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완결 김 병장과 함께 하는 방독면 한국사

백성들의 삶 나빠진 상황 군대 동원 어려움 판단 이성계 ‘사불가론’ 상소 올려

입력 2016. 10. 19   16:04
0 댓글

<23> 조선의 건국


<고려 말 국내외 상황>

고려 말, 안으로는 공민왕이 신진사대부와 손을 잡고 반원(反元) 정책을 펼쳤으나 권문세족의 반발로 실패하게 됩니다. 또한,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면서 신흥 무인세력이 성장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최영과 이성계가 있는데 이들은 당시 실질적인 최고 권력자이자 주목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국외적으로는 중국 땅에서 원나라를 몰아내고 명나라가 건국되었습니다.



위화도 회군


명나라는 원나라를 몰아낸 뒤 고려에 철령 이북 땅의 소유권을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원래 철령 이북 지역에 원나라가 쌍성총관부를 설치해 다스렸는데 명이 원을 몰아냈으므로 그 땅은 명나라 땅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사실에 무인 최고 실권자 최영이 반발하고 오히려 고려에서 군사를 이끌고 명나라의 요동을 정벌하자고 주장합니다. 당시 우왕이 고려의 왕이었는데 최영의 주장을 적극 지지합니다.

한편, 이성계는 반대합니다. 그 이유는 백성들의 삶이 나빠진 상황에서 군대를 동원하는 것이 안 좋은 일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성계의 주장은 우왕과 최영에 의해 묵살되고 최영이 팔도도통사로, 이성계는 우군도통사, 조민수는 좌군도통사로 임명됩니다. 그리고 이성계는 조민수와 함께 5만의 군사를 이끌고 요동 정벌에 나섭니다.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려고 했으나 전날 밤 갑자기 큰비가 내려 강물이 넘쳐 강을 건널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식량 조달에도 큰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군대의 사기가 바닥으로 떨어지고 내부적인 불만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자 이성계는 상소를 올리기로 합니다. 이 상소가 그 유명한 ‘사불가론’입니다.

첫째,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옳지 않다. 둘째, 농번기인 여름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일은 맞지 않는다. 셋째, 북쪽으로 군대를 총동원한 지금 왜구의 침입이 우려된다. 넷째, 무덥고 비가 많이 내려 활의 아교가 녹아 쓸 수 없으며 전염병이 염려된다. 이렇게 네 가지 이유를 들어 상소를 올립니다.

이 상소에 최영은 세 가지 이유를 들어 뜻을 굽히지 않습니다. 첫째, 명나라가 대국이긴 하지만 북원과의 전쟁으로 요동 방비가 허술하다. 둘째, 지금 요동의 기름진 땅은 경작도 할 수 있어 가을에 충분한 군량을 얻을 수 있다. 셋째, 명나라 군대도 우리와 같은 조건에서 싸운다.

이와 같은 답을 받은 이성계와 조민수는 고민에 빠집니다. 명을 따라 요동을 정벌하는 것은 군사를 모두 죽이는 행위요, 군대를 돌리는 것은 어명을 거역하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고민 끝에 이성계는 회군을 결정했고 이것이 바로 ‘위화도 회군’입니다. 이후 개경으로 군대를 이끌고, 최영을 귀양 보냈다가 제거하고, 우왕을 폐위시킵니다.

다음 회 >> 조선 초기 왕(Ⅰ)


< 저작권자 ⓒ 국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댓글 0

오늘의 뉴스

Hot Photo News

많이 본 기사