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원종원의 올 댓 뮤지컬

지구가 멸망한다는데…사과나무를 심어봐야 뭣해, 죽기 전에 결혼을 해야지!

입력 2016. 11. 23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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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지구 멸망 30일 전


결혼의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 ‘사랑’…잊고 살아가는 소중한 의미 되새겨

기발하고 강렬한 반전…가볍게 흐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에 완성도 가미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 최우수 창작 뮤지컬 상

극본·각색·연출 ‘1인 3역’ 성재준 존재감 돋보여

개성파 배우들 팔색조 연기와 가창력도 보증수표

 

 



지구가 멸망한다. 거대한 혜성이 지구와 정면 충돌할 것이기 때문이다. 남은 시간은 고작 30일뿐. 우왕좌왕 좌충우돌 실의로 가득한 사람들이 거리에 넘쳐난다. 실적 부진으로 회사 대표로부터 큰 꾸지람을 듣던 결혼정보회사의 직원은 외친다. 몽달귀신이 돼 세상을 떠도느니 죽기 전에 결혼이라도 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때 아닌 짝 찾기 붐이 온 세상을 관통한다. 창작 뮤지컬 ‘지구 멸망 30일 전’의 주요한 줄거리다.



절묘한 설정과 촌철살인의 이야기들은 시종일관 배꼽을 잡게 만든다. 결혼정보회사에 가면 월수입과 재산 정도, 큰아들이니 막내딸이니 하는 조건들을 따져 점수를 매기고, 스펙을 따지는 요즘 세태를 감안하면 그야말로 기상천외한 조건과 환경이 아닐 수 없다. 특히, 경제력을 따지던 여자들과 외모만 보던 남자들이 그저 단순히 사랑만 생각하고 남은 며칠을 함께할 이성을 찾는다는 전개는 쌉싸름한 현실 풍자의 재미마저 느끼게 한다. 결혼의 ‘진짜’ 전제조건은 학벌도, 외모도, 경제적 조건도, 금전적 여유도 아닌 바로 ‘인간의 사랑’이라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흔히 무시되는 우리네 세상살이 속 이야기가 큰 울림을 남긴다.

 

2 청순 가련한 인기 가수 주소연은 사실 백치미 넘치는 천방지축 아가씨다. 지구 멸망 소식이 전해지자 기획사 대표 때문에 감췄던 자신의 끼를 과감하게 콘서트 무대에서 발휘하기로 결심한다.

 


이 뮤지컬은 먼저 막을 올린 곳이 따로 있다. 바로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이다. 상업화한 적이 없는 프로덕션을 대상으로 초연 무대인 트라이 아웃 공연을 꾸미도록 재정적 지원을 하는 축제 프로그램에서 이 뮤지컬은 ‘2015년 최우수 창작 뮤지컬 상’을 수상하며 처음 두각을 나타냈다. 지금까지 이 상을 받은 전작들, 예를 들어 ‘식구’나 ‘스페셜 레터’, ‘마이 스케어리 걸’처럼 ‘지구 멸망 30일 전’도 인기 창작 뮤지컬 레퍼토리로 성장할 것으로 기대하게 된다.

지난 연말 올려진 서울에서의 짧은 공연은 뚜렷한 스타 캐스팅 없이 기발한 설정의 이야기와 음악적 실험만으로 무대를 꾸며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제작사의 적극적인 선택이 아닌, 어쩔 수 없는 투자나 재정적 환경으로 인한 결단일 수도 있겠지만, 덕분에 오히려 신선하고 매력 넘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유명 연예인 출연자를 무대에 세우는 요즘 추세와 다르게 연기 잘하고 노래 잘한다고 소문난 실력파 조연급 배우들로 작품을 화려하게 치장했다. 지금까지 이 작품을 거쳐 간 배우들로는 약방의 감초 같은 김동현, 섹시하면서도 코믹한 하현지, 다양한 이미지로 변신하는 주민진 등이 있다. 꽤 만족스러운 극 관람을 보장하는 소문난 개성파 연기자들이다. 기대를 훌쩍 뛰어넘는 다양한 연기와 가창력이 최고의 볼거리이자 이들의 장점이다. 온전히 작품만으로 관객과 소통하려는 것 같아 반가웠던 시도다.

3 조폭 아버지의 결혼 반대에 봉착한 재형과 혜원은 지구 멸망 소식이 전해지자 마지막 순간만은 함께 보내고 싶어한다. 로미오와 줄리엣과 다름없는 캐릭터들이다.

 

 

4 혜성 충돌로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무대는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종말의 소식이 전해지자 사람들은 점차 자신이 진정 원했던 것에 대해 성찰하게 된다. 코미디 뮤지컬이 해학과 풍자의 사회성을 지니게 되는 순간이다.

 


그래도 굳이 말하자면 제작진은 스타급이다. 특히 극본과 각색, 연출을 맡아 1인 3역을 한 성재준의 존재감은 확실하다. ‘싱글스’, ‘뮤직 인 마이 하트’, ‘카페인’ 등을 통해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 붐을 조성했던 장본인답게 시종일관 노련한 완급 조절로 우습고 세련된 무대의 전형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중음악계에서, 또는 드라마 음악감독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던 박성일의 노래들도 인상적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소개팅 자리에서 늘씬하고 잘생긴 ‘킹카’를 만난 것 같다. 다양한 음악 장르의 활용도 좋지만, 극 중 인기 가수인 주소연의 노래 ‘전화해요’나 라틴 혹은 탱고 리듬을 가미하고 젊은 세대들이 즐기는 랩까지 아우르는 정훈 부부의 노래는 이 뮤지컬을 풍성하게 만드는 또 다른 매력 포인트들이다.

뮤지컬의 마지막은 강렬한 뒷맛을 남긴다. 특히 엔딩 신의 반전은 그야말로 강렬하다. 지구 종말을 즈음해 온통 소란스러움이 세상을 뒤덮는 순간 전혀 뜻밖의 소식이 뉴스를 통해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새삼 사랑과 결혼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처음과 똑같은 결혼정보회사에서의 마지막 장면은 탄성을 자아내는 기발한 전개로 마무리된다. 스포일러가 될까 봐 자세한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그야말로 기발한 전개가 객석을 깜짝 놀라게 한다. 자칫 허무하게 흐를 수 있는 로맨틱 코미디 뮤지컬의 완성도를 한층 끌어올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한바탕 소동 속에서 사랑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곱씹어보는 배려가 좋다. 연출자의 기획 의도를 여실히 공감하게 되는 순간이다.

패러디 장면들은 뮤지컬을 좋아하는 관객들이라면 인상적으로 기억할 만한 재미다. ‘레 미제라블’, ‘드림걸즈’ 등 국내에서도 막을 올려 사랑받았던 뮤지컬 장면들에 풍자와 해학을 얹은 극적 전개가 이채롭다. 뮤지컬을 처음 대하는 관객이라면 어리둥절하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웬만한 뮤지컬 애호가라면 무릎을 치며 키득거릴 수 있는 B급 문화의 묘미를 잘 반영하고 있다. 대극장 뮤지컬처럼 화려하고 웅장한 무대가 뮤지컬의 전부가 아니며, 작고 아기자기하지만 그 안에 다시 재미를 담고 웃음으로 포장하는 기발한 소극장 뮤지컬을 보는 재미도 만만찮다는 발상의 전환을 여실히 실감하게 한다.


창작 뮤지컬 ‘지구 멸망 30일 전’ 감상 팁

‘성재준’ 브랜드 뮤지컬

▶ 독특한 작품세계를 선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톡톡 튀는 대사와 코믹한 설정, 감각적인 연출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미소 짓고 깔깔거리게 만드는 매력은 그만의 전매특허다.



앙코르 공연을 노려라

▶ 지난여름, 대구 국제 뮤지컬 페스티벌 초청공연 이후 숨 고르기 중이다. 앙코르 공연을 기다려보길 추천한다. 누구나 유쾌하게 만드는 작품이어서 여자친구에게 세련되고 감각적인 사람으로 인정받기 좋다.



코미디 뮤지컬은 열린 마음으로

▶ 비극보다 어려운 것이 코미디다. ‘얼마나 잘하나 보자’라는 생각보다 열린 마음으로 웃고 즐기는 가운데 뼈있는 풍자를 발견하는 것이 바람직한 감상법이다.


<원종원 교수 뮤지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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