 집단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에 근거해서 우리라는 범주를 구축함으로써 여기에 속하지 않는 남과 경계를 짓는다.



서로가 서로를 위할 때 자신을 없앨 수 있어

이런 두 유형의 사랑은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이러한 사랑은 상호적이기 때문에, 상대방이 나를 사랑할 때 나도 그를 사랑할 수 있고, 집단이 나를 아끼고 배려할 때 나도 그 집단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한다. 따라서 한쪽만의 사랑을 요구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사랑은 오래갈 수도 없다. 서로가 서로를 위할 때 하나가 되기 위해 자신을 없앨 수 있다. 리더가 부하를 위하고 사랑할 때 부하도 그 리더를 위해 헌신하고자 하고, 부대와 국가가 군인들을 위해 노력하고 애쓸 때 그들도 자신의 부대와 국가를 위해 충성하고자 한다.

또한, 이 두 유형의 사랑은 어떤 면에서는 매우 현실적이고 타당하지만, 때로는 갈등과 다툼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 가령,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행복과 기쁨을 주기 위해 다른 사람을 악용하거나 착취할 수도 있고, 내가 속한 집단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다른 집단을 공격하거나 차별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러한 사랑은 때로 사랑과 미움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가지는 사랑하는 마음과 함께, 나머지 사람이나 집단에 대해 가지는 무시나 분노와 같은 미움의 마음이 공존할 수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사랑이 가지는 가장 역설적인 현상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 두 유형의 사랑은 불완전할 수도 있다. 좀 더 완전한 사랑은 자신의 관계나 집단을 초월하는 그래서 그 범위가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랑이다.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사랑에는 사랑하는 마음만 있을 수 있고, 그 속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행복과 평화를 누릴 수 있다. 당연히, 이러한 사랑을 실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랑을 꿈꾸고 추구할 때,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사랑의 한계를 알 수 있다. 자신이 적대시하는 집단을 없애고 제거하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처럼 큰 사랑을 상상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로 어울려 살기 위한 좀 더 큰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

우리가 할 수 있는 것보다 좀 더 큰 사랑을 지향하면서 자신이 속한 집단을 중심으로 한 작은 우리보다 집단의 한계를 벗어난 좀 더 큰 우리를 추구할 때, 지금은 피할 수 없는 대립과 갈등도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함께 하나로 어울려 살기 위한 좀 더 큰 목표로 나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이러한 사랑이야말로 우리말 ‘사랑’이 뜻하는 그 본래의 의미를 가장 잘 반영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우리 모두가 자신을 사르고 녹여서 자신의 본래 속성들을 사라지게 함으로써 큰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사랑과 가장 큰 우리로 나아가는 길이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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