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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이크·인조달걀…15년간 활용법 개발 전투식량 콩 요리 ‘안되는게 없었네’

기사입력 2016. 11. 02   17:44

<40> 독일 전격전과 대두(大豆)

“군수 지원 잘돼야 전차 굴러가듯 전쟁도 승리”

전격전 창안한 獨 구데리안 장군, 병참 중요성 강조

다양한 콩 가공식품 개발…전쟁 말 병사들도 넌더리

 

 

 

독일군의 야전 식사.

 


“전쟁에서 병참은 전차의 베어링과 체인이다(Logistics is the ball and chain of armored warfare).”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 기갑부대의 영웅, 독일 하인츠 구데리안(Heinz W. Guderian) 장군의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탱크전이라고 하면 대부분 독일의 롬멜, 미국의 패튼, 영국의 몽고메리 장군을 먼저 떠올리지만, 전쟁사 연구가들은 진정한 탱크전 명장으로 구데리안 장군을 빼놓지 않는다. 전쟁 초기, 독일군 기갑부대의 전격전(電擊戰) 개념을 창안하고 실천해 폴란드 침공과 프랑스 전선 돌파를 비롯해 소련 진격 등 독일군의 초기 승리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번개 같은 전쟁’이란 뜻의 전격전

번개 같은 전쟁이라는 독일어 블리츠크리크(Blitzkrieg)를 그대로 번역한 전격전은 그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공격하는 것 이상의 의미다. 기동력과 화력에 바탕을 둔 빠르고 결정적인 공격으로 여러 겹의 방어선을 구축해 적의 공격을 둔화시키고 소모시키는 종심방어를 관통해 무력화하는 전술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의 독일인 프로이센 시대부터 독일군이 전통적으로 사용했던 전법으로 여기에 전차와 기계화 보병, 지상 근접지원 항공기를 결부시켜 기갑부대의 전격전 이론을 만든 인물이 바로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이다. 장점이 있지만, 전격전은 종심방어를 돌파한 부대의 역량이 소모되는 시기에 맞춰 역습할 경우 보급선 두절 등으로 인해 위기를 맞을 수도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군이 실패한 발지전투를 꼽는다.

그런 만큼 구데리안 장군은 기갑부대에 의한 전격전 개념을 도입한 전략가답게 탱크가 체인과 베어링으로 구성된 무한궤도 없이는 굴러갈 수 없는 것처럼 제대로 된 군수지원 없이는 전격전도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병참의 중요성을 그만큼 힘주어 말했다.

하인츠 구데리안 장군.

2차 대전 이전부터 철저한 전쟁 준비

독일은 전격전을 포함해 제2차 세계대전 훨씬 이전부터 전쟁 준비에 힘을 쏟았다. 군수 식량만 해도 제1차 세계대전 때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톱밥 가루를 섞은 순무만 먹고 싸워야 했던 경험 때문인지 다양한 경로로 비상식량을 준비했는데 그 중심에 콩가루가 있었다.

우리나라와 중국·일본 등 동양에서 즐겨 먹는 검은콩과 노란 콩인 대두(大豆·soybean)를 활용한 식품 개발에 정성을 기울였는데, 전시 비축물자로 콩을 확보하는 것이 당연하다 싶겠지만 2차 대전 때로 거슬러 올라가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진다.

콩은 워낙 종류가 다양해 강낭콩이나 완두콩은 유럽에서도 즐겨 먹었지만, 대두는 철저히 아시아의 작물이다. 그 때문에 2차 대전 무렵만 해도 유럽과 미국에서는 거의 먹지 않았다. 병충해에 강하고 잘 자라지만, 서양인 입맛에는 별로 맞지 않아서 식품으로는 거의 활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독일 육군에서는 2차 대전이 시작되기 15년 전부터 이런 대두의 활용방안을 연구했다. 식용 콩기름이 아니라 콩에서 기름을 추출해 공업용으로 이용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여러 종류의 음식에 이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콩가루를 넣은 스테이크·인조달걀 등 활용제일 먼저 대두를 밀가루처럼 콩가루로 만들어 활용하는 방법이었다. 이렇게 만든 콩가루는 40%가 단백질, 20%가 지방, 27%가 탄수화물 그리고 8%의 수분 등으로 구성돼 있어 다양한 식품에 활용할 수 있었다. 콩가루를 다진 고기에 넣어 스테이크나 소시지를 만들 수도 있는데 이렇게 하면 고기 소비를 25%에서 최대 45%까지 줄일 수 있었다. 달걀은 아예 콩가루로 대체해 인조 달걀을 만들어 냈다. 콩가루로 우유도 만들 수 있는데 콩가루와 물을 1대10의 비율로 혼합하면 우유, 정확히 말하면 우유 대신 마실 수 있는 두유(豆乳)가 됐고 통조림 수프 역시 콩으로 대체됐으니 콩가루가 들어가지 않는 제품이 없었다. 그 결과 독일의 패색이 짙어지던 전쟁 말기에는 병사들이 콩 가공식품이라면 넌더리를 낼 정도였다.



독일, 소련에게 군수물자 등 도움 받아

독일 육군은 전쟁 준비로 농업부와 함께 독일은 물론 폴란드와 소련에서도 대두를 재배해 물자를 비축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대두를 포함한 전시 물자 비축에 동부전선에서 전면전을 벌였던 소련으로부터 엄청난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독일은 소련과 라팔로(Rapallo)조약을 체결하고 소련의 도움을 받아 독일 국방군을 비밀리에 재건한다. 독일군 참모가 소련의 군사학교에서 교육을 받는데 하인츠 구데리안 역시 소련 전차학교에서 전술 훈련을 받았다. 독일 공군은 조종사 훈련, 심지어 화학전 훈련까지 지원을 받았다.

군수물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1941년 독일의 소련 침공인 바바로사 작전 전까지 스탈린은 나치 독일에 160만 톤의 곡물과 10만 톤의 대두를 비롯해 수백만 톤의 철광석 등 엄청난 양의 군수물자를 지원했다. 전쟁 직전까지 적에게 물자를 퍼주었던 셈이다. 그 결과 소련은 독일과의 전쟁에서 비록 승리하기는 했지만,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독일의 제2차 세계대전 준비에 얽힌 비사(秘史)로 그 속에 작은 대두도 있었다.

사진=필자 제공

<윤덕노 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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