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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 사는 곳처럼 그윽한 술집 시·그림과 멋지게 즐기는 淸나라 취해 주정하는 우리문화 어쩔꼬…

기사입력 2016. 12. 08   17:21

<46> 우리나라 음주문화를 개탄하다

연경으로 돌아와 들른 길가의 술집

온갖 화초와 함께 화려하면서도 아늑

지필묵까지 갖춰 놓은 것 보고선 충격

풍류 제대로 못 즐기는 우리 술문화 비판

 

 

연암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신윤복이 그린 조선의 술집(국보 135호의 일부, 간송미술관 소장). 필자 제공

 





연경으로 돌아오다

1780년 9월 18일 아침, 연암은 연경 북서쪽의 덕승문을 통과해 숙소인 조선관으로 향했다. 숙소 앞에는 열하에 동행하지 않았던 사절단 일행이 나와서 반겨주었다. 이때 연암을 수행했던 마부 창대가 하인 장복에게 뜬금없는 얘기를 건넨다.

“네게 주려고 황제가 특별히 상금으로 주신 은화를 가지고 왔다!”

장복이 얼굴에 환한 웃음을 띠며 얼마냐고 캐묻자, 창대가 큰 소리로 대꾸한다.

“은화 1000냥인데, 너하고 반씩 나눠 가질 거야! 황제는 눈이 호랑이처럼 부리부리하고, 코는 화로처럼 생겼더라. 옷을 벗고 나체로 앉았는데, 황금 투구를 썼더라고. 나를 부르더니 큼직한 잔에 술을 따라주며 ‘네가 서방님 모시고 험한 길을 무릅쓰고 여기까지 오다니 기특하다’라면서 상금을 내리신 거야.”

어리바리한 장복은 그렇다 치더라도 사리를 조금 분별할 줄 아는 하인들마저 감쪽같이 속아 넘어갈 정도로 창대는 시치미 뚝 떼고 거짓말을 했다.

연암은 자신을 반갑게 맞는 두 명의 다른 일행과 함께 길가의 술집으로 들어갔다. 술집의 푸른 깃발에는 이런 글귀가 눈에 띄었다.

‘서로 만나 마음이 통한 그대와 술 마시려고 버드나무에 말을 매고 높은 다락에 오르네.’

누각이 딸린 2층 술집은 매우 넓고, 난간에는 조각이 새겨졌으며, 기둥에는 그림이 그려져서 금빛과 푸른빛으로 휘황찬란하다. 게다가 분처럼 하얗게 칠한 벽과 비단을 바른 창이 어우러져서 마치 신선이 사는 곳처럼 그윽하다. 벽의 좌우에는 예나 지금의 저명한 서예가와 화가의 작품들이 즐비하고, 술자리에서 직접 써내려간 아름다운 시구들도 많이 붙어있다.

송나라 화가 장택단의 ‘청명상하도’에 등장하는 술집(11세기 그림).  
 필자 제공

우리의 나쁜 술버릇

의자·탁자·그릇·골동들이 사치스럽게 진열되고, 온갖 화초가 줄지어 자라는 화려하고도 아늑한 중국 술집은 연암에게 충격이었다. 더욱이 질 좋은 먹, 아름다운 종이, 보물 같은 벼루, 양질의 붓도 갖춰지지 않았던가? 연암은 이곳이야말로 시 짓고, 글씨 쓰며, 그림 그리는 장소로 안성맞춤이라며 우리나라의 술 문화를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대개 중국의 저명한 인물과 사대부는 창녀 집과 술집 출입을 혐오했다. 이는 진시황의 할아버지로 알려진 여불위가 기원전 3세기에 편찬한 여씨춘추(呂氏春秋)에도 등장한다. ‘기원전 2000년쯤 하나라의 우왕이 의적(儀狄)이라는 장인이 빚은 술을 맛본 다음, 후세에 술로 나라를 망치는 자들이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창녀 집과 술 파는 집에 다니지 말도록 경계했다’는 구절이다.

그런데 우리는 천하에 따를 나라가 없을 정도로 지독하게 술을 마신다. 우리네 술집이란 들어서 여닫는 항아리 모양의 창이 있고, 문짝이 없는 허접한 집이다. 길 왼편 출입문에는 새끼로 발을 늘어뜨렸고, 쳇바퀴 모양의 초롱불이 달렸다. 우리 시인들의 시구에 푸른 깃발이 술집의 상징처럼 등장하나, 나는 여태껏 술집 지붕에 깃대가 우뚝 솟아 청색 기가 나부끼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커다란 사발에 술을 따라 이맛살을 찌푸리며 단번에 들이킬 정도로 주량이 엄청 많다. 이는 술을 붓는 것이지 마시는 것이 아니며,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이지 멋을 즐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한 번 술을 마시면 반드시 취하고, 취하면 늘 주정을 하며, 주정하면 항상 싸움에 이르고, 술집 질그릇과 사발들을 모조리 때려 부순다.

우리는 시를 짓고 멋지게 즐기고 노는 모임이 무엇인지를 인식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배불리 술을 마시지 않는 중국인들을 비웃기까지 한다. 내가 지금 술을 즐기는 이런 중국의 술집 시설을 만일 압록강 동편으로 옮겨놓는다면, 우리는 하룻밤도 못 넘기고 가구나 골동품을 깨뜨려 버리고, 아름다운 화초를 꺾고 밟아버릴 것이니 이 어찌 안타깝지 않은가?”



행장을 풀다

9월 18일 밤, 사절단의 통역들이 모두 연암의 방에 모였다. 약간의 술과 음식이 마련되었으나, 연암은 힘든 여행에 따른 피로가 겹쳐서 입맛을 잃었다. 마침 연암의 오른쪽에는 두툼한 봇짐이 하나 놓였는데, 다들 무엇이 들었을까 몹시 궁금해하는 표정이다.

연암이 곧 창대에게 보를 풀어서 상세히 공개하도록 하자,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 봇짐에서 나온 물건은 오로지 열하로 떠날 때 휴대해 갔던 붓과 벼루, 그리고 중국의 벗들과 필담을 나누면서 급하게 흘림체로 써내려간 글씨와 여행하면서 적은 일기뿐이었기 때문이다.

궁금증이 풀린 사람들은 크게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난 정말 이상야릇했어. 갈 때는 지참하는 짐이 전혀 없더니, 돌아올 때는 봇짐이 커서 말이야.”

장복이도 몹시 실망한 어조로 창대에게 한마디 거든다.

“황제가 특별히 상금으로 주신 은화는 어디 있는 거야?”



술과 지필묵에 담긴 뜻

25편으로 구성된 열하일기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날짜순으로 주요 일정을 다룬 56일 동안의 일기 7편과 날짜 없이 주요 내용을 주제 혹은 내용별로 정리한 18편이 그것이다.

일기는 1780년 7월 25일 압록강을 건너는 장면으로 시작되며, 9월 18일 열하에서 연경으로 돌아와 봇짐을 푸는 데서 끝난다. 놀라운 사실은 일기의 첫날과 마지막 날 기록이 수미상관(首尾相關: 처음과 끝이 이어져서 통함)의 구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연암은 7월 25일 벼루·먹·붓·종이만 지참하고 출발하며, 도중에 창대와 장복이 술을 사 오자 안전한 여행을 위한 세리머니를 한다(연재물 제7회 참조). 9월 18일에는 위에서 보았듯이 우리의 그릇된 술 문화를 비판하고, 봇짐을 풀어서 붓과 벼루, 그리고 필담을 나눈 종이와 일기를 적은 공책을 꺼내 사절단 일행에게 보여준다.

연암은 왜 이렇게 일기의 처음과 끝에 지필묵과 술을 등장시키는 수미상관의 구조를 취했을까? 그는 후세에게 이런 교훈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무릇 국민의 세금으로 출장을 떠나는 자는 술과 성욕을 채우는 개인적 향락을 자제하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단 한순간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이현표 전 주미한국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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