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북유럽의 전사적지를 찾아서

좌우로 분열된 국민, ‘징병제 깃발’ 아래 “하나로!”

입력 2016. 11. 25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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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핀란드 ①


100여 년 러시아 압제서 1917년 독립

이념갈등 끝 참혹한 내전 3만명 희생

1939년 소련과 전쟁땐 일치단결 저항

 

세계문화유산 등재 수오멘린나 요새

전쟁역사박물관 지난한 독립사 증언

 

 

 

헬싱키 항구 입구에 있는 ‘수오멘린나’ 요새 전경. 1748년 스웨덴이 처음 건설했으나 1809년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령하면서 더욱 보강해 러시아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 방어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1930년대 핀란드군 병영 내의 병사식당 모습.

 

 

 


국가경쟁력·청렴도·환경지수 세계 1위의 나라 핀란드! 오늘날의 세계 강소국(强小國) 핀란드도 지난 20세기에는 국가 존망이 달린 전쟁을 수차례 경험했다. 헬싱키 전쟁역사박물관, 핀란드·러시아 국경 격전지 현장에서 참혹했던 당시 전장의 실상과 강인한 핀란드인 정신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한국 여행객들로 넘치는 헬싱키 마켓광장

헬싱키는 걸어 다녀도 하루 만에 관광명소를 다 볼 수 있는 인구 62만 명의 작은 도시다. 시내 관광 출발점인 ‘카우파토리’ 항의 마켓광장에서는 즉석에서 만든 길거리 음식을 많이 판다. 주로 멸치 볶음, 오징어 튀김, 연어구이 등 우리 입맛에 맞는 메뉴를 쉽게 고를 수 있다.

노천시장에는 단체관광이나 개인 여행을 온 한국인들이 넘쳐난다. 회사 동우회 모임, 아버지·아들의 추억 쌓기, 복학을 앞둔 대학생 등 여행 사연도 가지각색이다.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체험을 즐기려는 역동적인 한국인들의 특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서로 교환하는 여행정보는 항상 미지의 세계에 불안함을 느끼는 배낭여행객들에게는 큰 위안이 된다.



1939년 겨울전쟁 당시 핀란드 스키부대.

 

 

 

 

뼈아픈 역사가 스민 ‘수오멘린나’ 요새

마켓광장 항구에서 배편으로 20여 분 나가면 5개의 섬과 6㎞ 성벽으로 이어진 ‘수오멘린나’ 요새에 도착한다. 이 요새는 1748년, 스웨덴이 핀란드를 속국으로 지배할 때 러시아 침공에 대비해 죄수들을 동원해 처음 건설했다. 그 후 1809년, 다시 러시아가 핀란드를 점령하면서 이 섬에는 발트 해를 사정권에 두는 장거리 해안포와 군수공장까지 들어섰다.

1917년, 러시아 공산혁명이 일어나자 핀란드는 독립을 선언했지만, 곧바로 정부 우파와 공산주의자들 간의 참혹한 내전에 휩싸였다. 한동안 이 요새에 적군(赤軍) 포로 1만여 명을 수감하기도 했다. 스웨덴·러시아·핀란드 역사가 뒤엉킨 이 유적지는 1991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시뻘겋게 녹슨 러시아 대포들, 성벽 밑 곳곳에 숨어있는 탄약고, 전시된 잠수함 등 숱한 군사 유적들은 험난했던 핀란드 독립과정의 산증인이었다.



‘수오멘린나’ 요새의 전쟁역사박물관 전경.

 

 

 

 

전쟁역사박물관이 말하는 국난 극복사

‘수오멘린나’ 요새에는 다양한 볼거리들이 있지만, 전쟁역사박물관은 핀란드 국난 극복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1917년 12월 7일 핀란드는 100여 년간의 러시아 압제를 벗어나 독립국가로 탄생했다. 그러나 뒤이은 이념갈등의 와중에 당시 인구 100만의 핀란드에서 3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국민은 분열됐고, 강대국 소련과 독일 사이에 끼인 핀란드는 생존까지 위협받았다. 수백 년 식민지 생활로 국가 정체성도 모호했다. 이때 국민단합에 결정적 역할을 한 핀란드 병역제도를 박물관은 이렇게 소개했다.

“내전 이후 1920년대 핀란드 사회는 갈가리 찢어졌다. 이웃은 서로 불신했고 경제는 파탄 상태였다. 그러나 정부는 사회적 신분과 관계없이 철저한 국민징병제를 시행했다. 일부 언론은 이 제도가 경제적 빈곤층에 큰 고통이라고 선동했다. 하지만 징병제는 내전으로 분열된 청년들을 자유민주주의 이념으로 묶는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1939년 소련과의 겨울전쟁에서 군 경험이 있는 전 국민이 끝까지 저항할 수 있는 큰 원동력이 됐다.”

2017년 독립 100주년 기념행사를 기획하고 있는 박물관 내부에는 핀란드군 발전사, 1939~1944년 전쟁역사, PKO 활동 성과 등이 군 장비 전시와 함께 잘 정리돼 있었다.


헬싱키 중앙역에서 만난 토마스(왼쪽) 이병과 동료.

 

 


자긍심 넘치는 핀란드 병사들의 군 복무

1939년 겨울전쟁의 격전지 ‘수오무살미’는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약 700㎞ 떨어져 있다. 핀란드·러시아 국경 마을인 그곳에는 전쟁기념관과 많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다. 헬싱키 중앙역의 북부행 열차에는 뜻밖에도 핀란드군 휴가 장병들이 많았다.

기차역에서 만난 토마스(Tomas) 이병은 한 달 전에 입대했다. 미국에서 대학에 다니던 그는 핀란드·미국 이중국적자로 병역면제 대상이었지만 군 복무를 위해 귀국했다. 자신의 할아버지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과 싸웠고, 아버지도 자진 귀국해 현역근무를 했단다. 뜻밖에 자기 부대에는 해외거주 자원 입대자들이 많다고 한다. 핀란드군 복무 기간은 기본적으로 6개월이며, 특수병과 병사나 간부는 훨씬 더 길다. 물론 복무 연장자들에게는 많은 급여와 다양한 인센티브가 주어진다고 했다.


<신종태 조선대 군사학과 교수>


 

TIP - 오늘날 핀란드는?

국민 개인소득 5만 달러… 현역 군인 2만2000명

 


 


 

핀란드는 인구 530만 명, 국토 넓이 34만㎢(한반도 1.5배), 연 국민 개인소득은 5만 달러다. 군사력은 현역 2만2000명, 예비역 35만4000명에 달하며 다양한 군 복무 형태의 징병제를 유지하고 있다.

출처: Military Balance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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